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GuitarMania

(*.228.153.134) 조회 수 8137 댓글 2
아래는 Qmuse Club 홈페이지에서 옮긴 저의 글입니다.

편곡 : F. Mompou
곡명 : El cant dels ocells(새의 노래 - 까딸루냐 지방의 크리스마스 캐럴)
연주 : Grondona


















                      허수아비

                                                    임병호

나의 視界 안에서
天上天下唯我獨存이다

호시절 가을볕 뿐일까
광풍에 억수로 비 뿌리는 날 있다

남루한 의복을 준비하는
세간의 허물을 탓하지 않는다

선 채로 돌이 되는 수고로움이
오곡을 다스리는 실체이다

바람 한 올 거느리고
영근 이삭의 경배를 받는다

팔을 벌려 더덩실 춤을 추는
욕망 한 끝은 비상에 있었다

참새떼 제 푼수로 때 없이 놀아도
큰 눈 속에 들일 뿐이다

먼 들 끝을 지켜보는 나의 심성은
초동의 하늘처럼 맑다

떨어진 씨앗을 봄들에 싹 틔우는
대지는 나의 영지이다

빈 들에 초연히 숙고하는
冬眠의 하마선인으로 있다.


* 하마선인 : 세상을 등지고 두꺼비와 개구리를 길들이며 함께 놀았다는 옛 중국의 선인.


임병호 시인은 저와 무척 가까이 지내던 분이셨는데 지난 5월에 지병으로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지요. 안동에는 '글밭'이라는 오래된 시동인지가 있는데 34년이나 되는 역사를 자랑한답니다. 매 년 '글밭' 동인지를 내고 있는데 올해에는 '임병호 시인 추모 특집'으로 나왔군요. 그는 평소 무척 가난하게 사셨지만 누구에게 돈을 빌리는 법이 없으셨지요. 너무도 당당하게 "돈 만원 다오."라고 말씀하셨거든요. 여윳 돈이 있어 좀 더 드릴라 치면 한사코 받지 않으셨지요.

그의 젊은 시절에는 시인으로서의 기개가 대단했다고 합니다. "小說家, 隨筆家는 詩人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詩人만이 사람 인(人)자를 쓰거든." 그에게 있어 소설이나 수필은 잡문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물건을 사기 위해 줄을 늘어서 있으면 그는 새치기 해서 물건을 사곤 했는데 사람들이 시비조로 바라보면 대뜸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난 시인이야 임마~"라고.

제가 운영하는 '시간여행'이란 까페는 글밭 동인들의 아지트인데 임병호 시인이 특히 자주 오셨지요.
"형님~ 무슨 차를 드릴까요?"
"어이, 정선생. 차 말고 술이나 한 잔 줘~"
건강이 염려되어 술을 드리지 않으려 했지만 막무가내.
안주 없이 마시는 속칭 깡술 스타일인데다 술이 몇 잔 돌고 나면 어눌한 말로 횡설수설하는 바람에 까페 분위기가 살벌해지고 급기야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가 되어 집으로 모실라 치면 한사코 걸어가신다고 우깁니다.
"어휴~ 속 터져~ 이 애물단지를 누가 안 데려가나~"

안동에는 국보급 명물이 두 분이 계시는데 둘 다 가난하게 살며 오래된(?) 총각이라는 것, 그리고 둘 다 병약하다는 것이 공통점이죠.
임병호 시인과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님이 바로 그들입니다.
두어 달 전에 권정생 선생님(현재 67세) 댁에 다녀 왔는데 다 쓰러져 가는 초라한 집의 단칸 방에 기거하시는데 방안은 온통 책들로 쌓여 한 몸을 겨우 누일 정도 밖에 되지 않는지라 가을볕이 따사로운 마당에 거적을 깔고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맑고 깊은 눈 빛이었지만 병색이 완연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무척 기분이 좋아 보이더군요. 어릴 때 결핵을 앓아 병약하신 선생님을 임병호 시인이 늘 걱정했는데 정작 먼저 떠나고 말았다고 허허롭게 이야기를 건네자 선생님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습니다. 시인이 생전에 소주 한 병 사가지고 선생님을 찾아 와서는 밤이 새도록 '눈물'인지 '술물'인지를 흘리며 애를 많이 먹였거든요.

『 가진 것은 "바람 한 올"뿐이지만 "비상"을 꿈꾸며 "天上天下唯我獨存"의 자부심과 당당함으로 "세간의 허물"을 "큰 눈 속에 들"이는 초연한 "하마선인"이야말로 그가 완성한 삶의 자화상이다. 이 자화상을 그리는 순간 그의 삶도 시도 종착지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다.』 - 임두고 시인의 평 중에서

