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9.19 04:17
살림, 나를 살리고 가족들을 살리는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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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한테 숙제를 내주고 공부를 마무리하려 하는데, 타다다닥 칼질 소리가 들려왔다. 무심히 주방이 살짝 보이는 복도 비스무레 한 것을 지나쳐 현관까지 나가는데, 주방쪽에서 그 애의 엄마가 선생님 잠깐만요,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몇달만에 처음으로 그 집의 공부방이 아닌 곳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무슨무슨 팰리스라는 이름에 맞게 화려하게 꾸며진 주방이었다. 검은 대리석으로 덮인 조리대와, 여러가지 기기들, 화려한 식탁과 군데군데 아름다운 조명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가 양파를 썰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트레이닝복을 입고 운동을 하러 가거나, 양손 한가득 쇼핑백을 들고 들어오기나 하던 그녀가 양파를 썰고 있었다. 평소에 일하는 아줌마도 있었는데, 아까 그 칼질 소리의 주인공은 그녀였던 것이었다.
어지간히 잘꾸며진 집에선 놀라지도 않는 나는, 또 그렇다고 부자들에게 적개심 따위는 더더욱 없는 나는, 그냥 누구나 자기 능력껏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 살면 좋다.. 고 데면데면히 여기던 나는. 그 집에서 다른 어떤 걸 보고 놀란 게 아니라, 그녀의 양파써는 모습에 놀란거다. 그런 집에서도 여자가 결국 살림을 하는구나 라든가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살림은,
숙명.
제 아무리 돈많다 해도 요리는 해먹는구나 라든가 아무리 날고기는 여자라도 결국 밥도 하고 그러는구나 하는게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엄마, 혹은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에게서 가족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살림하는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
주방이 화려하든, ㅡ 자형 좁은 주방이든, 주방이라고 말하기도 못내 민망한 지경의 가스렌지 달랑 하나이든간에,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피로하고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꽤 기쁜 것이다.
나도 내가 다른 일을 하지 않았던 한동안 주방에서 음식을 한 적이 있다. 서랍을 열어 칼을 꺼내고, 도마를 놓고 처음하는거 치고는 잘한다 생각하며 어설픈 칼질도 하고, 양파를 썰고, 당근을 작게 깎아 다듬고, 그 동안에 뭔가를 끓이고 삶고, 또 다 되어서 소쿠리에 넣어 찬물에 헹구고, 부지런히 냉장고에 뭔가를 넣었다가 빼었다가 하고.. 그렇게 음식을 한 적이 있다. 그냥 한 두번 한게 아니라, 매 끼 그리 하고 또 설겆이도 죄다 하곤했다. 아니 음식만 한게 아니라, 빨래도 돌리고 널고 말려서 개고, 다림질을 하고, 청소도 하고.. 꼭 엄마처럼 아내처럼 그렇게.
그건 엄청나게 행복한 일이다. 내가 가족을 위해서,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굉장히 본질적인 일이고, 그것이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고, 해도 티는 안나고 안하면 금새 티나는 일이다. 그래서, 피로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정말로 행복한 일이고, 기쁜 일인 것이다.
나는 와아 정말 잘해놓고 사는구나. 라든가 혹은 이야, 요리도 잘하고 집안도 예쁘게 꾸몄구나. 하는 말보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살림을 하고 싶다. 밤중에 깨어 일어나 부엌에 와 냉장고를 열었을 때 시원한 냉수와 바나나 우유 하나쯤은 꼭 있는, 집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아주 번쩍 번쩍 광을내어 닦은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것을 느낄 수 없는 그런 편안한 살림. 바깥에서 시달리던 가족들이 집에 왔을 때, 여기서만큼은 정말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집을 만들고 싶다.
십년쯤 후에, 마사스튜어트를 능가하는 살림에 관한 책을 쓸지도 모른다. 제목은 "모두가 편안한 우리살림" 살림을 하는 안주인도 편하고, 도와주는 신랑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하고,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 모두가 편안한 살림. 적게 노력하고도 좋은 효과를 내는 살림법이라든가, 적절히 인스턴트를 이용하는 법, 빠른 시간안에 장보는 법, 좀더 오래 가는 청소법 같은 것들. 그리고, 가족끼리 더욱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 같은것들.
웅.
