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utumnal equinox

by 으니 posted Sep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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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나서 달력을 확인했다.

추분.

여름낮이 그 끝에까지 이르는 '하지'를 지나, 점점 길어져오던 밤이 낮과 꼭 같아지는 날이다.

밤은 늘 내 곁에 있었다. 바삐 움직여야하는 낮과는 달리,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이 되어주었고, 모든 것이 손 닿지 않는 먼 곳에 있었을 때에도 나를 서늘하고 고요한 그의 담요로 감싸 덮어주었다. 나는 밤에게 이야기했고, 밤에게 편지를 썼으며, 그가 나를 거두어 잠으로 옮겨줄 때까지 마음껏 흐느끼거나 행복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밤을 사랑했다고 해서, 밤이 아주 긴 겨울을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을 마냥 좋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내 인생에 낮이 없고 밤만이 계속되었었다면 난 이미 말라죽었을 것이다. 시끄럽고, 일회적이며, 여러가지 목적이 교차하는 전장으로서의 낮, 노동의 낮에 잠시라도 몸과 마음을 내맡겼기 때문에 삶을 부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추분이 늘 새삼스럽다. 낮과 밤이 꼭 같은 이 날, 그럴 순 없을까. 다른 것을 위한 시간과 나 자신을 위한 시간이 엇비슷할 순 없을까.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꼭 같게 있으면 안될까.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들이 꼭같이 공존할 순 없을까. 내 인생에서 낮과 밤이 늘 꼭.. 같은 시간으로 주어지면 안될까. 배타적인 순수성은 싫다.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세련되어지는 것과 원래의 처음 마음들을 지키는 것이 어느 한쪽도 기울고 넘침이 없이 꼭 같으면 안될까.

equilbrium.. 아직도 내게는 너무나 멀기만 한 것.

가을의 한 가운데서,
휘청,
나의 한 중간이 꺾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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