'허수아비'는 제가 무척이나 좋아하는 시입니다. 가난하게 사셨지만 항상 기개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사셨던 이 시대의 마지막 기인 - 임병호 시인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Comment '2'
  • 2005.04.01 07:31 (*.80.23.158)
    왜들 그렇게 술을 드셨을까요?
    몸이 엉망이 될텐데....
  • 1000식 2005.04.01 08:19 (*.228.154.151)
    허수아비가 곧 임병호 시인의 자화상이라는 등식이 성립되는 것은 이 시인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를 모르는 사람은 단지 시로서만 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시적인 재미가 현저히 반감됩니다.
    아마도 이토록 멋지게 그린 자화상도 드물거라고 생각합니다.
    너무도 멋진, 임병호 시인다운 최고의 걸작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105 답답함 10 넨선생 2005.03.14 5886
6104 루프트 바페의 영원한 연인... 메셔슈밋... 3 이브남 2005.03.15 5463
6103 대한민국의 우익세력에 대하여 59 1000식 2005.03.15 8263
6102 차차 여자친구 생기다 16 file 차차 2005.03.16 5617
6101 아름다운 날개... 스핏화이어 7 이브남 2005.03.17 7160
6100 좀 전에 제가 만든 홍합밥~ 13 file 오모씨 2005.03.17 6183
6099 해 지기 전에 한 걸음만 더 걷다보면… 1 citara 2005.03.18 8963
6098 유럽 상공의 회색상어... Me262 (1) 5 이브남 2005.03.21 5746
6097 이브남님의 글을 읽다가.. 2 고정욱 2005.03.21 5663
6096 아! 그립다.... 25도 두꺼비여.... 12 np 2005.03.22 5838
6095 한대수, '따뜻한' 수상소감으로 '기립박수' 2 오모씨 2005.03.23 5918
6094 울집 냉온수기... 2 file 두꺼비30 2005.03.24 5258
6093 진로 '두꺼비'의 유래 야맛있다 2005.03.24 6472
6092 유럽 상공의 회색상어... Me262 (2) 2 이브남 2005.03.25 6089
6091 천둥번개... 신덴... 9 이브남 2005.03.26 5891
6090 기타 배우기 힘드네요 ㅜㅜ 14 밥오 2005.03.26 5844
6089 녹음 어떻게 하나요? 1 망고주스 2005.03.26 5015
6088 사우디징크스-_-2대0 완패 shadow0412 2005.03.26 6088
6087 엄살 *.* // ^^ 1 기타랑 2005.03.26 6478
6086 산삼뿌리 드신분들이 왜 힘이 뻣칠까? 3 2005.03.27 8477
6085 태평양의 검객... 제로 4 이브남 2005.03.29 6187
6084 [펌]투명 바탕화면 인기.. 4 토토 2005.03.30 5896
6083 뉴스. 2 2005.03.30 4349
6082 칭구 7 np 2005.03.30 4248
6081 간접흡연하면 6-8년 늙는다네여.. 4 --a 2005.03.30 5496
6080 우리의 소주를 찾아서..... 2 np 2005.03.30 4243
6079 용가 자세 좀 잡아주세요... 4 file 용가아빠 2005.03.30 6180
6078 [re] 밤늦도록 술이 내리고 / 임병호 18 file 1000식 2005.03.31 5892
6077 [re] 이제 명정에서 깨어난 시인 임병호 / 김윤한 2 1000식 2005.04.01 6544
6076 [re] 임병호 시인을 기리며 2 1000식 2005.04.01 6080
» [re] 임병호 시인의 허수아비 2 1000식 2005.04.01 8137
6074 [re] 임병호론 - 일탈과 초월의 시학 / 임두고 2 1000식 2005.04.01 5999
6073 밤늦도록 술이 내리고 / 임병호 3 1000식 2005.03.31 6180
6072 딱 한장만더....^^ 3 file 김은미 2005.03.31 5847
6071 지두 우리 애기사진 하나 올려도 되져? ^^ 14 file 김은미 2005.03.31 5628
6070 찔레꽃밭 / 김윤한 6 file 1000식 2005.03.31 7732
6069 요즘심정... 9 지훈 2005.04.01 5292
6068 휴지폭탄이래요! 3 오모씨 2005.04.01 6737
6067 나는 낙서다! 6 LaMiD 2005.04.01 9122
6066 어떤기타맨님 사진 6 file 2005.04.02 6052
6065 떠났네요. 1 file red72 2005.04.02 4362
6064 1000원짜리 선물?!? 7 nenne 2005.04.02 7398
6063 소설 '강안남자' 매냐 검열에 의해 강제 삭제되다. 20 np 2005.04.02 5958
6062 자유와 순수. 5 2005.04.03 4919
6061 삼겹살 구워 먹던 날 10 file 김한진(여명) 2005.04.03 7214
6060 몇일후면 5월5일 작곡의날이네요. 3 2005.04.03 5546
6059 내사랑 크로와상~ 2 file 언젠가 2005.04.04 4836
6058 P47D 썬더볼트... 레이저 백 7 이브남 2005.04.04 5470
6057 "La Strada" 완성중인 자필 악보 3 file 2005.04.04 7614
6056 뭔가 사랑하면 오래 살아---- 6 오모씨 2005.04.04 5607
Board Pagination ‹ Prev 1 ...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 152 Next ›
/ 15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Powered by Xpress Engine / Designed by hikaru100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