드디어, 나, 가을타기 시작했다.
oTL
어지간히 잘꾸며진 집에선 놀라지도 않는 나는, 또 그렇다고 부자들에게 적개심 따위는 더더욱 없는 나는, 그냥 누구나 자기 능력껏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돈을 벌어 살면 좋다.. 고 데면데면히 여기던 나는. 그 집에서 다른 어떤 걸 보고 놀란 게 아니라, 그녀의 양파써는 모습에 놀란거다. 그런 집에서도 여자가 결국 살림을 하는구나 라든가 뭐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살림은,
숙명.
제 아무리 돈많다 해도 요리는 해먹는구나 라든가 아무리 날고기는 여자라도 결국 밥도 하고 그러는구나 하는게 아니라,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누구도 엄마, 혹은 아내라는 이름의 여자에게서 가족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살림하는 기쁨을 빼앗을 수는 없구나.
하는 생각.
주방이 화려하든, ㅡ 자형 좁은 주방이든, 주방이라고 말하기도 못내 민망한 지경의 가스렌지 달랑 하나이든간에, 주방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은 피로하고 반복되는 일일지라도 꽤 기쁜 것이다.
나도 내가 다른 일을 하지 않았던 한동안 주방에서 음식을 한 적이 있다. 서랍을 열어 칼을 꺼내고, 도마를 놓고 처음하는거 치고는 잘한다 생각하며 어설픈 칼질도 하고, 양파를 썰고, 당근을 작게 깎아 다듬고, 그 동안에 뭔가를 끓이고 삶고, 또 다 되어서 소쿠리에 넣어 찬물에 헹구고, 부지런히 냉장고에 뭔가를 넣었다가 빼었다가 하고.. 그렇게 음식을 한 적이 있다. 그냥 한 두번 한게 아니라, 매 끼 그리 하고 또 설겆이도 죄다 하곤했다. 아니 음식만 한게 아니라, 빨래도 돌리고 널고 말려서 개고, 다림질을 하고, 청소도 하고.. 꼭 엄마처럼 아내처럼 그렇게.
그건 엄청나게 행복한 일이다. 내가 가족을 위해서, 그러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뭔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 그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굉장히 본질적인 일이고, 그것이 없어서는 안되는 일이고, 해도 티는 안나고 안하면 금새 티나는 일이다. 그래서, 피로하고 귀찮기도 하지만, 정말로 행복한 일이고, 기쁜 일인 것이다.
나는 와아 정말 잘해놓고 사는구나. 라든가 혹은 이야, 요리도 잘하고 집안도 예쁘게 꾸몄구나. 하는 말보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살림을 하고 싶다. 밤중에 깨어 일어나 부엌에 와 냉장고를 열었을 때 시원한 냉수와 바나나 우유 하나쯤은 꼭 있는, 집안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아주 번쩍 번쩍 광을내어 닦은 것은 아니지만, 불편한 것을 느낄 수 없는 그런 편안한 살림. 바깥에서 시달리던 가족들이 집에 왔을 때, 여기서만큼은 정말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구나 하는 그런 집을 만들고 싶다.
십년쯤 후에, 마사스튜어트를 능가하는 살림에 관한 책을 쓸지도 모른다. 제목은 "모두가 편안한 우리살림" 살림을 하는 안주인도 편하고, 도와주는 신랑도 편하고, 아이들도 편하고,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들 모두가 편안한 살림. 적게 노력하고도 좋은 효과를 내는 살림법이라든가, 적절히 인스턴트를 이용하는 법, 빠른 시간안에 장보는 법, 좀더 오래 가는 청소법 같은 것들. 그리고, 가족끼리 더욱 더 사랑할 수 있는 방법 같은것들.
웅.
드디어, 나, 가을타기 시작했다.
oTL
Comme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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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주전부터 가을입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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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니님은 정말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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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으니님, 또 다른 한 방법은요, 남자 하날 팍~~ 잡아가지고서는... 죄다 시키면 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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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옥과 책
Date2005.10.05 By콩쥐 Views4162 -
옛날 옛적에.
Date2005.10.03 ByZ Views3308 -
바다가 부른다.........소라
Date2005.10.03 By콩쥐 Views3258 -
[re] 바다가 부른다.........박게
Date2005.10.03 By콩쥐 Views3243 -
[re] 바다가 부른다.........전어구이
Date2005.10.03 By콩쥐 Views2996 -
[re] 바다가 부른다.........전어 한마리
Date2005.10.03 By콩쥐 Views2426 -
[re] 바다가 부른다..........젓
Date2005.10.03 By콩쥐 Views3077 -
[re] 바다가 부른다..........명란젓
Date2005.10.03 By콩쥐 Views3055 -
[re] 바다가 부른다..........개뿔?
