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남의일같지 않네요...

by 차차 posted Jun 03,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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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남의일같지 않다고 느껴진 이유는..
제가 인문학을 좋아서 전공하는 철학도이기 때문입니다..

야후에서 올라온 기사와.. 실제로 주변에서 보는 문학 역사 철학 전공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볼때.. 나름대로 이 사람의 자살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뭔가 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이죠..

저사람도 나와같은 젊고 치열한 시기를 보냈을테고.. 나와 같은 고민을 해봤을
그런 인생선배가.. 서울대 시간강사라는.. 교수자리가 목전에 있는 그 문턱에서
왜 자살을 택해야 했을까..

이 기사를 처음 접했을때, 제 앞에 스쳐지나간건 바로 저와 기숙사를 함께쓰는
룸메이트 형이었습니다. 그분도 서른네살이고 베이징대 역사학 박사과정
사년차에 계시죠.. 스무평도 안되는 기숙사 방안에 무려 사천 구백여권의 전공
서적을 쟁여놓고.. 그 권이라는게 낱권으로 권이 아니라 백과사전 한질을 권
으로 쳐서 사천구백권이구요 낱권으론 7천권정도 될겁니다..
칠천권..! 못보신분은 실감이 안나실겁니다.. 제 방에 들어오면 어디에도 책이
죠.. 세탁기 위에.. 심지어 화장실 변기 위에도 책이 쌓여 있고.. 일주일이
머다하고 여기저기 쌓아논 책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방안은 각종 고서적들이 뿜어내는 매캐한 곰팡내.. 김치냄새..쌓아논 빨래냄새
그리고 진득진득 묻어나는 담배냄새까지 어울어져 정말 환상의 하모니를
자아냅니다...  뭐 이런 생활 환경은 둘째치고.. 그분 공부하시는모습 정말
처절합니다.. 평균 수면시간은 하루 네시간.. 신경성 위경련... 새벽마다 들려
오는 신음소리와 한숨소리에 잠을 뒤척인게 한두번이 아닙니다..그 박사논문
의 스트레스란 겪어보신분들만 아실겁니다..
자기 자신이 채찍이 되어.. 자기 자신이 스스로의 숨통을 죄는 그...
전 그 정말 처절하다고밖에 표현할수 없는 박사과정의 고통을 바로 옆에서
겪었고.. 그 고통은 정말 오직 한가지 길.....
교수가 된다는.. 정말 인생의 승부를 건다는.. 그 집념에서 나온다는것이죠..
좋게 말해 집념이고.. 나쁘게 말해 미련이랄까?

여튼 그 서울대 시간강사의 자살을 접한후.. 제게 오버랩 되는건.. 그사람이
인간적으로 겪었을 고뇌과 고통이었죠.. 그리고 이곳 기타매니아에도..
제가 아는바로도 몇분 학문의 길을 가시는 분들이 계시고.. 해서 이런 고통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인생에 있어 유일하게 진지한 고민은 바로..
스스로가 왜 자살하지 않는가 에 대한 질문에 대답하는 일이다...
라고 알베르 까뮈가 말했죠..
세상 그 누구도 존재자는 왜 비존재자가 아니고 존재자 인가 하는
따위의 고민으로 자살하지는 않으니까요..
저에게도 죽어야할 이유따윈 없습니다..
또 굳이 살아가야만 할 이유도 없는것 같습니다..
그냥.. 삶이란 까뮈가 말했듯이 습관처럼 지속되어지는거겟죠...
저와 새장속의 친구가 고민했던것처럼...
삶은 그냥 살아지는겁니다... 부조리하게...

상자속에 갇힌 교수가 왜 자살했는가...
이유는 사실 별거 아닐수 있습니다.. 부인과의 사소한 말다툼...
카드빛 독촉.. 어려운 경제사정... 사실 별거 아닌것처럼 우리에겐 보이지만..
까뮈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사소한 것들이 이사람의 등을 떠민겁니다...

세상의 그 어떤 죽음도 간단치 않습니다...
공부 헛했다.. 는 표현으로 간단하게 매도될수 있을만큼...
그분이 서른 네평생을 살았다고 저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ps.
물론.. 그 백교수님의 자살.. 오늘 올라온 기사 읽어보니까 석연찮은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js님 말대로 대한민국의 고달픈 시간강사들..
정말 구두 밑창값도 안나오는 봉급에 뛰는 그분들의 아픔을 대변하기에는
너무 사치스런 죽음이라고.. 맞는 말씀이죠..
가족을 생각하면 더욱더 용서받을수 없는게 자살이란 행위입니다....
그냥.. 그분의 자살은 어처구니 없는 "평범한" 자살일수도 있겟지만...
우리는 이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조차 해보지 않을..
그런 메마른 감수성을 가져선 안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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