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여년의 걸작속에 깃든 악기 연주자 모습들..

by music posted Jun 07,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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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287호 백제 금동대향로..........]

이 놀라운 걸작은 때로 금동용봉 봉래산 향로라고 불리기도 하지요..

1300여년을 진흙더미에 묻혔다가 90년 초.중반경에 발굴되어 국보로 지정된, 이 향로는
책에도 많이 소개된 걸작입니다.... 그 구도감과 비상하는 듯한 역동감이 정말
대단하다 생각합니다.... 미륵반가사유상에 담긴 온화함과는 또 다른 맛을 주는군요..

경이로운 걸작이라며 세인을 놀라게 했던 국보이었지요...

이 국보는 워낙 디자인이 멋있어서 선물용으로 복제되어 판매가 되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진은 위키에서 다운 받은 겁니다.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  
유물 / 불교공예/ 공양구/ 공양구  

지정(등록)일 1996.05.30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16-1 국립부여박물관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몸체는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킨다. 연잎의 표면에는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1993년 12월 12일 국립부여박물관에 의하여 백제 나성<羅城>과 능산리 고분군 사이 논바닥 제3건물지 중앙칸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출토된 이 향로는 금동광배편 등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수습되었다. (문화재청)

어떤 분의 블로그인데, 대향로와 함께 발굴되었던 유물들과 세부사진들이 멋집니다...


http://blog.daum.net/eyei2/10377013


인물 부분을 확대한 것..
http://blog.daum.net/eyei2/15075204


동물 문양을 확대한 사진...
http://blog.daum.net/choi305401/5664

악기연주 모습을 확대한 부분....
http://blog.daum.net/eyei2/15075203


아래는 위키의 설명글입니다..........


백제 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는 1993년 12월 23일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안에서 발견된 것으로 국보 287호로 지정되었다. 이 향로는 백제가 부여로 도읍을 옮긴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은 7세기 초의 백제인들의 정신세계와 예술적 역량이 함축되어 이루어진 백제공예품의 진수라 할 수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원래 능산리 고분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주차장을 건설하던 곳에서 발견되었다. 주차장 공사가 임박한 시점에 물웅덩이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 백제금동대향로는 진흙 속에 있었고, 바닥에는 기와 조각과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이 발굴되었는데, 발굴단은 이 섬유 조각이 백제금동대향로를 감쌌던 것으로 추정했다. 또, 대향로가 오랜 세월에도 완벽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이유로 진흙에 잠긴 진공 상태에서 보관되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1995년의 발굴 조사로 대향로가 발견된 일대가 백제 시대 왕실 절터였음이 입증되었다. 발굴된 목탑 흔적에서 발견된 사리감에서 "백제 창왕 13년 (567년)에 정해공주가 이 절을 지었다"는 기록이 발견된 것이다. 학계는 이 점에 주목하여 대향로가 단순한 향로가 아니라 의식용이나 제사용으로 사용된 신물로 추정하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전체 높이가 62.5cm이며 용 모양의 향로 받침, 연꽃이 새겨져 있는 향로의 몸체, 산악도가 솟아잇는 향로 뚜껑, 뚜껑 위의 봉황 장식의 네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봉황과 향로 뚜껑은 하나의 주물로 제작되어 있어, 제작 과정에서 세 개의 주물틀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로 본체의 가운데 테두리의 구름 문양 아래에는 연꽃이 핀 연못이 있고, 그 위인 뚜껑에는 봉우리가 세 개 있는 산들이 있다. 이 산에는 말을 타고 사냥하는 사람, 신선으로 보이는 사람들, 호랑이, 사자, 원숭이, 멧돼지, 코끼리, 낙타 등 많은 동물들이 장식되어 있다. 또한 곳곳에 폭포, 나무, 불꽃 무뉘, 귀면상 등이 있다. 제단 모양으로 꾸며진 정상에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춤추고 있고, 그 아래에는 5악사가 있는데 이들은 소, 피리, 비파, 북, 현금을 연주하고 있다. 그 주위의 다섯 봉우리에는 각가 기러기로 보이는 새가 봉황과 함께 춤추는 형상이 있다. 향로의 몸체에는 연꽃이 있는데 그 위에 각가지 새와 물고기가 새겨져 있다. 또 한쪽에는 무예를 하는 인물도 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발가락이 다섯 개 있는 용이 위의 연꽃을 물고 하늘로 날아가려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다.


중국에 서역의 향품이 전해져서 전국시대 말기부터 악취를 없애고 부정을 쫓기 위해 향로를 만들었다. 백제 금동대향로의 기원을 중국에서 찾는 사람도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백제 금동대향로는 한나라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아 백제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제작되었다고 한다. 중국에는 백제의 것과 같은 대형 향로가 없으며, 한나라 때와 같은 금동 제품이 남조에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남조시대 유물들 중 비록 실물은 아니지만 백제의 금동대향로와 비슷한 것이 확인되었다.


불교문화연구가들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불교의 연화화생설과 관련있다고 하는데, 불교의 이상향인 연화장의 세계는 비로자나불이 있는 광대하고 장엄한 이상세계를 말한다. 연화장 세계의 맨 아래에는 풍륜이 있고, 풍륜 위에는 향수해가 있어 그 향수해에 큰 연꽃이 핀 것을 연화장이라 하는 이상세계이다. 즉, 대향로를 받치고 있는 용은 향수해를 의미하고 연꽃잎 위의 세계가 이상세계라는 설명이다.


