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명품에 별로 관심 없습니다. 큰 돈은 못 벌어도, 먹고살 걱정은 없는 편인데 ... 차림새는 5 만원짜리 E-마트 구두, 10 만원짜리 E-마트 양복, 1 만원짜리 E-마트 와이셔츠, 1500cc 짜리 소형 승용차입니다. 마누라 눈치를 엄청 보면서 제법 많은 돈을 쓴 것이라면 몇 대의 고급 기타 정도.
그런데 제가 허세를 부리는 "뜻밖의 품목"이 있습니다. 바로 필기구입니다. 저는 요즘 두 자루의 몽블랑과 두 자루의 워터맨을 쓰고 있습니다. 고급 필기구 가격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입니다. 제가 쓰는 몽블랑 164 볼펜은 40 만원 정도이고요, 몽블랑 145 만년필은 50 만원 정도입니다.
40 만원짜리 볼펜의 필기감 ... 1000 원짜리 볼펜하고 비슷합니다. 가격은 400 배인데 ... 어떤 사람들은 "역시 몽블랑 볼펜이 부드러워~!"라고 말하는데, 제가 보기엔 그냥 허세입니다. 1000 원짜리 볼펜하고 별로 안 다릅니다.
만년필도 ... 몽블랑 만년필은 사각거리고, 거칩니다. 별로 안 부드럽습니다. 부드럽기로 하면 4 만원짜리 라미 만년필이 최고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2 만원짜리 만년필이 사각거리면 사람들은 "역시 싸구려 만년필은 필기감이 거칠어"라고 말하는데, 몽블랑 만년필이 사각거리면 "역시 몽블랑에는 거칠고 남성적인 몽블랑만의 멋이 있어"라고 말한다는 겁니다.
고급 필기구를 갖는데에는 그만한 이유와 동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 동기와 이유의 상당 부분은 "허영심"입니다. 그 허영심을 합리화시키려고 필기감이 좋다는 등의 이야기를 합니다. 2 만원짜리 만년필과 50 만원짜리 만년필 사이에는 25 배의 가격 차이가 존재하지만, 품질 차이는 거의 없습니다. (써보지는 않았지만) 500 만원짜리 만년필도 품질은 비슷할 겁니다.
하지만 기타는 다릅니다. 500 만원짜리 기타는 50 만원짜리 기타보다 품질이 2-3 배는 좋은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가격이 10 배가 비싼데, 품질은 2 배 밖에 안 좋냐고 반문하시겠지만 ... 만년필의 경우를 생각한다면, 가격이 10 배 비싸고 품질이 2 배나 좋은 "기타"의 경우는 분명 돈값을 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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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 가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흔히 몽블랑이 제일 좋은줄 알지만, 몽블랑은 50-300 만원 정도의 중상(?) 가격대에서 명품이고요 ... 그보다 훨씬 고가 만년필의 세계가 따로 있습니다. 사진에 첨부한 만년필은 까렌다쉬의 수공품 만년필로 한 자루에 1억6천만원입니다. (이것도 1 년 전 환율로 계산한 금액이니 아마 지금 환율로는 금방 2억 이상 갈 겁니다. 참고 기사: http://www.fnnews.com/view?ra=Sent0601m_View&corp=fnnews&arcid=0921147012&cDateYear=2007&cDateMonth=11&cDateDay=09 )
까렌다쉬 1010처럼 희소성이 강한 만년필이 아니더라도, 몽블랑보다 비싼 만년필은 아주 많습니다. 백화점 등에서 어렵지 않게 구입할 수 있는 만년필로 워터맨 세레니떼 다르/마키에 같은 만년필은 한 자루에 500-700 만원 정도입니다.
이 쯤 되면 ... 갑자기 클래식 기타 가격이 너무 싸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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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클래식 기타 애호가에게 추천하는 브랜드는 그라폰파버카스텔입니다. 이 회사 필기구 중 고급 제품들은 몸체를 에보니 또는 퍼남부코 원목을 파서 만듭니다. 에보니는 다 아실테고 ... 퍼남부코는 바이올린 활을 만드는 나무라고 합니다. 지금 가격을 검색해 보니 ... 에보니로 몸체를 만든 만년필은 66 만원, 에보니로 몸체를 만든 샤프나 볼펜은 35 만원이네요. 사실, 에보니 자체는 이 정도로 비싼 나무는 아닌데, 부가가치가 아주 높은 것 같습니다.
로져스 헤드머쉰이 전혀 비싸다는 느낌이 안 들기 시작합니다~. 명품의 세계 ... 정말 요지경 세상입니다.
- J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