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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118.80.228) 조회 수 4436 댓글 5
34살, 남자로서 한창 멋있을 때다. 나는 개인적으로 남자 나이 서른 넷정도가 제일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인가 목표를 세우고 전력을 다하고 있을 때이기 때문이다. 열정이 너무 식지도 않았으면서, 거칠지도 않은 나이. 일과 연애에 대하여 20대부터 좌충우돌하며 학습한 효과가 나타나면서 조금씩 세련되어지는 나이, 조그만 우수는 오히려 가진자의 여유로 보이는 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34살의 남자가 죽었다고 할 때는 그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목표를 세우고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안풀린다"는 것이었을터.

대체, 그 남자의 목표가 무엇이었을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며, 유서 또한 직접 본 바 없으니 내가 함부로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은 이를 애도하고 안타까이 여겨야할뿐이다.

그렇다면, 나는 내가 살아남아 있었으며, 현재 살아있고, 앞으로도 계속 꼬부랑 호호할머니가 될때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구차하게 밝혀야한다.

그에게는 죽을만한 이유가 있었다면, 내게는 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마지막 갈등을 하고 있었을 때, 나는 지척간에서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다. 30일 31일에서는 나와 같은 전공을 가진 이들에게는 가장 큰 잔치인 "역사학 대회" (단순히 모두모두 크게 모인다는 뜻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회'는 아니다)가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일에 있다손치더라도 단순하게 그의 상황과 나의 상황을 비교해볼 순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앞으로 닥쳐올 것이 뻔한 상황은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박사실업률 제1위가 역사학 전공, 2위가 국문학인 것은 그리 새로운 사실도 아니니까.

그 사람 역시 목표한 것을 위해 매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해서 좌절하고 절망하고, 결국 현실에 부적응했다. 과연 그 목표가 무엇이었길래.. 뜻을 이루지 못해서 "파국적인 결말"을 맞게 된 것일까.

나의 목표는 여러번 반복하지만, "교수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지 대학원에 적을 두고 있다고 하면 일차적으로 교수되는 것이 목표냐고 물어본다. 당연한 이야기이다. 이러한 시장구조에서 대학원을 나와서 교수를 하지 않으면 바로 실업자가 된다. 공학박사도, 이학박사도, 의학박사도 아닌바에 (인)문학박사들은 어딜가도 퇴짜다. 박사에 준하는 연봉을 감당하면서 인문학박사에게 시킬 일이 마땅치 않은 까닭이다.

또한 공부하는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이들은 공부가 직업이다. 남들이 죽어라고 일하는만큼, 책사보고 수업듣고 외우고, 저녁 밤 주말 휴일 할 것없이 공부의 압박에 시달린다. 회화는 잘 못해도 영어책 하나 갖다주면 얼렁뚱땅이라도 대충 무슨 소리인지 엮어내는 건 기본이요, 그 외 다양한 언어에 통달한 사람 부지기수다. 대부분 인문학 전공자는 학문 특성상 여기저기에 걸리는 게 많아서 철학전공자라고 역사 조금 손대지 않는 것이 아니고, 문학 전공자라고 철학 손대지 않는 것 아니다. 요컨대, 학문의 바다는 넓고 공부할 것은 많다!! 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가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 남들은 일하면서 돈버는데, 공부하는 이들은 일하면서 돈낸다. 자기 돈 들여 학비대고, 자기 돈 들여 책사보고, 자기 돈 들여 복사 및 제본하며, 자기 돈 들여 회식하고.. 하면서, 정작 자기 돈 들여 결혼하는데 성공하는 사람 못봤다..

그렇게 십년공부 했다 치다. 드디어 교수발령이 났다. 학교 다닐 때는 우습게 보던 이름도 없는 어디 구석에 있는 새로 생긴지 얼마 안되서 도서관도 짓다 만 대학이라도 발령이 나면, 그야말로 인생 풀린거다. 다 보상받는 거다.

...

만약, 상기한대로만 생각한다면 그 사람 죽을 이유 확실하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아무도 안 알아줬고, 그래서 할 일이 없고, 생활고에 시달린거다.



그러나 내가 살아남아야할 이유에 대해 변명을 시작해보자면..



죽을 이유는 절대로 없다.



공부는 애시당초 교수되고자 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명언이 있지 않는가? "공부해서 남주냐"고.. 물론, 공부 열심히 해서 남주는 것도 좋다. 사회에 지식 환원하고 도움되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기본적으로 공부한 건 남주는게 아니라 자신에게 남는다.

알고싶은 욕구, 조금 더 파고들고 싶은 욕구, 새로운 설을 만들어내고 싶은 욕구, 그리고 그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고 싶은 욕구.. 들이 사람들이 공부에 매달릴 수 있게 하는 기본 요인이다. 교수가 되냐 안되냐는 것은 이러한 끊임없고 가도가도 끝없는 학문의 길을 정식으로 돈받고 안정되게 하는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지.. 공부 자체에 관한 문제는 아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석사 논문도 쓰고 박사 논문도 썼다. 그래서 시간강사 생활 하면서, 학교에서 그런대로 버텼다. 그런데, 가도가도 소위 "자리"를 안내주고, 정식으로 남들처럼 돈받으면서 공부할 꿈은 가망도 없다 치다. 그러면.. 그 때는 정말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가장 큰 기로에 서는 때다.

