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이제 명정에서 깨어난 시인 임병호 / 김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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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한 시인은 가끔 저희 홈페이지에 글을 남겼기 때문에 생소하시지는 않을 겁니다. 김윤한 시인은 작년 가을에 안동의 임씨 종가에서 있었던 '가을시 콘서트' 행사 때 1부 사회를 봤었는데 이때 참석하셨던 귀래, 주근, 두환 형님은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네요. 저와 동갑나기 친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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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명정에서 깨어난 시인 임병호>
글 / 김윤한(글밭 동인)
임병호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났다. 1947년 9월 10일 안동에서 태어나 2003년 5월 1일 세상을 마치다. 굳이 보태자면 안동중학교와 대구공고를 졸업했고 시인 이상처럼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던 사람. 서울에서의 짧은 몇 년을 제외하면 줄곧 안동에서 문학동인회 활동을 했고 1988년 '실천문학'을 통해 등단의 절차를 밟았다.
시읽기 등 문학 대중화를 위해 힘썼고 '누가 에덴으로 가자 하는가, 사상공단'과 '저 숲의 나무들이 울고 있다'는 시집을 냈던 사람. 대략 이 정도 몇 줄로 임병호 시인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굳이 한 줄 정도 더 덧붙이자면 '기인'이라는 단어 정도.
그러나 거기에 진정으로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그는 한 평생을 시를 생각하며 시로써 온 생애를 비척이며 살아온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나타난 온갖 기행은 그 자신이 평생을 현실과 시세계를 혼동하며 살아온 겉모습의 일부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소한 이득이나 영달을 위해서 살지 않았다.
그가 사십이 넘을 무렵부터는 그의 모든 생활이 시 자체였을 만큼 시를 제외하고 임병호 시인을 생각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를 제외하면 그는 직립해 있을 아무런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다. 대한민국에 무수한 시인이 있지만 그처럼 온 몸과 마음을 바쳐 시를 사랑하고 시로써 일생을 살아 온 사람이 있으면 어디 나와 보라.
지금 살아 있는 시인을 논외로 한다면 그가 생전에 공들여 시비를 세웠던 신승박과 함께 안동에서 직접 살면서 신시장과 구시장의 장꾼들과 부대끼면서 안동의 현대시의 밭을 일군 1세대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아직은 그가 작고한 지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았지만 그의 이러한 문학적 행적들은 우리가 두고두고 살펴보아야 할 후세 시인들의 몫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접한 건 1978년경이었다. 그의 이름을 처음 듣게 된 건 지금 마산에서 활동을 하고 있는 김태수 시인으로부터 였다. "재미있는 시인 하나 있다."라는 말에 이끌려 태화동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열 두 살 정도 많긴 했지만 그는 난생 처음 보는 사람보고도 "야 임마."는 보통이었다.
내가 습작했던 시를 꺼내 보였더니 "치와라 임마. 시는 뭐락고 쓸라 하노?"가 전부였고 그 후 몇 번인가 만났지만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게 된 건 한참 후였다. 어쨌든 나는 그 "재밌는" 시인이 나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해 준 것에 대해 고맙기까지 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와 함께 동인활동을 하며 25년이란 세월을 그와 함께 휩쓸려 다니게 되었다.
잘 아는 것처럼 그는 세상을 뜨기 전까지 시를 쓸 때나 시낭송회 등 시운동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술을 마셨다. 어떤 분들은 "임병호 시인이 맨정신으로 있는 걸 못 봤다."고 할 정도로 술은 시와 더불어 그의 일생을 함께 했다. 그래서 그의 시 '명정(酩酊)'이 대표시로 불리고 있는지도.
그가 술을 마시는 시간은 단거리 경주가 아닌 1박2일의 마라톤 주법이었다. 그와 함께 하게 되어 여인숙 방을 쓰게 되는 날엔 엄청난 괴로움을 겪어야 했다. 우리 동인들조차 몸서리치는 '자동기술'이 시작되는 것. 보통사람은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눌 정도의 시간인 자정을 넘어도 처음 술 마실 때처럼 그 속도 그 패턴으로 밤새도록 술을 마셔가며 한 번도 눕지않는 자세로 '자동'으로 혼자 무언가 이야기하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에는 술을 마시며 내게 무언가 이야길 거는 줄 알고 대꾸를 해 주다가 밤을 꼴딱 새운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는 단련이 되어서 임병호 시인이 밤새도록 지껄여대어도 나는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최근엔 덜했지만 서른 초반쯤에는 시인으로서의 객기도 대단했다. 가령 어느 가게에서 물건을 사는 경우, 다른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그는 당당하게 남을 밀치고 들어가기가 일쑤였다. 다른 사람들이 시비조로 바라보면 그는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난 시인이야 임마." 그러면 대개의 사람들은 잠시 얼을 놓을 정도.
임병호 시인은 안동에서 났고 안동에서 시를 써 왔지만 그는 모름지기 '전국구'였다. 어쩌다 서울이나 외지에 나들이를 갈 때면 그에게는 수입원이 전혀 없는 탓에 만 원 정도의 여비를 받아 간다. 그는 돈을 빌리는 법이 없다. 당당하게 "돈 만 원 다오."가 그가 돈을 가져가는 첨이자 마지막 한 마디. 하도 당당해 첨 보는 사람들을 눈이 휘둥그레지게까지 한다.
행여 주머니에 여윳돈이 있어 만 원 한 장 더 붙여 줄라치면 필요한 돈 이상은 한사코 받지를 않았다. 그렇게 받아간 돈 몇 푼이 종잣돈이 되어 한 번 안동을 출발하면 전국의 지인들로부터 당당하게 노자를 얻어 쓰며 한 열흘쯤 돌다가 돌아온다.
다른 지역의 시인들을 만나보면 안동은 잘 몰라도 '임병호 시인'하면 손뼉을 칠 정도로 그는 안동 시인의 꼬장꼬장한 인식을 심어주었던 것 같다. 그의 일화를 소개하자면 시리즈로 몇 달을 엮어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언제나 당당했던, '글 시'자에다 진정한 의미의 '사람 인'자를 붙여 시인이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는 드문 시인. 이제 그는 우리 곁에서 떠나고 없다.
지금도 우리 동인끼리 모여 술 마시다 문득 옆자리에 없는 임병호 시인을 떠올리면 금세 '드르륵' 밀문을 열고 비척거리는 자세로 들어올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그리고 어슬프게 이 글을 썼다는 걸 알면 '시인이 되잖은 글 함부로 썼다'고 벌컥 소리지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살아 있을 적 많은 문우들이 그를 일컬어 "안보면 보고싶고 보면 피곤"하다고 표현을 하곤 했다. 그처럼 엄청나게 사람 피곤하게 하던 그런 만남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한동안은 그의 죽음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어 달 가까이 지난 지금, 살아 생전 때처럼 '이제 안 보면 보고싶'을 시간이 지났나 보다. 이제 깡마른 그의 얼굴이 서서히 보고 싶어지기 시작한다. 특유의 약간 높은 톤의 음성이 들린다. 가슴 아랫쪽으로부터 무언가 쓰린 기운이 서서히 치받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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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호 시인이 저를 애먹인 건 하도 많아서 일일이 말도 못해요.
하루는 오전 11시경 시간여행 문을 열러 나갔더니 가게 문 앞에 앉아서 혼자 소주를 까고 있더군요.
시간여행이 장사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손님이 차마시러 왔다가도 도망갈 판.
아무리 안으로 들어가자고 해도 막무가내.
조금 후 청소하고 밖으로 나와보니 아예 바닥에 드러누웠더라고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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