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이었다, 그 사람이 손을 뻗어 닫히려는 철문에 힘을 준 것은. 완강한 문은 그 사람이 손 댄 그 자리에서 잠깐 멈추었고, 곧 고집을 꺾고 다시 열렸다. 문에 끼었던 여자가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그 사람을 한번 민망하게 웃으며 쳐다본 것으로 고맙단 인사를 하고 어서 총총 옆칸으로 피한다. 화장을 곱게한 아줌마다. 딸 아이 학교 선생님을 뵈러 가는지, 십년만에 회사 앞에서 외식이라도 하잔 남편 말에도 집안일이 밀려 뒤늦게 출발한 것인지, 알 순 없지만 그녀는 어쨌든 전철을 탔다. 남자는 아무일도 없었던 듯 문 옆 기둥에 그대로 기대서있다.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생각한다. 전철문은 사람이 힘을 주어서 열리는 것이 아니다. 기계는 사람의 힘을 능가한다. 다만, 무엇인가 "이물질"이 끼어든 것이 감응되면 잠시 다시 열렸다가 닫힐 뿐이다. 나는 그 남자가 자기 손으로 그 문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꼼짝안고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뛰어든 사람을 위해 손을 뻗었고, 기꺼이 그 사람 대신 더 문에 가까운 쪽에서 "이물질"이 되길 자처한 것이다. 문은 대칭으로 닫히기 때문에 그의 한 손으로 끼어든 사람은 몸을 위한 공간을 벌었고, 문은 이상을 감지한 후 다시 열렸다.
그런 것이다.
사람은 기계의 힘을 능가할 순 없지만,
결국 그 남자의 손이 문을 다시 열리게 했다.
세상을 움직이는 건,
힘이 아니라 이런 손길,
손길에 담아진 마음.
움직이지 않고 기대어 서 있는 그에게 가서, 만약에 당신이 제대로 날 사랑하게 된다면, 그렇게 그 마음, 움직이지 않을거냐고 물어보고 싶었다.
참고문헌 - 으니, 소위 "꽉 낀 상황"에 대한 고찰, 2004a, p.5
삐- 하는 경계음과 함께 문이 닫힐 때, 꼭 "슬라이딩 도어즈"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에선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고 사랑도 만나는 수가 간혹 있는지 몰라도, 현실에서 이건 정말 꽉 끼이는 삶의 꽉 낀 장면에 불과하다. 이런 경우 당사자와 목격자들 모두 민망한데, 왜냐하면 이 해프닝은 반드시 정지 시퀀스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전철문은 늘 두단계로 닫힌다. 무서운 속도로 닫히다가, 중간 30 여 cm 를 남기고 반박자 쉬는 척 한 후 다시 얄밉게 닫히는데, 보통은 이 30cm 안에 가방 및 얼굴 등 신체 일부분을 밀어넣기를 성공한 이라면.. 그 반박의 정지 상태에서 다시 문이 감응 후 열릴 때까지 대략 2-3초간을 지금껏 살아오면서 낯뜨거웠던 온갖 기억을 재생해내면서 마치 만겁의 시간이 흐른 듯 느끼게 된다. 다행히도 문이 열렸을 경우엔, 전철 내부의 사람들에게 민망하고, 원망스럽게도 문이 닫혔을 경우엔 승강장의 사람들에게 매우 민망하여, 양 경우 공히 주인공은 늘 자리를 옮겨야만 한다는 원칙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