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고비아의 일화들

by 최동수 posted Aug 12,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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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세고비아에 관해 여기저기서 모은 얘기들입니다.

내용중에 아시는 바와 좀 다르더라도 참고나 하시라고.



1) 세고비아가 사용한 악기들 :


Andres Torres Segovia(1892∼1987-94세)는 일생동안 여러 가지 기타로
연주하였다.

그중에는 물론 Jose Ramirez3세와 Ignacio Fleta Sr.도 있었고 사망 3년 전에는
하우저4세, 그리고 마지막 해에 Richard Brune의 악기도 샀다.

그러나 세고비아와 오랜 40여 년간의 연주생활을 함께한 악기는 사실상 2대이다.
하나는 세고비아의 첫사랑 Manuel Ramirez이고,
다른 하나는 Herman Hauser 1세 이다.
세고비아는 이 두 악기로 각각 20여 년간을 연주하였다.

그의 연주생애는 무척 길어서 1960대 이후 세상을 뜨기까지 후반기의 40년간은
다른 악기들을 사용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
첫째, 이 두 대의 악기야말로 현대의 기타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는 것.

둘째, 우수한 악기라도 명연주자와의 인연이 없으면 명기로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
다시 말해서 명기와 명연주자는 공생관계에 있다는 것.

셋째, 천부적인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행운도 따라야 된다는 것.
어찌 보면 1920-1930년대는 어떤 면에서 기타제작의 쇠퇴기로 볼 수도 있다.
당시 명공으로 알려졌던 Jose Ramirez-1(1923), Manuel Ramirez(1916),
Enrique Garcia((1925) 및 Francisco Simplicio(1932)와 Domingo Esteso(1937),
등이 타계하고 Santos Hernandez 밖에 남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따라서 하우저 1세에게는 천재일우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가 알만한 소수의 명연주가들이 있었으나, 세고비아의 명성에 가려서
큰 빛을 보기 힘든 시대였다.

그러므로 그 시절에는 세고비아가 선택한 악기가 명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2) 세고비아에 관한 얘기들 :

옥스퍼드 대학에서 명예음악박사 학위를 받기도 한 기타의 거장 세고비아.
연주 중에 소음이 들리면 하던 연주도 멈춰버리는 카리스마의 세고비아.
항상 찬사와 비평을 함께 끌고 다니던 그를 사람들은 오만, 괴벽, 단순한
어린아이 같다는 등으로 평하기도 하였다.

- 예술과 시의 순수음을 전하는 낭만적 독주연주자.

- 기타를 자그마한 살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넓은 음악당으로 나아가게 한 리더.

- 거트현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었던 최고의 연주자.

- 나일론 현이 개발된 후에는, 개인적인 사유로 1번현 대신 미리 늘린 2번현을
사용하였다.
그는 항상 2번현을 사용하지 않는 기타에 걸어서 늘린 후에 1번현으로 사용하였다.
(하긴 파가니니도 비슷한 이유로 비올라 현을 사용했었다).

- 그의 성공비결에는 청중을 매우 잘 다루었다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그는 연주하는 동안 종교적이라 할 정도로 정적을 요구한다.
누구든지 소리를 낼 대에는 자리를 떠나야만 한다는 것을 이해시킨다.

- 그의 연주는 기타소리로서는 극히 이상적이며 클래식 기타의 20세기 전시대를
통해 가장 훌륭한 소리이다(존 윌리암스).

- 그의 영향력이 컸던 이유는 그가 유일한 세계적 기타의 거장이라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가 하는 일을 옳다고 느꼈기 때문이다(줄리안 브림).

- 그는 평생 동안 여러 대의 기타로 연주한바, 녹음에는 헤르만 하우저 1세,
호세 라미레스와 이그나시오 플레타를 사용하였다.

- 그러나 그가 제자들에게 추천한 악기는 이와 다른 악기, 즉 스위스 제네바의
비우데스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카사 누네스 였다.

- 어느 때부터인가 세고비아는 마음에 드는 기타를 만나면 대금을 지불하시 시작하였다.
세고비아가 명성을 날리자 여러 제작가들이 앞을 다투어 세고비아에게 기타를 헌정하곤 하였다.
세고비아가 로베르 부쉐의 공방을 방문하였을 때, 부쉐의 기타가 마음에 들어 가져가려고
케이스에 넣어달라고 하자, 부쉐는 악기 값을 치루라고 하였다.
세고비아는 대노하여 그냥 나가버렸고, 이 토픽이 부쉐를 더욱 유명하게 만든 일화로 전해
오고 있다.

- 헤르만 하우저 1세는 그가 타계하던 해인 1956년까지 줄곧 세고비아를 위해
기타를 만들어 왔으나 더 이상은 받지 않았다.
그 대신 하우저 2세와 3세의 악기는 받았다고 한다.

- 그의 만년에 시카고의 James Sherry와 인터뷰할 때, 그녀가 이 시대의 명공들에
대해서 문의한 적이 있다.
그는 이름난 제작가들의 이름을 거의 다 부르면서 유독 헤르만 하우저의 1세의 이름은
거명하지 않았다.
재확인하였더니, 그 기자는 그것이 세고비아의 의도였다고 말하였다.
처음 1924년작 하우저를 보고 “The greatest guitar of our epoch"라고 천명했던
세고비아 아닌가?


- 그의 말년에 마이애미에서 연주회를 가졌는데, 연주성과가 별로였다.
연주가 끝나자 그는 “이 기타 형편없어, 내년에는 다른 것으로 바꿔야겠어“라고
내뱉었다는 등, 그의 노년기에는 여러 가지 악기를 바꾸고 변덕스럽기고 했다고...



3) 세고비아가 쏟아 낸 말들 :

- 기타는 우리가 사는 지구보다 더 작고 더 섬세한 혹성에서 온 소리들로 된
오케스트라이다.

- 나는 기타가 인간이 만들어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악기라고 객관적으로 생각한다.

- 기타는 아름다운 악기여서 음악에 관심 있는 많은 젊은이들이 연주하고 싶어 한다.
물론 그다지 진지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이 경우에 기타는 연인을 위한 악기가 된다.

-내가 젊었을 때 기타에 대해 가지고 있던 주된 생각은 기타가 음악에 적합한 악기가
아니라, 술과 여자들이 있는 자리에서 노래와 춤에 반주해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 이었다.

- 그러나 일렉 기타는 또 다른 악기이다.
피크로 연주하는 일렉기타는 기타의 풍부한 다성음을 포기하고 있으므로 기타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불려야 마땅하다.

- 기타는 신경질적인 여인처럼 다루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에게 충성한다.

- 기타는 내게 있어 연인이며, 아내이며, 자식이며, 인생이었다.

- 나는 타레가를 몰랐던 것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를 알았더라면 오늘날의 내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타레가는 세고비아가
16살 때 타계함).

- 나는 학생이기도 하고 스승이기도 했다.
예술에 있어서는 14살에 선생이 되느니, 90살에 학생이 되는 게 났다.

- 비극적인 일은 모든 노인들이 마음에 있어서만은 아직 젊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얼마나 젊은지 알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겉모습만을 보기 때문이다.

- 좋은 기타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천부의 재능이 있거나 아니면 미칠 필요가 있다.
나도 재능이 있었다기보다 순전히 기타에 미쳤었던 듯싶다.

- 음악에는 쉽게 성공하는 길이 없다,
평생 연주하고 연주에 전념해서 결국 음악가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예술가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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