봉황을 고대 동북아에서 신성시해 온 천계(天界)로 보고, 5악사와 기러기를 백제의 5부로 보아 백제대향로에 고대 동북아의 전통사상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설도 있다.



[백제금동대향로 뚜껑에 새겨진 5연주자...]


대향로의 뚜겅에는 맨위의 봉향이 깃발처럼 솟아있고 그 밑으로 악사, 인물, 동식물, 인면조신,인면수신 등이 다채롭게 조각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면조신은 사람 얼굴에 새의 몸을 하고 있는 것으로 고문헌에서는 천년을 산다는 장생의 동물로 등장한답니다. 인면수신은 사람얼굴에 짐승 몸을 한  상상의 동물이랍니다. 다섯 악사는 제 각각 완함, 종적, 배소, 거문고, 북을 연주하는 모습입니다..... 확대한 사진이 있어서 올려 봅니다. 볼수록 매력을 주는군요............


1.완함을 연주하는 모습 | 阮咸奏樂像 | String Instrument Player  


정면을 바라보는 봉황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완함을 연주하고 있다. 주악상은 두 발이 오른쪽에 오도록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으로, 오른손으로 완함의 줄을 튕기고 있다. 약간 측면을 향하고 연주하는 표정에는 엷은 미소가 감돌고 있다. 백제금동대향로의 완함은 3현만 확인되는데, 줄걸개에는 3현만 표현하였으나 줄감개를 4개로 묘사하는 삼실총 벽화의 예로 보아 원래 4현인 악기를 3현으로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비파와 비슷하며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함이 비파에 능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2.종적을 부는 모습 | 縱笛奏樂像 | Pipe Player  

완함 주악상의 왼쪽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종적을 불고 있다. 주악상은 무릎이 정면에 오게 꿇은 모습이다. 원래 적은 입김을 피리의 취구에 불어 넣어 관 속의 공기를 진동시켜 소리를 내는 기명악기이다. 이 주악상의 악기는 오른손을 위, 왼손을 아래에 두고 세로로 잡고, 연주자의 입술에서 떨어진 모습으로 부는 종적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적은 백제금동대향로의 것과는 달리 횡적이어서 당시에는 종적과 횡적이 함께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3.배소를 부는 모습 | 排簫奏樂像 | PanPipes Player  


종적을 연주하는 사람의 왼쪽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배소를 불고 있다. 주악상은 두발이 오른쪽에 오도록 무릎을 꿇고 앉은 모습이다. 배소는 길이가 다른 대나무를 옆으로 나란히 묶은 것으로 한 관에서 여러 음을 내는 피리와는 달리 한 관에서 한음만을 내도록 고안된 악기이다. 백제금동대향로의 배소는 정면에서 볼 때 왼쪽으로 갈수록 관의 길이가 길어진다. 서양의 팬파이프(panpipe)처럼 생긴 배소는 안악3호분과 덕흥리고분, 오회분5호묘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확인된다. 이 중 오회분5호묘에 그려진 사다리꼴 배소가 백제금동대향로의 것과 가장 비슷하다.


4.거문고를 연주하는 모습 | 玄琴奏樂像 | String Instrument Player  

배소를 부는 사람의 왼쪽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다. 주악상은 편안하게 정면을 향해 앉은 모습이다. 거문고는 진나라 사람이 고구려에 보내온 7현금을 왕산악이 본디 모양을 그대로 두고 그 제도를 많이 개조하여 만든 악기이다. 백제금동대향로에 표현된 거문고는 3현이며, 연주자는 왼손을 줄 위에 얹고 오른손에 무언가를 잡고 줄을 튕기고 있다. 이는 술대를 이용하여 연주하는 거문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겠다. 거문고는 안악3호분과 무용총, 오회분4호묘, 장천1호분 등 고구려 구분벽화에 자주 등장하며,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백제금동대향로의 거문고와는 달리 주로 4현으로 묘사되어 있다.



5.북을 두드리는 모습 | 鼓奏樂像 | Percussion Player  

거문고를 연주하는 사람의 왼쪽에 위치한 주악상으로 북을 두드리고 있다. 주악상은 편안하게 정면을 향해 앉은 모습으로 무릎 위에 북을 올려놓고 왼손으로 북을 감싸 안고 오른손에 든 북채로 북을 두드리고 있다. 공명공간이 거의 없이 납작한 모양을 하고 있어 일정 높이의 공명공간을 가지는 북들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나 오른손에 북채를 들고 있어 한쪽면을 두들겨 공명소리를 내는 악기임에는 틀림없다고 생각된다. 북을 어떻게 놓고 치느냐에 따라서 여러 가지 이름이 붙는다. 향로에서는 앉아서 치었기에 좌고라고 부르며, 북은 오악 중의 한 가지로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이 현장감나게 표현되었다. 무릎에 올려 놓고 북을 두드리는 모습은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대탑의 부조 장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장식은 양손으로 북을 두드리고 있어 북채로 북을 두드리는 백제금동대향로의 북 두드리는 모습과는 또 다르다.

글 및 사진 출처: 백제향로 디지털 재현관  http://hyangn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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