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제가 태평양 건너 고국에 가서 변보경양의 독주회를 보러 온다고 여기저기 나발이 불어졌으니, LA, 아니 미국에 계신, 더 넓게 봐서 외국에 사시는 우리 동포매니아님들에게 고국소식을 전해드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간밤의 열기를 지나서, 여기 일요일 아침에는 세찬 빗줄기가 호텔방 창문을 때리고 있는 중입니다
Los Angeles에서 목요일 밤 심야 비행기, 정확하게는 금요일 새벽 0시 10분 비행기로 12시간 걸려 11월 7일 토요일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한 후, 낮에는 제 고국 가족들과의 해후 모임을 마치자 마자, KTX타고 대전을 가서 종종걸음으로 대전 예술문화광장을 걸어 180석 공연회장의 중앙, 무대로부터는 ¾ 거리 떨어진 좌석에 앉아서 프로그램을 보았더니, 보경양은 10살에 한국에서 1등, 13살에 빈 국제콩쿨에서 청소년부 3위, 미국 GFA 콩쿨 청소년부 1위를 했다고 하니, 이미 그 나이에서는 세계적 수준이 되었다고 봐야하니, 연주회를 기다리는 제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제가 금년이 되어서야 기타소식에 관심갖기 시작했답니다.)
서울, 광주 연주에 이어 3번째이자 이번 순회연주회의 마지막 연주회이어서 오늘 연주할 프로그램이 이미 알려졌지만, 다시 여기 소개합니다.
H. Villa-Lobos – Prelude No. 1, Choro No. 1
I. Albeniz – Asturias
A. B. Mangore – Un Sueno en la Floresta (숲속의 꿈), Jullia Florida
J. K. Mertz – Elegie, Fantasie Hongroise (헝가리 환상곡)
C. Domeniconi – Koyunbaba
----- Intermission -----
J. S. Bach – Chaconne
J. Rodrigo – Invocation y Danza (기도와 춤), Fandango
M. Giuliani – Rossiniane No. 2, Grand Overture
프로그램을 보는 순간 제가 압도당한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많지 않은 기타 연주회를 보았던 경험에서는 이렇게 유명한 대~곡들을 한 장소에서 다 들었던 기억이 없었는데, 15살짜리가 이것을 다 한번에 친다구? 허 참!
스프르스 기타가 무대 왼쪽에(청중석에서 볼 때) 서 있길래, 보경양은 연주할 기타를 무대에 미리 올려 놓고 손도 안풀고 있어도 되는 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미소를 띤 보경양이 다른 기타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입장시 터지는 박수소리를 들으면, 그 연주자의 유명도를 알 수 있는데, 이미 스타라는 점을 저에게 알려주려는 듯 힘찬 박수 속에 입장하였습니다.
“제가 미주에서 왔다고 남미음악으로 시작해 주는 군”하며 듣기 시작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면, 제가 보경양의 연주를 잘한다, 미흡하다 이런 평을 할 수준에 있지를 못합니다. 제가 흉내내보려고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수준을 저만치 뛰어넘어 있으며, 제가 악보도 보지 못한 곡들이 대부분이며, 한동안 듣지 않았던 기타음악 연주속의 세세한 실수를 짚어낼 정도로 귀가 예민하지 않다 보니, 그동안 보았던 다른 성인 연주자들의 연주회를 본 경험과 제가 CD로 들었던 음악을 바탕으로 순전히 감상자 입장의 느낌입니다. 한곡 한곡 나누어 이야기 하는 것도 적절치 않고, 몇가지 느낌만 적어보겠습니다.
cedar기타로 보이는 기타로 시작한 첫 무대는 빌라로보스와 알베니즈의 음악을 들으면서, 정교한 프레이징과 저음 멜로디의 처리, 폭발적 다이내믹을 통하여 “과연 15살짜리 여자애 대단하네” 하는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날의 첫무대이어서인지 음악의 촛점이 콱 맺히는 것 같지 않다는 아쉬움을 느꼈지만, 15살 소녀라는 점을 감안했습니다.
세워두었던 기타와 바꿔들고서는 다시 남미곡, (동해안에서 고래를 바라보며 작곡한다는) 망고래의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눈이 감기고, 캘리포니아 세코이아 국립공원의 엄청난 숲속을 거니는 저와 제 가족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오! 오! 단순히 깔끔한 트레몰로만이 아니라 곡의 완성도 면에서, 보경양은 이 무대에서부터 더이상 15살 소녀가 아니라, 그냥 연주자가 되어 제 가슴을 저미는 음들을 하나하나 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머를 섞은 자연스런 곡해설을 직접 곁들이면서 프랑스, 이탈리아 작곡가로 이어진 곡들에서 함께 듣고 있는 청중들은 슬픔의 한 숨과 신비한 양치기의 영혼을 따라서 바람부는 산기슭을 휘돌아 다녔습니다. 연주되는 곡에서 뿜어져 나오는 긴장에 내 어깨가 같이 죄어들어 몸이 아프구나 하고 느꼈더니, 중간 휴식이었습니다. (코윤바바는 다시 첫번째 연주했던 기타로 바꿔 연주했습니다.)
Intermission을 마치고 이어지는 바흐, 로드리고, 쥴리아니의 대곡들 (전부 스프르스 기타로 연주)에서는 전반부에서 이어지던 긴장이 연결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미흡한 부분이 나오기는 했지만, 그 현란하다고 밖에 달리 표현을 할 수 없는 왼손, 오른속, 엄숙하게 자신을 내려다보며 흐트러짐 없는 그 Pose, 절정의 순간으로 몰고가는 카리스마가 제 가슴을 마구 뛰게 만들더군요.
열렬한 박수속에 이어진 Pipo의 Danza #1, 롤랑디옹이 심장수술후의 느낌을 그렸다는 3악장, 알함브라로 정리되는 앵콜을 끝으로 뜨거운 연주회가 마쳤습니다.
1주일 전에 제가 들었던 USC 음대 교수들의 연주회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보경양의 연주는 페페 로메로가 보여준, 첫음을 스르릉 치는 순간 전 청중을 휘어잡는 마력과 아주 여린 피아니시모에서도 선명하게 소리를 만들어 내고, 포르테시모에서도 전혀 부서지지 않는 진정 대가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USC 다른 교수들의 연주보다 훨씬 더 잘 준비된 연주, 많은 대곡을 연속해서 연주하는 power와, 음악적 완성도 측면에서도 뒤지지 않는 연주였습니다.
보경양이 무대에서 청중들에게 뿜어보낸 그 음들, 그 하나하나가 보석이었습니다. 곡에 따라 찬란한 diamond, 선명한 빨강의 ruby, 또는 신비스런 푸른 빛의 emerald를 던져 내었습니다. 물론, 겉으로 빛이 나지 않고 빛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많이 갈고 다듬어야 하는 원석이 나오기도 했지만, 태평양 건너고, 지하철과 KTX, 택시를 갈아타며 연고지도 없는 대전까지 날아온 제 가방에 보석을 마구 던져 넣어 주었습니다.
로메로의 연주회를 보고나서 기타음악의 황홀함에 젓어서 뛰던 가슴이 가까스레 정리되던 중이었는데, 기타리스트 변보경이 새로운 기타음악의 희망을 제 귀로, 눈으로, 연주회 듣는 동안 일어난 제 피부의 솜털을 통해서 집어넣어 주었습니다. 이제 기타리스트 변보경 연주회를 다시 볼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할런지… 나이 먹은 중년의 아저씨에게 서명해준 변보경연주회 포스터를 보며 기다려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