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의 함성 커지는 사회

by wldjf posted Apr 15,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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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극장에 가서 <패션 오브 더 크라이스트>를 보았다.
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 시작하는데 주체할 수가 없었다.
우는 모습을 감추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 옆자리도 앞자리도 모두 울고 있었으니까.

사람들이 우는 마음이야 각기 다를 것이나 나를 울린 것은 예수의 모진 수난만이 아니었다.
예수가 결국 십자가를 지도록 죄인으로 내모는 유대인 제사장과 군중 때문이었다.
무엇이 저토록 저들을 공격적으로 만들었을까.
무엇이 저들로 하여금 타인을 무리지어 심판하고자 하는 욕망에 휘말리게 했을까.
그들의 거친 함성과 기세등등함 앞에서 괴롭게 그러나 묵묵히 조롱과 매질을 인내하는 예수를 바라보는 일은 고통스럽기 그지 없었다.

오래전에  누군가에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난다.
시장 한복판에서 아기를 포대기에 둘러업은 여자와 건어물상(商)의 남자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건어물상 주인은 여자가 좌판에 내놓은 상품을 훔쳤다는 것이고 아기를 등에 업은 여자는 아무것도 훔친 것이 없다며 서로 삿대질을 해댔다.
이 소란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어 구경하기 시작했고 여자의 등에 업혀서 잠들어 있던 아기가 잠을 깨어 울음을 터뜨렸다.
내가 언제 물건을 훔치더냐며 대들던 여자는 아이 울음 소리에 더 짜증이 났는지 연방 등 뒤의 아기를 포악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세게 때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아기는 더 울어댔고 포대기를 두드리는 여자의 손에는 더 힘이 들어갔다.
이 때 건어물상 주인이 재빨리 포대기 속으로 손을 넣어 뭔가를 쑥 끄집어 냈다.
여자가 숨기고 있던 명태포 한 묶음이었다.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되어 건어물상 주인은 이래도 훔치지 않았느냐며 명태포를 여자의 얼굴에 들이대며 윽박지르고 여자는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는 광경이 연출되었다.
그때였다.
아이를 사정없이 때리던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손을 뒤로 두르며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
울지 마라,울지 마라 하며 본래의 순한 어미 목소리로 돌아가 아이를 달래고 있었다.

무엇이 그녀를 한순간에 그런 공격적인 존재에서 유순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일까.
인간속에 숨어있는 악(惡)이, 사람들이 저마다 감추고자 하는 내면의 어둠과 부정이 오히려 역으로 타자에 대한 공격을 부채질하는 것은 아닐까.
내게 이 삽화를 들려준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매듭지었다.

때가 때이어서 더 그러겠지만 요즘 어디서든 나와 뜻이 다른 상대를 공격하거나 심판하는 말들이 홍수처럼 넘쳐난다.
다시는 마주앉을 일이 없을 사람들처럼 서로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우리안에 내재(內在)되어 있는 모든 악들이 죄다 튀어나와  한판 벌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자신들의 우매함이 진실을 가리고 있었거나 아니라고 극구 잡아떼었던 자신의 잘못이 대명천지에 공개된 후엔 어쩌려고 저러나 싶을 지경이다.

상대방을 십자가에 매달아 못박아야 된다는 함성이 메아리치는 사회는 무언가 병든 사회다.
우리들 각자는 자기 내부에 무슨 악의 씨앗을 감추고, 애써 키우고 있는 것일까.


                                                                                              -신 경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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