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을 항상 간직한다는 것

by 으니 posted Feb 02,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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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 한구석엔 어디론가 떠나고싶단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떠남의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팍팍한 삶에 지쳐서, 혹은 귀찮고 난감한 일에 시달리는 것이 지겨워서, 답답해서, 고민되는 것들을 잠시라도 잊고 싶어서. 아니, 이 모든 것들은 어쩌면 다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발 딛고 선 이 곳에서 무작정 벗어나고픈 회색 안개 자욱한 마음.

나 역시 떠나고 싶단 생각을 늘 한다. 나의 이유는 그리움이다. 가보았던 곳에 대한 그리움, 기억이 얽힌 곳은 그 기억에 대한 그리움, 한번도 가 본 적이 없는 곳에 대한 그리움, 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그리움.

늘 그립고, 늘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늘 바라고, 늘 버린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슴이 옹졸하게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변하지 않을거라 믿었던 것들이 변함을 느끼고, 새삼 그런 것에도 놀라거나 낯설어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고, 또 한번 자책하고, 다시금 뻔뻔스러워진다.

그리운 그 곳에 가면, 눈못뜨고 꼬물대는 강아지같은 내 맘 속의 그리움들이 씻어내질까 생각하지만, 그것은 그렇지 않다. 비오는 날 고궁에 가면 흙먼지가 잦아드는 그것이 마치 여름수박을 갈랐을때 연하게 느껴지는 내음과 닮았다. 그 고궁의 수박냄새가 그리워 정말 어느 비 오는 날 무작정 고궁을 찾았을 때 나는 그 그리움의 근원이 고궁의 흙담길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 그리움은 마음 속에 있기 때문에 어딜가나 그리운 것이다. 마음 깊은 곳의 그리움이 이끄는대로 우린 떠나고 떠올리고 되돌아와 이곳에 뿌리박고, 또 떠나길 기다린다.

지난 것들에 대한 그리움보다, 이젠 아직 날 찾아오지 않은 것들을 그리워해보고싶다. 미래가 "지나간 미래"라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아직 오지 않은 것들, 한걸음 다가서면 다시 한걸음 멀어지지만 늘 시야에선 사라지지 않는 것들, 아직 만나지 못한 이들, 사랑하고픈 모든 것들, 행복을 이루어주는 작은 것들, 꿈.. 이 그리워, 거친 입술이 부드러워지고, 눈매가 순해지고, 손길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광활해진다면, 어쩌면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나는 더이상 나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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