통닭뜯다 콜라 들이킨 사연

by 으니 posted Feb 19,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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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 체니가 오발사고로, 아니, 더욱 정확하게는 오발사고를 낸 후 대응이 유치했기 때문에 더욱더 구설수에 오른 것 같다. 토크쇼 진행자들은 하루밤에 스무번, 스물한번 그걸 소재로 농담을 했다고 하고, 빌 게이츠도 연설에 앞서 이런 농담을 했다고 한다. “오늘 다른 자리에도 초대받았는데, 그건 체니와 함께 메추리 사냥을 가는 것이었습니다” 호오, 역시 굴지의 갑부답게 농담의 베포도 크다. 내가 “오늘 김근태 장관과 저녁 약속을 했는데, 또 두 번째로 도착하시더라구요” 라고 한들 아무도 웃지 않을거야! 덜덜덜. 아뭏튼 여기까지는 그저 그런 농담이다. 신문에선 뒤이어 백악관 대변인인 스콧 매클렐런도 브리핑에 앞서 오렌지색 타이를 맨 이유는 체니의 총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농담을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 나는 여기서 웃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확히는 데이비드 레터맨이나 제이 레노와 빌 게이츠의 본질적인 차이는 굳이 없다고 본다. 그들은 농담을 할만한 사람들일뿐이다. 즉 누구나 농담할 순 있지만, 농담한 이야기가 다시 회자될 수 있는 사람들. 하지만, 백악관 대변인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기사에서는 열거법이거나 점층법으로 다룬 듯한 인상이 있다. 레터맨, 레노, 게이츠 심지어 대변인까지! 정도?


한편, 다른 쪽칼럼을 보니 제목은 “사냥”이다. 신문마다 변종되어 있는 “이규태 칼럼” 류라 하겠다. 사냥을 즐겼던 루이 15세 이야기부터 줄줄줄 사냥에 대한 에피소드가 뜬금없이 나오고, 사냥을 너무 좋아하다 국력이 기울었다는 교훈성도 가미되고, 마지막에 딕 체니를 언급하면서 칼럼은 이렇게 적고 있다.


- 미국의 딕 체니 부통령이 11일 메추라기 사냥 도중 동행한 78세 변호사를 잘못쏘는 바람에 구설에 오르고 있다. “빈 라덴은 못 잡고 변호사만 잡았다”는 등 코미디 소재가 됐다. 그가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 등도 덩달아 놀림감 신세다. 체니의 정치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 이런 풍자 시스템과 웃음이 살아있는 걸 보니 사태가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다. 마호메트 만평으로 벌어진 이슬람권의 ‘신성 모욕’ 항의 사태도 이런 웃음으로 끝날 순 없을까.-



경악했다. 여운을 남기는 듯하며 뜬금없는 소재들을 줄곧 엮어가는 글의 흐름은 영락없는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쪽 칼럼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채인택 국제부문 차장. 경악했다. 미국에 이런 풍자 시스템과 웃음이 살아있는 걸 보니 사태가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다. 라니, 백악관 대변인은 개인적인 자격으로 농담을 했을까. 그는 어디까지나 대변인이므로, 그의 단어 하나하나는 섬세히 선택되어졌을 것이고, 그의 손동작과 웃음, 말의 강약마저도 치밀한 이미지 전략의 일부일 것이다. 미리 프로그램 되든 자연스럽게 되든간에 말이다. 레터맨과 레노, 심지어 빌 게이츠의 농담은 어느 정도는 풍자 시스템과 웃음이다. 하지만, 풍자라는 것이 뭔지, 그는 좀 더 정확히 공부해야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수직적 사회에서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들어야 그것이 풍자다. 원래 인간과 웃음, 그리고 농담에 대한 기본 태도가 출발부터 다른 미국에서 부통령의 실수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고 하여 그것이 풍자요 저널리즘 정신이요 사회의 건강성이라고 생각했다간 오산이다. 게다가 백악관 대변인의 농담은 체니에겐 기분나쁠지 모르지만, 가장 효과적으로 체니를 보호하는 전략이다. 체니의 대국민 사과는 백악관의 종용이었다는데, 어떻게 국제부문 차장이라는 사람이 굴지의 언론지의 소중한 지면에서 이렇게 안이한 문장을 내 놓을 수 있는지.

게다가 더욱 가관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 마호메트 만평으로 벌어진 이슬람권의 ‘신성 모욕’ 항의 사태도 이런 웃음으로 끝날 순 없을까.

이.런. 웃.음.으.로. 끝.날. 순. 없.을.까. 미안하지만 그에겐 국제부문 차장의 자격이 전혀 없으며, 언론인으로서의 민감한 감각도 전혀 없으며, 인문학에 대한 소양도 전혀 없으며, 세계사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도 전혀 없으며, 지구촌인이 가져야할 다른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에 대한 개념도 전혀 없음을 나는 분개할 수 밖에 없다.

체니는 공동체 내부의 사람이다. 공동체 내부의 실수였고, 전세계적인 실수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이 실수가 공동체가 전세계적으로 가진 영향력을 약화시킬 수 있기에, 공동체 내에서 오히려 해결봐야 하는 실수이다. 하지만, 마호메트 만평 사건은 기본적으로 서로 상이한 입장을 가진 다른 공동체 사이의 일이고, 체니 사건이 지닌 효용성과 권력의 문제에 하나 더하여 신념과 이데올로기 문제가 덧붙여져있는 것이다. 체니의 실수를 효과적으로 덮기 위해 동원된 농담과 웃음과 같은 종류의 해법으로 마호메트 만평 사건을 풀어나가면 안되겠니 하는 물음은, 한마디로 이슬람 너 그냥 착한 병신되면 안되겠니 하는 것과 꼭같다. 작금의 세태를 하나의 키워드로 풀면서 세계 평화를 바란 마음은 이해되지만, 너무나 안이하고, 너무나 섬세하지 못하다.

온 몸의 털 하나하나가 각기 살아있듯하는 그런 민감함과, 그렇기 때문에 요구되는 성실스런 면밀함과, 그에 꼭 맞는 책임감과 같은 것들을 언론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의 개인적인 욕심일까. 인터넷이 없던 멀지 않던 과거에는 이런 타입의 칼럼이 의미있었지만, 이젠 누구나 “사냥을 좋아했던 권력자” 라고 검색하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을 조합하여 이런 형식을 유지하는 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 나의 지나친 독단일까. 난, 뜯던 통닭을 미뤄두고, 콜라를 찾는다. 콜라가 내 속을 타고 흘러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일 게 분명한 트림을 밷어낸 나의 한계이며, 우리의 한계다.


* 중앙일보, 2006년 2월 17일자 40판, "분수대" 칼럼을 읽고  작성자는 채인택 국제부문 차장
* 앞전에 언급한 기사는 같은 날짜, 같은 신문의 국제면 기사,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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