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우 기타에세이

by 10002 posted Nov 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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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읽은 기억이 나는데 공감가는 부분이 많은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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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름 앞에는 직업 혹은 특징을 알리는 수식어들이 붙는다. 어릴 때는 똘똘이 아무개, 새침이 아무개 등으로 시작해서 성인이 되어서는 회사원, 의사, 배우, 주방장, 과학자 … 등등. 이런 별칭 또는 직업 등은 어느 정도는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주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적성보다 인기있는 직업을 우선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직업을 마음대로 선택하는 것도 능력이겠지만-.

언제부터인가 내 이름 앞에는 기타리스트(guitarist)라는 말이 붙기 시작했다, 물론 기타를 연주하는 것이 일인만큼 아무것도 이상할 게 없지만, 나는 내 앞에 붙은 그 명칭이 여간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다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행복이다.

그렇다면 내가 하는 일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처음 만나게 되는 사람과 인사를 할 때 이름을 교환한 뒤에는 주로 서로의 하는 일에 대해 대화를 하는게 보통이다. 나는 주로 “기타칩니다”라고 얘기를 하면 곧 보다 구체적인 질문으로 연결된다. 어떤 종류의 활동을 하냐, 12줄 기타도 치냐, 가수들 많이 아냐…



IMF 체제이후 나는 주로 “돈 되는 일이면 다 합니다”라고 대답한다. 공통적인 상대의 표정은 기타를 치면서 사는게 재미있겠다는 정도지 나의 직업을 부러워했던 인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특히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은 배고픈 직업, 딴따라, 나이들어 할거냐는 식의 인상이 짙었다. 나는 여기서 그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인기 신랑감들의 직업엔 ‘사’자가 붙는다면 기타리스트도 엄연한 ‘악사’이지만 뭔가 이는 있는 듯하다. 그렇게 대하는 이들을 만나본 적이 있는듯 악기 중에서도 기타는 뭔가 수줍어서 앞에 나서있지 않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나름대로 기타에 대한 사회적 냉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무엇보다도 기타는 참 흔하다. 그것은 악기점에 들어가 보면 금방 피부로 느낄 수 있다. 흔할 수밖에 없는게 줄을 튕겨 연주하는 악기의 역사는 타악기 다음으로니 무척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민족이던지 기타를 연상케 하는 고대악기를 흔히 볼 수 있다. 오랜 변화를 거쳐 현대 클래식기타의 형태는 19세기말 스페인에서 완성되었다. 물론 류트와 더불어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널리 알려졌지만, 연주회용 독주악기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이 세고비아(Sagovia)의 출현부터이니 20세기 중반에서 부터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기타가 연주회용으로 발전하기에 가장 큰 장애요소는 아무래도 악기의 음량때문인 것 같다. 그리 크지않은 연주장소에서도 기타의 음량으로 감동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 접촉사고 때도 목소리 큰 사람이 유리해 보이듯 일단 소리가 일단 소리가 좀더 컸어야 했나보다. 또한 한 악기의 발전을 위해선 그 악기로 연주되는 명곡이 필수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기타는 서양음악의 황금기인 고전, 낭만시대의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60,70년대 기타의 붐을 타고 우리시대를 대표하는 현대 작곡가들이 훌륭한 기타 곡을 썼지만 그들의 20세기 음악언어는 대중과 가까워지기에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여하튼 세고비아의 출현으로 기타는 세상에 화려하게 재등장했고, 클래식 기타에 반하여 얼마후 미국에서 철선(steel string)을 사용하는 어쿠스틱기타가 개발되고 그후에 마그네틱 픽업을 부착한 일렉트릭 기타가 개발되면서 기타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간단한 몇 개의 기본화음으로 노래반주를 할 수 있고, 가지고 다니기에 큰 불편이 없으며, 가격도 다른 악기에 비해 저렴한 장점들로 특히 젊은 층에 크게 어필했고 급기야 기타는 대중음악의 꽃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때는 기타를 못치면 간첩이라는 말이나올 정도였고 ‘통기타 문화’란 말은 그 당시 기타의 위치를 실감하게 해준다.



