殺鷄의 추억(19세 미만은 어이~).

by Jack the ripper posted Aug 07,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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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전 일이다.
아는분이 청주에서 양계업을 하고 계셨는데
이 양반도 꽤 기타를 좋아하셨더랬다.
하루는 자기소유의 기타도 없이
3만원짜리 뗄깜용 기타를 치고 있던 나를 어여쁘게(훈민정음 어법임) 여겨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여름방학동안 자기의 일을 좀 도와주면
수공예 기타를 구입할만한 자금을 대주겠노라며.
나보다 한 학년 높았던 선배들도 그렇게 유혹에 넘어가
나와 같은 길을 갔다...

악몽은 그렇게 다가왔다....

양계업....
이거 진짜 만만한거 아니다.
그냥 양계장에 죽치고 앉아서
가끔 사료나 주면 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일이 무쟈게 많다.

1.사료주기.
-총 13개의 엄청나게 긴(비닐 하우스 같이 생긴) 닭 사육장이 있었는데
그곳의 중간에 일렬종대로 닭들의 밥통이 있었다.
매일 하루에 한두번씩은 무거운 사료포대를 옆구리에 끼고
그 밥통에 사료를 쏟아 부어야 했는데 밥통수가 너무 많아
이 일을 마칠 때면 늘상 허리가 아팠다.
먹기는 엄청 잘 X먹더라...

2.똥치우기
-제일 쉣스러운 일중의 하나였는데, 일단 닭들을 협박하여 구석탱이로 몰아 넣은 후에
쟁기로 사육장의 바닥을 박박 긁어대면
바닥에 깔아놓은 지푸라기가 닭들의 똥과 잘 비벼진 채로 쟁기 끝에 걸렸다.
구석에 그것들을 다 쌓아 놓은 후엔
또다시 깨끗한 지푸라기를 다시 깔아야 하고
구석에 쌓아놓은 똥들은
다시 리어카나 경운기에 퍼 담아야 했다...
13개가 넘는 사료장의 똥을 4명 정도의 인원이 치우는 건 진짜 보통일이 아니다.
게다가 바쁘게 쟁기질 하다보면 가끔 닭똥의 쓴맛을 좀 봐야 할 때도 있다....

3.사료 창고에 쌓기
-4명의 인원이 총 2,000포대의 사료를 허리에 짊어지고 창고에 차곡차곡 쌓아야 했는데
한번은 사료를 가득 실은 엄청나게 큰 트럭의 뒷 바퀴가 논두렁에 빠지는 통에
그곳에 쳐박힌 사료더미들을 50미터앞 창고까지 짊어지고 가야만 했다.
앞산 너머 동 틀 때 까지.
운전수, XX쉐이....

4.닭 옮기기
-때로는 다 큰 닭은 다 큰 닭끼리, 어중간하게 큰 닭은 어중간한 크기의 닭끼리 분류해야 했다.
이를테면 닭들의 이사랄까.
"닭들아, 모여라...중간 크기의 너네들은 저쪽 집으로 가라..."고 해도 갈 애들이 아닌지라,
어쩔수 없이 완력을 사용하는 수 밖에 없었는데
처음에는 닭이 다칠까봐 품에 한마리씩 안아서 곱게 모셨지만
해가 지고 밤이 깊어지고 수면 시간을 좀먹게 되자 마음속의 측은지심은 싸그리 다 사그러들고
생명으로서의 닭은 안중에 없고 눈 앞에 교촌치킨들만 있더라.
양손에 쥔 닭다리수가 합이 열둘...
닭들....아니, 교촌치킨들은 그렇게 이송되었다.