Date2005.10.03 By콩쥐 Views3090 -
오늘밤 다시 살아난 청계천 다녀왔어요.
Date2005.10.02 By콩쥐 Views2888 -
[re] 청계천에 미로가 다녀갔나요?
Date2005.10.02 By수 Views3073 -
푸념..
Date2005.10.01 By괭퇘 Views2841 -
希望 - 도종환
Date2005.10.01 By소공녀 Views2695 -
온돌문화에 대해 누구 아시는분.
Date2005.10.01 By콩쥐 Views2431 -
한국의 자랑거리가 뭐가 있을까요?
Date2005.10.01 By대한민국 Views7805 -
한국의 문화
Date2005.10.01 By콩쥐 Views2879 -
연예인들이 너무 많아요!!!
Date2005.10.01 Bynenne Views3415 -
[re] 콩쥐님만 보세요.
Date2005.10.02 Bynenne Views3377 -
네이버에 있길레.. 퍼왔어요..
Date2005.09.29 By나그네.. Views3276 -
어렸을땐 말이죠. 정말 어른이 되고 싶었더랍니다...
Date2005.09.29 By쑤니 Views2770 -
이것은 무슨 벌레인가요?
Date2005.09.29 By시니 Views3142 -
전지연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펌)
Date2005.09.28 By나잡아봐라 Views3855 -
강원도의 힘.....양양의 능이와 노루궁뎅이
Date2005.09.28 By콩쥐 Views4123 -
[re] 강원도의 힘.....강릉 주문진과 속초 대포항
Date2005.09.28 By콩쥐 Views4436 -
[re] 강원도의 힘......미천골계곡의 알밤
Date2005.09.28 By콩쥐 Views4311 -
[re] 강원도의 힘......설악산의 머루
Date2005.09.28 By콩쥐 Views4073 -
[re] 강원도의 힘.....오대산주변시골집의 나무땔감.
Date2005.09.28 By콩쥐 Views4125 -
선녀가 나타날듯한...
Date2005.09.27 By오모씨 Views3400 -
어제부로 밤낮이 바뀌어버렸군요..-_-
Date2005.09.27 By술먹고깽판부린놈 Views3254 -
우문현답
Date2005.09.27 By차차 Views3584 -
유 시민 (항소 이유서)
Date2005.09.27 By야맛있다 Views4810 -
술마시고 여기다 풀어야지..
Date2005.09.26 By에혀2 Views3372 -
"아만자" 이후 최대 사오정 답변 사건
Date2005.09.25 By으니 Views3922 -
오늘 날씨 너무 좋아서 기분 좋았어요
Date2005.09.24 By으니 Views3258 -
까탈이의 세계여행
Date2005.09.24 By1000식 Views3385 -
이 새벽에 전 뭘하고 있는걸까요....
Date2005.09.21 By消邦 Views3455 -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첫 방송
Date2005.09.20 By야맛있다 Views3997 -
에피소드#3 경고 : 미성년과 여인들은 절대 보지마셈..
Date2005.09.19 By조아 Views4232 -
에피소드...#3 (달은 무엇인가????)
Date2005.09.19 By조아 Views2782 -
에피소드...#2
Date2005.09.19 By조아 Views3075 -
에피소드...#1
Date2005.09.19 By조아 Views3763 -
89년 우리의 상은누님..ㅋ
Date2005.09.19 By에혀2 Views3680 -
살림, 나를 살리고 가족들을 살리는 살림
Date2005.09.19 By으니 Views3377 -
친절한 금자씨 (먼저 올린 분 있나요?)
Date2005.09.17 By꼭두각시 Views3973 -
전화받는 강아지(?)
Date2005.09.14 By토토 Views4555 -
난초가 꽃이 피어서...
Date2005.09.14 Byjazzman Views7353 -
[re] 정말 신기하네요.
Date2005.09.15 By아랑 Views2905 -
호신술... 배웁시다!!ㅋ
Date2005.09.14 By쑤니 Views4470 -
아빠한테 문자보냈다.
Date2005.09.14 By오모씨 Views3537 -
넘넘 슬포요.. ㅠ.ㅠ
Date2005.09.13 By쑤니 Views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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