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실로 몇년만에 하루종일 LP 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16년전 마지막으로 남겨놓았던 LP들가지 모두정리하고
얼마지나지않아 후회를 시작한후 그 그리움의 크기만을 키워오다,
못생긴 탓에 시집조차가지못하고 빛도없는 한켠에서 10년을 견뎌온 턴테이블과,
또한 어떤이유에서인지 여기저기 서재의 구석구석에 잠겨져있어서 방출과 정리의 화를 면한 LP들,,,
그들을 모아 분해하여 청소와 간단한 수리후, 과거의 음을 기대하며 에너지를 투입했습니다.
너무 오래 숨죽여 왔던 탓인지 일정하지 못한 회전과 드물지않은 오작동...
그러나 인내와 인내를 거듭하고 한나절이 지나자 이내 과거의 몸짓을 기억해내었는지,
온전치는 않지만 무리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포노앰프가없는지라 메인인 300B 모노싱글을 통과시키지도 못하여 너무도 아쉬웠지만,
20년이 다된 TR 인티 서브의 20년간 존재감도 없었던 최소한의 기능만을 가진 포노단만으로도
감동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Manuel Barrueco 의 Villa Lobos 음반이 압권이었습니다.
CD에서는 전혀 느낄수없었던 강력한 음의 파동이 온몸 구석구석의 혈관들에 흘러 넘칩니다.
어려운 시절 레코드샵에서 우연히 발견한 이 영국산 LP가 어찌 한켠에 남아있었는지 신기하고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마치 로또3등정도 당첨된 기분이었습니다.
A면의 빌라 로보스의 전주곡들과 쇼로... B면의 브라우워 등의 음악들...
청명한 기타소리에 어느부분에서는 스틸스트링인지 착각 할정도로...
다음으로 들어본 재즈들에서의 LP음은 정말 객석에 앉아있는 듯...
콘트라베이스가 귀로들리지않고 몸으로 들리며,
테너섹소폰의 소리는 특히 CD에서는 들을수없는 윶즁하고 후박함을 보여줍니다.
트럼펫 특유의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강렬하면서도 가녀린 음색은 아마도 혼스피커에서만 들을수있는 소리가 아닌가...
ECM에서 출반된 누군지도 몰랐던 음반들에서는 드디어 뉴에이지음악의 목표와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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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단순히 편리함을 위해 궁극적인 본질을 포기했어야만 했었는지...
그리고 음악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시대에 살았었음이 감사할 뿐입니다.
그때는 음악애호가들은 어쩔수없이 그런 방식으로 음악을 들어야했는데...
그것이 이리 감사했던 일인지... 역시 사랑은 이별후에 알게되고 더욱 그리워지는 법인지...
디지탈의 범람과 MP3로 편리함을 보며,
허망한 이카루스의 꿈이 떠오릅니다.
MP3는 말할것도없고 CD보다는 차라리 카세트플레이어가
사람의 귀에도 사람의 영혼에도 훨씬 좋은 것이라는데...
불행히도 제 아이들은 이런 간접적 음악감상의 진정함을 영원히 알지못하고 살게될 확율이 많겠지요?
그러나 절망하지는 않습니다.
그 아이들에게는 연주회장에서 직접적인 음악을 들을 기회가 분명 우리때보다는 더 많게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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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많은 젊은이들이 귀에 무엇인가를 꼽고다니는 것을 보며,
반늙은이가 과거를 회상하고 그리워 하고 안타까워함은,
LP시절을 산 최고의 행운세대로서의 미안함도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