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강 강줄기 따라 기타는 안치고... *^^*

by 기타랑 posted Nov 22,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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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이 안좋아 시작한 마라톤!
이제는 기타치는 시간보다 달리는 시간이 더 많다.
기타는 못쳐도 달리기는 한다.
쩝...! 그러니 기타를 아직도 그렇게 못치지. *.*

기타매니아님들에게는 생소한 마라톤 이야기입니다.
^_^

# 경인일보 제1회 남한강 마라톤 참가 수기 2004. 11.21 #

예전에 이런 광고가 있었다. "늬들이 게맛을 알아?" 신구 아저씨가 나와서
공전의 히트를 쳤던 CF였다. 마라톤을 시작하고 풀코스를 뛰고 나서 내
자신에게, 또 마라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늬들이 썹포를 알아?"

작년 10월 풀코스를 처음 도전할 때 목표가 썹포였다. 가벼운 목표였다. 하
프를 1시간 43분에 뛰던 때라 곱하기 2하면 3시간 26분이니까 좀 쉬엄쉬엄
뛰어도 4시간 안에 들어오는 것쯤은 별거 아닐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풀코스는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너무나 달랐다. 예전에 허파를 다쳐 호흡기
계통이 부실한 나에게 풀코스는 너무나 거대했고, 넘기 힘든 벽이었다.
27km부터 걷고 뛰고를 반복하며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완주한 시간은 4시
간 37분이란 너무나 초라한 기록이었다.

2주 후 부상당한 몸으로 뛴 춘천마라톤에서 5시간 8분, 또 2주 후 중앙마라
톤에서 4시간 38분. 겨울내 춥다고 놀다가 올해 3월 몰래 참가한 동아마라
톤에서는 4시간 54분이었다. 그리고 올해 춘천마라톤을 목표로 여름내 담금
질을 하고 점검 차 참가했던 10월 3일 평화마라톤에서 4시간 8분이라는 기
록이 나와 썹포에의 희망을 키울 수 있었다. 그러나 자신감이 지나쳤던 춘
마에서는 오버페이스로 후반에 또다시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4시간 18분이
라는 어처구니없는 기록으로 들어왔다. 일년농사의 추수를 하는 춘마에서도
결국 썹포는 날 외면했다.

함께 마라톤대회에 자주 참가하는 회사 동료분도 썹포의 문턱을 아직 넘지
못하고 있다. 4시간 33분에 시작하여 4시간 3분, 4시간 1분까지 접근했다가
이번 춘마에서는 다리에 쥐가 나면서 4시간 45분으로 썹포에서 다시 멀어
지고 말았다.

춘마 이후 나는 썹포 앞에서 다시 작아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썹포
는 내가 맘먹고 한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구나. 하늘이 허락해 주기 전에는
안되는거구나. (좀 거창한가? ^^ ) 진인사대천명이라고 그저 열심히 훈련하
다 보면 노력이 기특하다고 여겨질 때 썹포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겠거니
하고 맘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번 남한강 마라톤을 신청하면서 내심 썹포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춘마코스에 비해 코스가 험해 20분 가량 더 기록이 나올거라는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그냥 남한강 경치나 구경하며 천천히 뛰다 오자는 마
음이었다. 별 생각 없이 평소대로 연습하며 하루하루 시간을 보내다 하루
전날 페이스챠트를 만들었다. 손목에 차고 뛰며 거리별로 목표한 시간대로
달리기 위해 만드는 페이스챠트. 하지만 만들어봤자 페이스챠트대로 뛰어
본 적이 없다. 더 빨리 뛰거나 늦게 뛰거나 했던 나로서는 또 한번 썹포의
꿈을 꾸며 그저 예의상 3시간 59분짜리 페이스챠트를 만들었다.

