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카페에서도 쓰기는 했지만 국내에서 기타를 본게 10년 전이었다.
인터넷 상으로 유명하던 변보경양의 연주를 보려고 티켓을 구했지만 구할 수가 없어서
그냥 서서 보기로 작정을 하고 DS홀에 갔는데 의외로 빈자리가 많았다.
예약하고 펑크 내는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어쨌던 내게는 다행이었다.
첫곡부터 연주는 심상치 않았다.
여자 아이 답지 않은 파워에 현란한 아르페지오, 음을 빠뜨리지 않으면서도 제 스피드로 밀어 붙이는 스케일....
어디 하나 흠 잡을데 없는 테크닉이었다.
그것도 열아홉살짜리가...
지난 10년 동안 유럽에서 많은 연주회를 보아 온 탓에 귀와 눈만 높아져서 적응이 어려울까 걱정도 들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대한민국에 기타 인구도 많아졌고 연주가도 많고, 연주회도 정말 많아졌다.
요즘 여기저기 다니면서 연주회 보느라고 행복하기는 했고, 이번 연주회도 그랬다.
한마디로 준비가 되어있는 재목으로 보였다.
풍부한 레퍼토리에 겁없는 연주, 그를 뒷받침 해주는 테크닉.
무엇하나 흠잡을데가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이상한 점이, 연주회가 전반부가 끝날 때 쯤부터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기가 막힐 정도로 막힘없이 연주했던 코윤바바까지도 귀에 거슬릴 정도였다.
왜 그럴까.
그 답을 찾는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처음부터 계속되는 연주에 각 곡마다 색깔이 없었다.
음악은 각 작곡가마다, 또 곡 마다 각기 다른 맛이 있다.
모짤트나 브람스, 줄리아니나 소르 혹은 이사이처럼 각각의 이름이 있듯이 그 사람들의 곡도 각기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처음부터 똑같은 느낌만 주는 연주였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손 놀림의 시각적 효과를 없애보려고 잠시 눈을 감고 연주를 들어 보니 더욱 그러했다.
기타가 테크닉 의존도가 높은 악기라는 단점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치부해 버리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아직도 훌륭한 연주를 보면서 배우고자 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이제는 음악을 즐기기 위한 경우도 많아졌을거라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엄지의 힘에 짓 눌리는 저음선, 끊임없이 땡땡거리는 1번 선의 귀 따가운 소리는 구슬이 구르는 듯한 아르페지오의 아름다움을 뭉개버리기 일쑤였다.
또 어떤 곡은 악보상으로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템포도 있었다.
음악은 음악이다.
눈으로 악보를 보고 손으로 악기를 작살내는 싸움이 아니다.
악기와 손은 음악을 표현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악기에서 내는 소리로 우리의 마음을 보여주고 갖지 못할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런게 잘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음악을 잘 듣지 않는데서 오는거다.
기타를 배우거나 연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음악을 알지 못하고 곧바로 기타로 돌진한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아는건 오로지 기타소리와 그에 관련된 곡 뿐이다.
이건 비단 우리나라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 만난 연주자들도 어떤 이는 기타 이외의 음악은 알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독일 중고등학교에도 특별활동 시간이 있다.
여러가지 과목이 있는데 그 중에서 클래식 기타를 택하는 아이들의 경우를 보면 정말 이유가 다양하다.
그런데 그 중에 음악이 좋아서 한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걸 보면 생활속에 묻어있는 문화적인 배경을 무시할 수는 없다.
대부분이 클래식 음악을 모르는 그 아이들에게는 수업이 끝나면서 한 곡을 지정해 주고 들어오도록 숙제를 내주었다.
숙제 중에는 실내악도 있고 독주곡도 있다. 관현악곡도 좀 흥미로울 만한 곡으로 해 주기도 했다.
독일이 음악의 나라라고 하지만 실상 현대인은 우리의 상상과는 좀 다르다.
어쨌거나 다음 시간에 아이들에게 그 곡을 들은 느낌을 물으면 얼마나 재미있는 대답을 하는지....
그렇게 음악을 하나하나 이해하면서 기타를 배우니 속도는 정말 느리다.
더군다나 내 독일어가 흡족하지 않아 영어로 수업을 하니 더욱 그랬다.
하지만 년말에 열리는 학교 음악회에 출연해서 연주하는 기타반 학생들은 정말 진지하다.
테크닉적으로 부족해 비록 쉽고 간단한 곡을 하지만 정말로 음악을 즐기면서 그 느낌을 관객에게 전해주려고 애쓴다.
끝없는 박수가 이어지고 환호가 터져나오는건 당연지사.
사실 나도 한국에서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다.
그저 죽어라고 기타줄만 쪼아대고 직감으로만 연주를 했던것 같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의 대가들과 만나서 이야기 하는 가운데 배우게 되고, 유명하다는 기타리스트들과 지내면서 저절로 음악이라는 것이 몸에 배면서 느린곡이 더 어렵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악보를 처음부터 다시 읽고 음표를 하나하나 되짚어 보니 곡에 대한 느낌이 완전히 새로웠던게 엊그제 일만 같다.
변보경
나로서는 부럽기만 할 뿐이다.
나이도 아직 어리고, 파워는 넘쳐 흐르고, 테크닉도 그만하면 됐고.....
이제 종이 한 장 차이만 넘으면 될것 같다.
지금은 좀 거칠고 그 종이 한 장의 차이를 극복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머지않아 대가의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