바로, 공부를 계속하냐 마냐의 기로이다.

계속한다고 가정할 경우, 계속하는거다. 지금까지 해왔던 어려운 생활, 공부하는 직업과 생계를 위한 다른 일을 병행하면서 몸이 부서져도 할 수 없는거다. 그래도 공부하는 게 좋은 걸 어떻게 해. 좋으면 해야지.

공부를 만다고 할 경우, 이제 공부하는 기쁨과 괴로움은 이만큼 누렸고, 내게도 나하나가 아니라 가족이 있으니 현실적으로 더이상 공부를 해서는 괴로움만이 있겠다고 생각하는 경우다. 그런 경우에 과감히 공부를 그만두면 되는 것이다. 애시당초 누가 공부하라고 돈주면서 발목잡아서 공부한 거 아니다.

그런데 문제점은 공부를 꾸역꾸역 계속하기는 쉬워도, 그만두기가 쉽진 않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들인 공이 아까워서.. 라고나 할까? 주식에도 "손절매"의 시기가 있다. 어느 순간에는 아까워도 용단을 내려서 접고 새로운 종목에 대해 투자할 것을 분석해야한다. 그런데 학부때부터 이십년 들여 한 공부 하루아침에 그만두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순간에 훌훌 털고 이제부터는 그 어떤 일도 하겠다는 각오를 하기가 쉽지 않다. 공부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우면서도 또 가장 편하고 쉬운 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 못그만두는 경우에 한가닥 희망을 보는 것인데, 바로 소위 "교수자리"에 대한 희망이다.

결국엔 죄다 욕심인 것이다.

공부했으면 됐지, 공부해서 교수되길 바라면, -말을 좀 적나라하게 하자면- 애시당초 교수 밑이나 닦을 것이지 공부할 결심은 뜨겁게 왜하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지금은 공부하는 것이 좋아서 좀 어려운 사정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피우고 공부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엔가 공부하기가 참 싫다, 이젠 지겹다 싶을 때가 있을지도 모르고, 남들처럼 사회적인 성취도 없이 공부에 매달리는 자신이 우스워질 때가 올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냥 공부를 그만둘 것이다. 그리고서는 처자식.. 보다는 남편님과 자식이 있겠지만, 가족들과 나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출판사에서 교정을 본다든가 하는 그나마 몸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아니라면, 집에서 하나에 5원짜리 귀걸이에 알을 꿰거나 애를 보더라도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만약 끝까지 공부가 싫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내게 그나마 시간강사 자리도 안 줄 수가 있다. 학위과정을 마친후에는 "일반인"이 되어서 시간강사 자리라도 안 맡으면 도서관 출입증도 없다. 쳇. 교수 안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아예 도서관도 못가게 만드는게 바로 "실업"의 시작이다. 그래도 별 문제 없다. 도서관이야 주민증 맡겨 매일같이 외부인 방명록 찍고 가면 되는거구, 강사 자리 없으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 할 시간은 더 많다. 오히려 하고 싶은 걸 하게 자유로워지는데 무엇이 문제랴. 이제 매인몸도 아닌 것을. 솔직히 대학원과정이나 강사 과정에 있으면 참 자기가 하고싶지 않은 공부를 많이 하게 되지만, 아예 마이 웨이를 외치는 자에겐 그런 걱정이 없지 않는가.

물론 나의 생각은 현실을 도외시 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정도로 생각하지 않고서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교수되려고 공부하면, 열에 아홉은 인생이 즐겁지 않다. 교수되는 사람이 열에 하나도 안되니 즐거울 리가 없다.

흥분해서 말이 길었지만, 좌우지간에 나는 도끼자루 썩는지 모를 이 신선놀음을 계속할테다. 내가 즐거운 한.

재미없어지면 과감히 손절매한다. 다른 즐거운 일 하면서 살아도 아까운 인생이니까.

Comment '5'
  • 으니 2003.06.03 10:08 (*.46.7.176)
    "교수"가 좋은 점은 딱 하나예요. 공부가 좋아서 선택한 사람이 공부만 할 경우에도 생계가 보장된다는 거죠..
  • 지나가는얼간이 2003.06.03 11:24 (*.222.193.82)
    좋은글입니다...시간 날때 이런 주제와 비슷한 내용의 글을 한번 올릴께요....^ ^
  • 울나라에서 2003.06.04 15:31 (*.190.147.118)
    공부만 할 경우에도 생계가 보장되는 교수가 그리 흔한 줄 아세요? 그게 일반적 현상이라면 이 나라의 대학교육이 이리 되었겠어요?
  • 또 울나라에서 2003.06.04 15:36 (*.190.147.118)
    공부만 해서 생계가 보장되는 것으로 만족할 교수가 그리 흔한 줄 아세요? 그게 일반적 현상이라면 이 나라의 대학교육이 이리 되었겠어요?
  • 울나라에서 2003.06.04 15:44 (*.190.147.118)
    공부가 좋아서 선택한 사람이 공부만 할 경우에도 생계가 보장되는 것을 딱 하나의 좋은 점으로 여기는 으니 같은 분이 얼른 교수가 된다면 참 좋을텐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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