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거장 안드레스 세고비아는 일생동안 여러 가지 기타로 연주하였다.
>그중에는 물론 호세 라미레즈와 이그나시오 플레타로도 연주하였고 말년에는 미국인 제작가 리차드 부루네의 악기도 샀다.
>그러나 세고비아와 함께 40여 년간의 화려한 연주생활을 함께한 악기는 2대로 봐야 된다.
>하나는 세고비아의 첫사랑인, 마뉴엘 라미레즈이고, 다른 하나는 헤르만 하우저인데
>지금은 둘 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쉬고 있다.
>
>
>첫째 이야기,
>1912년작 마뉴엘 라미레즈 기타 :
>1916년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23살 나던 해 라미레즈 공방을 찾아와서 마드리드의 아테네오 극장에서 데뷰연주회에 사용할만한 좋은 기타를 빌려달라고 하였다.
>라미레즈는 제작반장인 산토스 에르난데즈에게 진열장에 결려있는 11현 기타를 개조해보라고 시켰다.
>이 기타는 어느 기타리스트의 주문을 받아 산토스가 만들었으나, 당치않은 흠을 잡는 바람에 성깔이 있는 그가 내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11현 기타는 좀처럼 팔리지 않는 종류라 진열장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산토스는 전면판과 브릿지를 교체하고, 네크를 6현용으로 좁히고, 머리 앞면에는 11개의 줄감개 구멍을 메꾼 자국을 감추기 위해 덧판을 붙였다.
>그래서 이 기타의 머리 뒷면에는 줄감개 구멍을 메꾼 자국과, 내부에는 11현용 네크의 큼직한 뒤축이 그대로 남아있다.
>세고비아가 공방을 찾아와서 그 개조된 악기로 시연할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저음이 깊고도 달콤하였고, 고음은 투명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떨림이 있었다.
>나는 무아지경에 빠져서 그동안 배운 모든 곡을 오랜 시간에 걸쳐서 연주하였다.
>나 자신이 둘로 나뉘어져 하나는 이 놀라운 악기를 연주하는 기쁨, 다른 하나는 그 음악을 듣는 이의 느낌을 즐기고 있었다.’
>세고비아의 연주에 감동한 라미레즈가 “너 그냥 가져가! 그리고 돈 대신 다른 것으로 갚아라”고 말하였다.
>마침내 당대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가 연주한 그 악기는 마뉴엘 라미레즈를 일약 세계 최고의 명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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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이야기
>1937년작 헤르만 하우저 기타 :
>"THE GREATEST GUITAR OF OUR EPOCH"
>헤르만 하우저 1세의 1937년작 기타에 대해서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논평한 말이다.
>1924년 독일의 뮤니히에서 열린 대음악제에 세고비아와 미구엘 료벳도 연주자로 초청을 받았다.
>그날 한 합주단이 모두 하우저의 기타로 합주를 하였는데, 그 악기들은 몸통이 좁고 음량이 작은 독일 바로크풍의 기타였다.
>세고비아는 그 악기들의 정교함과 아름다운 음색에 감탄하였다.
>한편 하우저는 거장 세고비아의 연주솜씨와 아울러 몸통이 넓은 스페인식 기타의 큰 볼륨에 경탄하였다.
>음악회가 끝나고 하우저는 세고비아에게 소개되었다.
>그들의 긴 대화는 바로 기타 제작가 하우저의 삶에 일대 전환점이 된다.
>그때부터 하우저는 완벽한 기타디자인을 찾아 기나긴 여정에 나서게 된다.
>세고비아는 그 때 느낀 인상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 ‘하우저의 기타들을 골고루 만져본 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가 그런 것처럼,
>만약 그가 불변의 토레스와 라미레즈로 이어진 스페인식 패턴만 도입한다면 엄청난 장인匠人이 될 만한 잠재력이 엿보였다.’
>당시 세고비아는 유명한 장인 산토스 에르난데스가 만든 1912년작 마뉴엘 라미레즈 기타를 갖고 있었다.
>세고비아의 열의는 나아가 하우저가 확실한 아이디어를 가질 수 있도록 자기 악기를 마음껏 만지고 재어보게 하였다.
>하우저의 재능을 아끼던 기타리스트 미구엘 료벳도 그의 소장 명기인 1859년작 토레스를 내어주어 연구를 도와주었다.
>그러나 명기는 바로 나오지 못했다.
>그의 새로운 악기에 대한 옹골진 각오는 기타를 만들다가는 부숴버리기를 되풀이 한 듯하다.
>때로는 문을 걸어 잠그거나 밤에만 연구작을 만들었다고도 전해진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연구에 골몰하느라 악기를 만들어 판 것이 몇 대 안되는 듯하다.
>기나긴 12년 동안 만든 작품이 기록상으로 몇 대 안되는걸 보아도 그의 고행의 면면을 알 수 있다.
>1924년 첫 만남 이후 하우저는 매년 새로 만든 악기를 세고비아에게 갖고 갔었으나 받아주지 않았던 것이다.
>12년의 세월이 흐른 1937년에 마침내 하우저는 세고비아가 추구하던 작품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세고비아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악기"라고 논평한 바로 그 악기이다.
>
>세고비아가 타계한 후 관심 있는 연구가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그 기타의 본을 뜨다가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던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악기 전면판의 안쪽에 프랑스어로 “나는 이 악기를 위대한 예술가 안드레스 세고비아를 위해서 만들었다”라고 쓰여 있었다.
>세고비아는 스페인 태생이고 하우저는 독일인이지만 예우를 갖추는 의미에서 프랑스어를 사용한 듯하다.
>하우저는 세고비아가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던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12년 이상을 거절당했던 하우저 기타인데, 어떻게 이번에는 세고비아가 받으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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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匠과 巨匠은 서로 알아본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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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구 :
>마뉴엘 라미레즈가 돌아가신 후에 세고비아는 에르난데즈 산토스에게 악기수리를 의뢰하곤 하였다.
>“야, 이거 원래 내가 만든 거 넌 알잖아? 그러니까 내 렛델로 바꿔 붙이자.”라고 산토스가 말한다.
>“그건 안돼요”하며 세고비아는 거절하였다.
>수리가 끝나자 산토스는 자신의 렛델에 자기가 수리하였다는 내용을 적어서 라미레즈의 렛델 아래에 붙여버렸다.
>
>어느날 세고비아가 또 마뉴엘 라미레즈를 기타를 수리하러 왔을 때, 산토스는 그 악기를 빼앗고 한동안 돌려주지 않았다.
>그는 세고비아가 그 악기를 하우저에게 공개한데 대해 무척 화가 나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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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와 에르난데즈 산토스의 악연은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산토스는 당시 기타를 잘 치는 어여쁜 소녀 에밀리따가 마뉴엘 라미레즈를 치는 홍보물도 제작한다.
>이 소녀가 훗날 세고비아의 둘째부인이 된 에밀리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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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저 1세는 그 후 돌아가실 때까지 매년 새로운 기타를 세고비아에게 선보였으나 그는 더 이상 하우저는 사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하우저1세가 제작한 명기도 단 하나뿐이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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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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