대회 하루 전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12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다. 항상 그렇
지만 대회 전날은 대개 잠을 설친다. 잠도 잘 안 오고, 자다가도 자주 깬다.
이번 대회는 와이프하고 딸하고 같이 가기로 했었는데 새벽 4시쯤 3살짜리
딸내미가 열나고 아프다며 와이프가 대회에 안가면 안되냐고 한다. 눈치 좀
보다가 빨리 갔다올테니 급하면 택시 타고 일단 응급실로 가라고 하고, 초
밥 좀 싸달라고 간크게 말하니 그래도 싸준다.

찹쌀로 만든 초밥과 물을 챙겨서 어둑한 주차장에 가보니 차 유리에 서리
가 껴서 앞이 하나도 안 보인다. 대충 서리를 긁어내고 아침 6시 체육관에
도착하여 봉고차와 내차에 두 팀으로 나누어 회원분들과 함께 양평으로 출
발한다. 초행길이라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 8시 15분쯤 대회장 근처에
가보니 차가 500m이상 밀려 있고, 주차장이 거의 꽉 차 있어 도저히 안되
겠다 싶어 함께 타신 경란, 인숙, 선옥, 수인님에게 먼저 내려 걸어가라고
하고 나는 길 옆 주택가로 들어가 주차를 시켰다.

이것저것 필요한 것을 챙겨 대회장으로 워밍업 삼아 슬슬 뛰어갔다. 다른
회원분들은 다행히 주차장으로 잘 들어가셨는지 밀려 있는 차들 중 보이지
않았다. 물품 보관소 옆에 자리를 잡고 시간절약을 위해 안에 입고 온 대회
복으로 탈의를 하고 썬크림, 바셀린, 파스를 골고루 바른다. 파스, 바셀린,
썬크림 순서로 바르게 되면 파스 묻은 손에 바셀린까지 묻어서 얼굴에 썬
크림 바르고 나면 얼굴에서 파스냄새 나고 끈적끈적해서 상당히 곤욕스러
워진다. 그래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나보다. ^^

물품을 맡기고 화장실을 보니 사람들이 줄줄이 서있다. 까짓 거 남자 좋은
게 뭐냐. 이럴 때 그냥 대충 아무데서나 볼일 보는 거지 뭐. 화장실 앞에
서있는 사람들 수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강변 풀숲에다가 촉촉히 단비를
뿌리고 있었다. 나도 얼른 동참하고 출발선으로 향하고 보니 출발 5분 전.
좀 촉박하다. 준비운동도 하고 몸도 풀고 해야하는데 시간이 없다.

1200여명의 풀코스 주자들이 출발선상에 서니 사회자가 앞사람 등을 주물
러 주란다. 서로들 스스럼없이 정성껏 앞사람 등을 주물러 주고 안마를 해
준다. 곧 이어 출발 카운트. 10, 9, 8,,,,2, 1, 출발 ! 폭죽이 터지고 환호성과
함께 42.195km의 저마다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 동안의 경험을 종합해 보건대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주제를 모르고 오버
페이스하는 데 있는 것 같았다. 해서 오늘은 무조건 페이스메이커 뒤에서
쫒아 가기로 마음먹었다. 4시간 20분은 성에 안차고, 가다 쳐지더라도 4시
간 페이스메이커를 쫒아 가기로 했다.

5km쯤 가니 뒤이어 출발한 하프코스의 선두가 힘차게 풀코스 주자들을 추
월해 나간다. 오른쪽 무릎이 조금 시큰거린다. 별 일 없겠지하며 무시하고
달리다.

7km쯤 가니 하프코스에 출전하신 장흥마라톤의 호프 김진석 철인님이 우
리 페이스메이커 팀을 추월한다. 반가운 마음에 쫒아 가서 파이팅 한번 외
쳐본다. 먼저 가시라고 하고 나는 다시 페이스메이커 뒤로 숨어서 뛴다. 옆
구리가 좀 결린다. 후반 허기질 것에 대비해 초밥을 꾸역꾸역 먹은 탓인 거
같다. 견딜만하여 또 무시하고 그냥 달린다.