인류역사상 어떤 악기가 이 정도로 파란을 일으켰을까? 하지만 기타를 들고 흥청대는 젊은이들을 보는 보수적인 기성세대와 간단한 코드 몇 개로 악기를 연주한다고 하는 이들을 보는 몇몇 고전음악인-몇 십년을 해도 빛을 볼까말까한-들에게는 기타가 곱게 보일 리가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대학입시를 앞둔 수험생의 부모는 공부방에서 들리는 기타소리를 반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기타의 붐을 타고 많은 음악학원들이 생겼는데 그들 광고의 대부분이 ‘기타 1개월 완성’이었으니 악기의 선입견이 안좋게 된것도 당연한것같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기타에 심취해있던 많은 청소년들에게는 기타로 대학을 가는 것이 꿈처럼 생각되어 졌었다. 그러던중 약 10년 전후로 몇몇 대학에 클래식기타과가 신설되었다. 기타를 전공하고 싶던 이들에게는 꿈이 현실로 된것이었다. 물론 요즘도 “아니 대학에서 기타를 가르쳐?”라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들은 얘기지만 모 대학에서 기타전공 신설을 놓고 회의를 했는데, 학교 관계자 되는 분이 자신이 기타에 대해서 좀 아는데 음대에서 기타를 들고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절대 상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그 분의 취향이니 그것에 반대할 의사는 조금도 없다. 하지만 예로부터 천사들이 등장하는 그림에 상당수가 류트(Lute) 내지는 기타종류의 악기가 등장한다. 그렇게 고귀하게 표현되던 악기가 어쩌다 이곳에서 그 모욕을 받고 있나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심지어 어린 조카마저 삼촌은 일한다면서 기타만 치냐고 불평하는 모습을 볼 때 기타의 아름다움을 주장하는 나의 외침은 아무래도 역부족인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기타를 좋아하는 걸까? 어렸을 적엔 기타에서 들리는 화음이 신기했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답이 바뀌는 시험문제들로부터 떠날 수 있던 피난처였으며, 가끔 들어가 있던 병실에서 새살이 나길 기다리며 우두커니 내 옆에 있던 친구였기 때문일 것이다. 기타는 내가 사랑하는 음악의 시대로 데려다주는 타임머신이다. 나는 이 타임머신을 타고 심지어는 300년전의 음악으로 날아갈 수 있다. 악보라는 암호 같은 기호를 통해 그 옛날 증조할아버지의 할아버지뻘 되는 이의 감정을 그것도 내방에 앉아서 재현한다는 그 자체가 내게는 무척 흥분되는 일이다. 그 암호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잘 해독하기 위해 매일 연습을 한다. 악기나 그 시대 상황에 서툴면 작곡가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다른 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기타는 품에 안고 연주를 하는 모습이어서 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더욱이 어느새 노총각이된 나 같은 이들에겐 … 모순된 얘기같지만, 내가 기타에 대해 가장 아끼는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타라는 악기를 별로 대단하게 생가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그것은 직업의 귀천과는 상관없이 그렇게 대단치 않아 보이는 일을 나 자신은 무엇보다 대단하게 생각하고 있고 더구나 그 일이 살아가는 자세와 의미를 깊게 생각하게 해준다는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나라는 사람은 기타 치는 것 이외엔 별다른 재주가 없는 것이다.



사실 앞서 말한 일반적인 기타의 단점들조차 내게는 장점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기타의 작은 음량은 장시간 연습에 귀를 덜 피곤하게 하며, 기타만큼 클래식과 대중음악을자연스럽게 오가는 악기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일렉트릭 기타는 우리시대에 태어난 가장 성공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악기이다. 특히 혁신적인 연주기법의 발달로 작곡가들은 이미 일렉트릭 기타와 전통 클래식악기를 위한 곡을 썼으며 나 또한 누구보다도 그것의 가능성을 크게 본다.



저마다의 살아가는 모습이 있다. 여럿이 같이 살아야하기에 질서도 필요하고 보편적인 가치관도 필요하다. 하지만 각자의 아름다움의 기준은 타인에 의해 저울질될 수 없으며 강요되어서는 더더욱 안된다. 아마도 방법의 차이지, 우리가 생각하는 궁극적인 인생의 아름다움은 하나인 것같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간에 나는 기타를 치면서 그들이 일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좌절감, 성취감등을 맛본다. 기타를 들고 문을 나설 때 문득 ‘아!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며 모습이구나’하고 느낀 적이 있다. 또한 내 자신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기타를 통해 표현하려고 노력할 때 나의 강한 삶의 의지를 확인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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