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몽사몽간.

by dogdreamer posted Apr 1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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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가오니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는구나...

몇달전 얘기다.
아침에 부시시 일어난 나는
방광을 비우고 나서  먼저 일어난 마눌님에게
아침 식사를 거르겠다고 얘기 하였더니
하늘같으신 마눌님이 이유를 묻는다.
아침에는 입이 텁텁해서 카레는 먹고 싶지 않다고 얘기 하였더니
날 이상하게 쳐다보며 자기는 카레같은건 만들지도 않았다고 하였다.

무슨 소리야...아까 잠결에 카레 만드는 거 봤는데....라고 얘기했더니
마눌님이 기가 막히다는 듯 웃어버린다.
글타....
꿈이었던 거다.
참 이상하다.
성진이의 팔선녀 꿈만큼 생생하였거늘.

지금은 덜하지만
예전엔 현실이 꿈처럼 몽롱해서
개가 내꿈을 꾸는건지 내가 개꿈을 꾸는건지  
구분이 안될 때가 꽤 자주 있었다.
이를테면 현실감(여기서는 '세상을 살아가는 감각'이라는 의미 보다는 말 그대로 현실을 현실처럼 인지하는 감각)이 나지 않았다는 얘기인데
이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들이 있더라.
비염이 악화 되면 이러저러한 이유 때문에 현실감이 없어진다,
낮과 밤이 바뀐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현실감이 없어진다,
자신과 현실 세계와의 괴리를 많이 느끼면 현실감이 없어진다...등,

어쨌거나....

가장 황당했던 비몽사몽 스토리.
대략 10년전 일이다.

만남과 설레임과 퇴짜와 자괴감이 늘 같은 공식으로 되풀이 되었던, 아직 총각이었던 시절에
칭구인지 앤인지 경계가 늘상 모호한 관계인 어떤 뇨자가 있었더랬는데(그뇨 입장에서는 물론 명확하였다)
그뇨와 나는 그렇게 모호한 관계인 채로 대략 7년을 끌다가
결국 회자정리의 세상 이치대로 지들 갈길을 갔단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한번은 생일 선물로 귀걸이를 사준적이 있었는데
며칠 후 그뇨에게 전화가 왔다.
그 귀걸이의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갔으니
다른 걸로 교환하거나 아니면 수리라도 해달라는 내용이었는데
맘이 밴댕이 속 같았던 나는
애써 서운함을 감추며 알겠다고 대답하곤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 후로 두달 동안 일체의 연락을 끊었다....라기 보다는 몇번이나 연락을 하고픈 충동을 억눌렀다.
전화기를 들고 번호를 눌렀다가 신호음만 몇번인가 듣고 그대로 끊어버리기를 수차례...
독한女ㄴ.
내가 연락 안한다고 지도 나랑 똑같이 구냐...니기미...
뭐, 대충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더이상 자존심이 망설임을 더이상 제압하지 못할 무렵
그뇨로부터 왠일로 전화가 왔다...

내가 먼저 짐짓 시치미를 떼고 얘기를 시작했다.
어....잘 있었냐...그동안 전화 못해서 미안하다. 내가 좀 바빴다...
그뇨도 말문을 열었다.
아...오랫만이구나...그동안 미안했다.. 연락도 못하구. 실은 내가 많이 바빴거든.
내가 대답했다...사실 이,삼일전에 너네 집으로 전화를 몇번인가 했었는데(점점 궁색한 처지가 되어간다ㅡ ㅡ;;) 하필 그 때마다 받지를 않더라...이러쿵 저러쿵...
그러자 그뇨가 대답했다.
아...그랬구나...근데 어차피 나랑 통화 하기는 힘들었을 거야...왜냐면...나, 이제 더이상 집에 없거든.
내가 물었다.
왜? 가출했냐?
................
아님, 출가했냐?
................
그럼, 쫓겨났냐?
................
우쒸, 그럼 모야~~
한참 있다 그뇨가 입을 열었다.
너 참, 디게 눈치 없다.
뭐?
여자가 집 나가면 뻔한거 아냐?
무슨 소리야?
지금 여기 어딘지 알아?
알게뭐냐.
바다소리 안들려?
안들려.
....여기 제주도야.
거긴 모하러 갔는데?
...............
직장 때려쳤냐?
..............
거기로 이사갔냐?
너도 참...답답하다...여자가 제주도 오면 짐작가는거 없냐?
그새 결혼이라도 했냐?
......그래. 이제야 알았냐?
(당황하며)뭐, 뭐야....말한마디 없이...
미안하다. 너한테는 얘기하기 좀 뭐하더라...