8km를 조금 넘어 가니 하프코스 선두주자들이 반환점을 돌아오고 있다. 잘
뛰는 사람들 구경 좀 하다가 피곤해서 그냥 앞만 보며 뛰어간다.

하프코스 반환점을 지나고 나니 이제는 길도 2차선 모두 차량이 통제되고
풀코스 주자들만 뛰게 되어 길이 한산하고 좋다. 잔잔하면서도 풍족한 남한
강과 늦가을 정취를 감상하며 작전대로 페이스 메이커 뒤를 졸졸 따라 가
고 있는데 11km쯤 가니 북소리와 이상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말로만 듣던 험하다는 언덕이 막 시작되는 지점이었는데 대궐처럼 지은 한
식집 마당 양쪽에 불이 치솟고 있고, 대청마루 앞 돌계단 위에 전설의 고향
에 나오는 저승사자 복장을 한 남자가 사람키보다 더 큰 북을 치고 있었다.
북 한번 치고 만세 한 번 부르고......^^ 배경 음악은 으시시한 분위기의 아
쟁연주로 거의 공포모드였다. 길가에 초를 들고 서있는 아줌마도 괴기스러
운 모습으로 달리는 사람들을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응원겸 가
게 홍보를 위한 아이디어인 모양이다. 어쨌든 달리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볼
거리였다.

고개를 한 참 올라가서 보니 고개가 또 나온다. 코스가 거의 산악코스다.
고개를 몇 개 넘고 나니 강변을 따라 평탄한 코스가 나온다.

15km쯤 가니 몸도 풀리고 달리는 기분이 꽤나 상쾌하다. 마치 잘 달리는
말을 타고 달리는 기분이다. 나는 그냥 편하게 앉아서 즐기며 가는 것 같
다. 이대로 결승점까지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18km쯤 가니 풀코스 선두주자가 반환점을 돌아 달려오고 있다. 별로 빨리
달리지도 않는 것 같고, 표정도 편해 보인다. 4-500m 뒤에 씨알정희진님이
힘차게 달려오고 있다.

21km 반환점이 다 와갈 무렵 지난 춘마에 함께 첫 출전하여 4시간 11분의
기록을 세운 최재훈님이 반환점을 돌고 달려오며 파이팅을 외친다. 나보다
400여m 앞서 있는 것 같다.

반환점을 돌며 시간을 보니 예상 페이스보다 7분 가량 빠르다. 페이스 메이
커님 중 한 분이 후반 언덕에서 쳐질 것을 대비해서 조금 빨리 뛰
는 거란다.

27km에서 엄지 손가락 만한 바나나를 한 개 입에 물고 페메를 쫒아가려는
데 최재훈님이 허기가 졌다며 간식을 드시고 있다. 반갑게 파이팅 한 번 외치
고 추월해 나가며 페메를 쫒아 언덕을 힘차게 넘어간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은 바나나향이 입에 가득하다.

큰 언덕 몇 개를 넘고 31km 지점에 가니 아까 그 저승사자 아저씨가 공포
스러운 음악에 맞춰 아직도 북을 치고 있었다. 이번에는 옆에서 아줌마 한
명이 꽹가리까지 치고 있었다. ^_^

30km 이 후에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몸 상태가 뛸만한 것
같다. 여전히 페이스 메이커 뒤에 바짝 붙어 쫒아 간다. 초반에는 페메를
중심으로 30여명이 무리지어 달렸었는데 이제는 뿔뿔이 다 헤어지고 나까
지 2-3명 밖에 안 남았다. 페메님들이 나보고 컨디션이 좋아보이니 먼저
치고 나가란다. 고맙다고만 하고 계속 페메 옆에서, 뒤에서 거머리처럼 붙
어서 뛴다. 결승점을 끊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다. 언제 쳐질지, 언제
몸에 이상이 생길지 조심스런 마음으로 일정한 페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정
신을 모은다. 30km 이 후 항상 페이스메이커 그룹에 추월 당했었는데 오늘
은 내가 지친 주자들을 하나둘 추월한다.

