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씨의 논리를 나름 정리해봤습니다.

by ...... posted Mar 26, 201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 - Up Down Comment Print

도대체 왜 이 사람은 같은 말을, 그것도 문제가 있는 말을 계속 반복할까를 생각해봤습니다.

클래식은 절대음악, 나머지는 아님. 뭐 이런 논리야 그냥 웃어버리면 그만이지만,

비화성이니 코드니, 텐션이니 하는 구체적인 부분에서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계속 고집하면서, 급기야 다른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다는 억지로 이어지는 이유가 뭘까...심심해서 추측해봅니다.

아마도 이런 전제가 박혀있지 않을까 하는 건데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말하자면, 클래식은 매우 정교한 틀을 기반으로 한다. 이는 수많은 천재들이 쌓아올린 결과이다. 비화성이 등장할 경우에, 클래식에서는 이 비화성의 해결이 매우 중요해진다. 이는 음악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다.
반면에, 실용음악에서는 그 틀을 (감히) 무시하고 꼴리는대로 불협화음, 텐션들을 마구 사용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그렇기 때문에 생각씨가 보기엔 텐션, 7코드 등을 해결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꼴리는대로 사용하는 실용음악은 저급한 거죠.




그런데, (생각씨가 꼭 봤으면 하는데요. 사실 이미 다른 분들이 다 말씀해주신 것이기도 하지만)

전에 올라왔었고, 논란 중에 어떤 분이 다시 링크해주신 벤자민 젠더의 ted 강연을 보고 다시 생각해보세요.

쇼팽의 곡의 종지부에 대해 벤자민 젠더는 집으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쇼팽의 곡에서는 거기에 있는 관중들 모두가 일치하는 화성진행이 나오지 않는 속임수가 있습니다. 젠더의 말을 빌자면, 듣는 사람들이 눈썹을 치켜올리게 되는 부분이죠.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합니다. 집으로 결국 돌아오니까요.

이건 아마 생각씨가 말하는 전통의 틀에 딱 맞아떨어질 겁니다. 비화성이든 뭐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를 해결하면서, 혹은 거쳐서 결국엔 편안하게 해줍니다.

근데, 쇼팽이 사용한 속임수는 '속임수'라고 하지만 사실은 음악에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이 속임수가 없으면 몇 년 안에 음악은 지루해질 겁니다. 작곡도 불가능하죠. 소위 클래식화성학책만 잘 이해하면(사실 어려운 일이지만) 세상에 있는 모든 곡의 진행을 마음 속에 담아놓을 수 있을 겁니다. 뭐, 단적으로 말해서 쇼팽도 없겠죠.

긴장이든, 텐션이든, 비화성이든, 7코드든, 대리화음이든
하나로 묶자면 근본적으로 사람을 어딘가 불편하게 만드는 겁니다. 제일 편안하고 안정적인 건, 화성이고 나발이고 그냥 '라' 음이죠.

클래식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선생님들은 이렇게 말하겠죠. "이건 해결해야돼."
그 말은 "예전의 좋은 음악가들은 이걸 해결했어. 자, 이제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뜻입니다.

이걸 선인들이(클래식 음악가들이) 문자 그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좋은 음악이 아니야"라고 이해했다면 음악은 피타고라스 음계에서 머물렀을 겁니다. 아름다운 정수비를 깨는 순정조, 평균율은 악하니까요.



이번엔, 실용음악가들에 대해 생각해보세요. 어떤 재즈 연주가가 마음가는대로 연주하는 중에 비화성에 해당하는 코드를 사용했습니다. 아주 우연히 말이죠. 운지를 잘못했든 몰입상태에서 튀어나온 것이든 말입니다.

그럼 그 연주가는 기왕 어긋난 김에 막나가자고 마음을 먹겠습니까? 아니죠. 클래식 음악가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해결하려고 할 겁니다. 아예 다시 연주하든지, 애초 마음 속에 흐르던 큰 맥락을 되찾으려 하겠죠. 쇼팽이 사용했고, 화성학책에 기록된 해결방식과 근본적으로 같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특정 화성 다음에 비화성이 등장했는데, 어라? 싫지가 않네? 뭔가 야릇한 자극을 주네?하는 식의 느낌을 받습니다. 그럼 이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겠죠. 참 좋다고 판단되면, 새로운 코드가 나오고, 새로운 화성의 진행이 나오는 겁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요.

쇼팽은 다를까요? 왜 빨리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속임수를 반복할까요? 몇 번을 속이는 게 최적인가를 고민했을까요? 안했을까요? 이때 최적은 쇼팽이 배웠던 화성학에서 말하는 최적일까요?



클래식이든 뭐든, 틀이 있다는 것은 그 틀이 좋다는 것을 알게하기 위함입니다. 이게 첫 번째 계단이에요. 여기서는 틀을 벗어나는 것이 나쁘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생각님의 수준입니다.

그런데 새로운 음악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 계단이 필요합니다. 틀에서 벗어난 것 중에 좋은 것을 찾는 단계죠.
왜냐하면,

좋은 것들을 담고 있는 틀은 너무 당연하게도 '자기 아닌 것'을 담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아닌 것', 다시 말해 그 틀에서 벗어난 것이 모두 나쁘다는 증거 또한 담고 있지 못합니다.

틀을 모르면 선인들이 뭘 했는지, 세상에 이미 뭐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틀을 익혀야죠. 동시에, 틀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틀에서 벗어난 것들, 선인들이 미처 고려하지 않은 부분들 고려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게 두 번째 계단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계단에서 새로운 틀이 만들어집니다. 이건 물론 극소수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극소수의 일이라 훌륭한 건 아닙니다. 첫째와 둘째 계단도 범인들에겐 지극히 어려운 일이고, 이 과정을 묵묵히 거쳐온 사람들의 일이기에 새로운 틀이 훌륭해지는 거죠.

클래식음악 뿐만 아니라 실용음악에서도, 음악 뿐만 아니라 문예, 학문과 정치 등등 모든 인간행위 중 아름다운 것들은 다 이런 식으로 형성되어왔습니다. 클래식음악이 절대적인 게 아니라, 이 계단들이 절대적인 겁니다.

이렇게 씨부리고 있는 저도 첫 번째 계단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두 번째 계단으로 가려고 노력합니다. 노력은 하지만, 게으름도 피우곤 합니다. 때론 내가 세 번째 계단 위에 있는 건 아닌가 자만도 해봅니다.

그래도 첫 번째 계단을 외우는 것에서 벗어나 즐길 때도 있고, 두 번째 계단과 세 번째 계단이 손에 잡힐 것 같을 때도 있죠. 이때가 살아있는 것 같습디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 말고요. 어떤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서 떠들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고 저는 세상일이 꼬이니까 맘에 안드는 사람 까는 걸로 화풀이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고...우린 왜 이러고 있을까요?









Articles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