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으로 기억되어, 다시 음악으로 떠오르는 사람들

by 으니 posted Jul 21,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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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기억된 사람, 이라 했다가 음악으로 기억된 사람들. 이라고 했다가, 그것은 과거형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려 덧붙였다. 다시금 음악으로 떠오르는 사람들.

고등학교 1학년 때 긴 뒷머리가 멋지던 수학선생님, 갸름하구 흰 얼굴에 부드러운 턱선이 나이가 많이 드셨지만 은근히 멋져보였다. 나른한 날 졸고 있는 우리들을 깨우신다구 젊었을 때 이야기를 하시던 와중에.. 이런 노하우를 털어놓아버리셨다.

바람둥이란.. 많은 여자에게 나쁘게 하는게 바람둥이가 아니야.. 진정한 바람둥이란 좋게 헤어지는 것이 진정한 바람둥이다.. 즉, 헤어지고도 그 여자가 남은 평생을 그리워할 수 있는 그런거란 말이다..

당시만해도 꽤나 당돌했던 내가 맨 앞자리에 앉아있다가 불쑥 말했다. 선생님, 비결이 뭔데요? 비결? 비이결? 그런걸 이야기해주면 안되는데.. 아이들은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선생니임, 비결이 뭔데요, 뭐예요. 선생님은 약간 "허심탄회"한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 비결이란 의외로 단순했다.

음악이다, 그건.

음악요? 그래, 음악이다. 음악을 어떻게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주제가를 정하는거다. 좋은 노래들 많은데 그중 하나를 골라서 여자에게 노래도 불러주고, 또 음식점에 가면 그걸 틀어달라 하고 그런식으로 하고.. 헤어질 땐 그 음악을 선물로 주면.. 처음엔 원망도 하고 그러다가도 음악만 들으면 눈물을 줄줄 흘린다. 에이.. 그런게 어디있어요. 허어.. 너네가 몰라서 그래..

이제는 알 것 같다. 음악으로 기억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귓가를 맴돌아 코끝을 스치고 다시금 볼을 따뜻히 감싸 더웁게 온 몸으로 퍼지는 음악의 기운. 차이콥스키 그리그 라흐마니노프 하이든 라벨 로드리고 바하 당신들은 압니까, 당신들의 모든 음악들이 내 사랑의 대지가 되어준 것을 내가 얼마나 감사하는지.

하여, 나는 어떤 음악으로 기억될 것인가.
아니, 음악 아니라 무엇으로 나를
기억하고,
떠올리는지.




덧붙임 1) 바람둥이에 대한 선생님의 정의는 꽤 수긍이 간다. 하지만 나라면 내가 사랑한 여자를 남은 평생 날 그리워하게 만들기보다는 그저 남은 평생 내 옆에서 바가지를 긁게 만들어버리겠다.

덧붙임 2) 음악만 들으면 눈물을 줄줄 흘린다는 선생님의 말은 틀린 것이 하나 없다. 하지만 그것이 비결(?)은 아니다. 여자가 마음이 아플 땐 음악 아니라 무엇을 보아도,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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