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에 더욱 더 귀기울이는 롤랑 디앙스에게 바침)
사실 나 아까 자고 있었어.
알아.
그래? 나 멀쩡하게 대답 잘 했구 말도 많이 했잖아.
응.
혹시.. 나 또 한동안 말 안하고 졸다가 깨서 안 잔 척 했어??
어.. 그랬어.
그러면 그동안 당신은 뭐 했지?
그냥 있었어.
무슨 말을 하든가 깨우던가 전화를 끊던가 하지 그걸 그냥 들구 있었단 말야?
그의 귀는 섬세하다. 오른쪽 깜박이 넣는 소리, 백화점의 안내 방송 소리, 내가 신은 그 날의 신발 소리,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소리들을 전화기 건너편에서도 잡아낸다. 내가 약하게 뒤척이는 것도, 전화기를 왼쪽 귀에서 오른 쪽 귀로 바꾸어 대는 것도 그는 소리를 들어 안다. 나의 옅은 숨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여주는 그는 아마도 침묵 또한 들을 줄 아는 것이 분명하다.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 전화기 너머
보이지 않는 나를
그가 듣는다.
아마도.. 그는 나의 침묵을 들어 알기 때문에, 내가 입을 열면, 첫마디를 꺼내기 전에 마지막 마디를 듣을 수 있는 것이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