위의 대화는 일체의 픽션이 들어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대화다. 여기까지는 명확히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는 뭐라 얘기 했는지 정확히는 기억이 없다. 아마 침통의, 마지막 고백 모드로 들어 갔을거다...말은 안했지만 그동안 널 사.....뭐 대충 이런 멘트. 우씨...닭살시러워라.....

(비통함을 애써 감추며)그..래, 잘 알겠다....
.........................
.........................
.........................

쑥쓰런 침묵을 깨는 소리가 있었으니...

히히히히~~
엥?
너도 무쟈게 순진하구나...
......?
너 바보냐? 내가 모하러 신혼여행까지 와서 너한테 전화를 하겠냐?

그건 그렇다....
순진했던 나는 순도 100%의 쌩구라에 당한거다.
무서운 女ㄴ...어쩜 그렇게 깜쪽같이...
그날 난 완존히 찐따가 되었고
나름대로 무쟈게 쪽팔렸던 나는 그 이후로 또 한달간을 전화하지 않았더랬다...라기 보다는 또다시 전화기 앞에서  망설임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에라이~쪼잔한 넘...

결국엔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두번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불확실한 관계의 무의미한 연장에 불과할 뿐인 만남에 많이 지쳤기 때문에.,..라고 말하고 싶은데
사실은 그뇨에게 정리해고 당한거나 다름없었다....ㅠㅠ
정리해고 사유는
동성동본 이었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뇨에게 난 앞날없는 무명의 서투른 베짱이에 불과했으므로.
전화기앞의 망설임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계속되고.

그 후로 3년이 더 흐른 어느날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주변에 먼지가 자욱한 어느 사무실 안에 있었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한개의 책상위에 전화기가  한대 놓여져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내손에는 그뇨의 전화 번호가 적힌 쪽지가 있었다(당시에 그뇨는 실제로 출가외인의 몸이었으므로 연락이 완전히 두절된 상태였다).
나는 급한 마음에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화기 속에서 그뇨 아닌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린다.
옆 사무실의 전화와 브릿지가 되어 있는 상태여서 옆 사무실의 누군가가 통화를 계속하는 한, 나로서는 통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던 거다.
조금 기다린 후에 다시 수화기를 들어 보았으니 마찬가지다.
그러기를 몇번 반복했다. 애간장이 탔다.

그리고는 비몽사몽간에 꿈에서 깼다...
나는 침대위에 눕혀진 채로, 전화 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 있었다.
문득 내방에 있는 전화기에 눈이 향해진 순간
'아, 그래. 저걸로 전화하면 되는구나...'
라는 생각에 몸이 일으켜졌다.
두 다리가 방바닥에 닿는 순간
비몽사몽의 장막이 걷혀지고
나는 비로소 현실을 직시했다...
아, 참. 꿈이었구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주 잠시, 꿈과 현실을 혼동해 버린거다...
속에서는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으나 전화를 사용할 수가 없었고
현실에서는 전화기는 사용할 수 있었으나 전화 번호를 알지 못했던 거다.

만취한 밤에 잠자리에 들게 되면
그날은 대개 냉장고 문을 열어 시원한 음료수를 마시는 꿈을 꾸게 된다.
이른바 꿈의 '원망충족'기능이라나 뭐라나...
그러나 그뇨에 관한 꿈에 대해서는, 이 기능은 별반 효력이 없더라....

한번은 그뇨에게 전화하는 꿈을 또 꾸었는데
그 때는 왠지 자꾸 손가락의 조준이 빗나가서 자꾸 다른 번호만 눌러대는 것이 아닌가...
꿈속이지만 미치고 환장할 노릇.

프로이트님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만...
대체 왜 안되는 걸까?
어차피 꿈일 뿐인데  되면 좀 어때서...ㅡ ㅡ;;
꿈해몽의 권위자들은 이유를 알까.




마눌님이 이 글 보면
난 주거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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