5.사체 발굴하기
-쉣스러운 일중 으뜸을 차지 하였다.
한여름철의 닭들은 꽤 자주 비명횡사 하곤 했는데
문제는 죽은 넘들을 찿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그 많은 닭들 사이에서 어디에 찌그러져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 말이지.
왜,쌍팔년도에는 나이트클럽을 닭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진짜 닭장 가보면  닭들이 빼곡빼곡, 바글바글하다...그런 이름이 붙을만하다...
고로 인구밀도가 높아 닭들의 스트레스는 실내 온도와 더불어 증가하였을테고
스트레스와 실내 온도의 증가는 닭들에겐 곧 죽음에 이르는 병이었음이라.
좁은 공간에서 사는 쥐들이 넓은 공간에서 사는 쥐들에 비해서
공격성향이 두들어진다는 실험 결과가 있고
인구밀도가 높을 수록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논문도 있는 것으로 보아
역시 사람이든 닭이든 도시를 떠나 드넓은 자연으로 회귀해야....한댄다.
어쨌든,
수만마리 속에 파묻혀 있는 사체 찿기는 그다지 쉬운 일이 아니고
어떤 때는 이미 죽은지 수일이 지난 후에나 발견된 경우도 있어
악취와 더불어 파리 자식들의 환호를 받아야만 했다.

이것 말고도 다른 여러가지 일이 있지만 일단 여기까지.
본문은 지금부터다...

양계장에 있다보니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닭인지라
나와 일행은 틈만 나면 닭을 먹었다.
구워먹고, 볶아먹고, 튀겨먹고,찜쩌먹고....
하지만 오너의 눈치를 살살 보던 우리는
건강한 닭은 어찌 할 수 없었고
죽기 직전의 비실비실거리는 닭만 골라서 잡아 먹었다.
병든 닭을 잡아 먹노라니 영 기분이 찜찜하더라.
원효대사가 해골물의 교훈까지 주었거늘.

닭을 잡아 먹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가 생긴다.
글타.
누가 손에 피를 묻힐 것인가...하는 문제다.
다행이 살육의 경험이 있으신 한 선배가 있어서
죽이고, 내장을 발라내는 일까지 그분이 다 하셨다.
나는 그 옆에서 그저 세숫대야에 손이나 씻으며
"나는 이 닭의 피에 대해서는 책임이 없다 "고 외치면 그만이었다.

장2도의 음들이 마구 엉키어서 이국적 환각을 일으키게 했던
교회의 종소리(라기 보다는 테잎에 녹음되어 있던 종소리)가 울려퍼지던 어느 평온한 일요일 오후.
닭도리탕을 준비하려던 이 선배...그날도 열심히 닭을 잡고 있었는데
그만 칼날이 무디어진 탓인지 쉽게 목숨을 끊지는 못하더라.
(자세한 상황 묘사는 심의에서 삭제)
쉽게 목숨이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의 시간이 길었음을 의미하는지라
끔찍하다는 생각이 영 가시지를 않더라...
찿아오는 손님이 있어 한마리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그 선배는 한마리를 더 잡으려고 했고, 나는 만류했다.
닭을 잡으려던 순간, "내가 하겠다"고 말했던거다.
고통은 가능하면 짧게...이게 나의 바램이었다.

작은 몽둥이을 집어들고 닭의 작은 머리를 빠르게,
그러나 생각보다는 힘이 들어 가지 못한채로 내려쳤다.
일단 기절시키자...라는 생각에서 그랬다.
닭이 반쯤 정신을 잃어 헤롱거릴 때
난 창고에서 어떤 물건을 끄집어 내었는데
그걸 본 모든 선배들이 내게
"잔인한 놈...." 이라 하였다.
가끔 무녀들이 위에서 타고 논다는
길로틴을 닮은 듯한 그 물건...
시골에서 지푸라기 썰  때 사용한다던...

베르사유의 장미가 떨어지듯이 그렇게 떨어지더라...

그 이후로 줄곳 선배들에게
잔인한 놈, 끔찍한 놈, 슬래셔 호러무비스러운 놈, 잭더리퍼(Jack The ripper)같은 놈....
여하튼 별별 소리를 다 들어야 했다.

난 그때마다 따졌다.
아니, 한칼(작두)에 목숨을 끊어 고통을 최소화하려 했던 것이
대체 여러번의 칼(식칼)질로 고통을 오래 지속하게 하는 것보다
잔인해야 할 이유가 있나? 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내가 옳다.
그러나 되돌아 오는 대답은 언제나,
"넌 작두 잖아...띱새야..."

그 때 깨달았어야 했다.
제 아무리 옳은 생각도 외관상 흉물스러운 그 무엇으로 표현이 되면
제 값을 잃어 버리게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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