35km 지점에서 바나나를 하나 얻어 입에 물었는데 입이 얼어서 깨물어 먹
을 수가 없다. 입에 문 바나나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37km 지점에 가니 일산호수마라톤 분들이 꿀물을 준비하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페메를 놓칠까봐 서석호님이 권하는 꿀물을 사양하고 페메를
정신없이 쫒아간다. 작년 춘마에서 내 눈에 눈물이 맺게 만들었던 감동스런
꿀물을 사양하니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또 언덕이다. 페메의 구령에 맞춰 땅만 보며 언덕을 넘는다. 다들 혼
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40km 지점에 오니 갑자기 페이스가 뚝 떨어진다. 이번에도 결국 멀어져가
는 페메의 풍선을 보게 된다. 완만한 오르막이 계속된다. 처음 출발할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오르막이다. 페이스가 점점 떨어지고 달리기가 힘들어
진다. 걷고 싶고, 눕고 싶다. 한 번도 걷지 않고 완주하고 싶다는 마음에 한
발 두발 달려 보지만 너무 힘이 든다.

41km를 지나며 내 자신과 타협한다. 이대로 엉금엄금 가느니 좀 걷다가 회
복하여 마지막 스퍼트를 올리자구. 결국 걸었다. 걷다보니 너무 갈증이 나
고, 몸에 전기가 나는 것 같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에게 음료수를 얻어 마
시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2-300m 속보로 걷다보니 좀 회복이 된다.

다시 종종 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문득 시계를 보니 3시간 57분이다.
이번에도 썹포는 나를 외면하나보다. 실망감에 몸보다 마음이 더 무겁다.

거의 다 왔는데 너무 아쉽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아침에 출발할 때 돌아 나왔던 코너가 보인다. 한 300m정도 남은 것 같았
다. 정말 다 왔구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났는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추월하며 거의 100m 달리기 수준으로 달렸다. 코너를 돌고 언덕을
내려오니 결승점이 보인다. 전광판 시계를 보니 썹포가 가능하다.

가슴에 기쁨이 샘솟는다.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결승
선을 통과한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3시간 59분 47초! 풀코스 일곱 번 만에
드디어 썹포를 한 것이다. 너무나 아슬아슬하게, 너무나 감격스럽게 썹포를
달성했다. 허벅지에 쥐가 나려다가 자기들이 낄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물러간다.

감동스럽고, 감격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다. "아자 --- 아! 푸하
하핫!" 만나는 사람마다 악수도 하고 파이팅을 외친다. "저, 썹포했습니다."
꼭 미친놈 같다.

칩을 반납하려고 하는 데 학생이 와서 대신 떼어준다. "짜식, 고맙다." 바로
옆에 순두부가 있어 한 그릇 들고 나와 잔디에 앉았다. 하얀 순두부도 이쁘
고, 하늘도 참 맑고 이쁘다. 옷을 갈아입고 결승점에 들어오는 주자들에게
박수를 쳐주며 아침에 주차시켜 놓은 차로 향했다.

다리를 건너는 데 너무나 상쾌하다. 파란 하늘 밑 남한강 저 멀리 뿌연 안
개 속에 산들이 서있고, 잔잔한 강물에 부서지는 햇빛이 눈부시다. 다리 한
가운데 멈춰 서서 경치를 감상하다가 다시 한 번 목청껏 고함을 지른다.
"아자 --- 아!" *^^*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교통 혼잡으로 딱 4시간이 걸렸다. 오늘은 아무래도
썹포의 날인모양이다. 큰 숙제를 다 한 기분이다. 마라톤을 하며 앞으로 또
다른 욕심이 생기겠지만 썹포의 감격은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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