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당신이 같은 장소에 있다고 하여 똑같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당신 등과 내 등이 맞대고 있는 것은 좁은 공간 때문이니까.
내 앞엔 또 다른 사람의 등이 보이고 당신 앞엔 또 다른 사람의 등이나 가슴이 있을 뿐이오.
밀지 마시오.
밀어도 밀릴 곳 없는 이 공간에선 그저 가만히 힘을 빼고 있는게 상책이오.
당신의 부드러운 엉덩이가 내 엉덩이에 닿는다고 해서 이상한 생각은 갖지 마시오.
나는 나의 공간을 지키고 있을 뿐이오.
이곳이 아니면 언제 나와 당신이 이처럼 가까이 서서 서로의 몸을 부대끼고 있겠소.
몸을 흔들지 마시오.
나와 당신의 본능을 감추고 있는 옷이 긴장을 풀지 모르오.
숨 쉬고 있다는데 감사하시오.
종점에 가까우면 나와 당신이 지키려고 했던 이 공간이 얼마나 부질없었나 깨우칠 것이오.
문이 열렸소.
나는 내리오.
당신은 더 가야 하지만 언젠가 내릴 것이오.
이석민 시집 '나는 나이고 당신은 당신일 때'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