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들은 러셀연주 후기

by 콩순 posted Oct 2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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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들은 러셀의 연주, 너무 성실하고 정성스런 연주였습니다.
솔직히 1부는 초보자인 제게는 곡도 연주도 좀 어렵게 느껴져 몰입도 잘 되지 않았고 특별한 감흥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2부가 시작되자 저도 모르게 흠뻑 빠져들기 시작해 감동이 절정에 오르는가 싶더니 어느새 연주가 끝나버리고 말았지요. 한 20분쯤 지났나 싶었는데 어느새 40분을 훌쩍 넘기고 있더라구요. 몇 번인가의 커튼콜 끝에 연주한 앵콜곡 두 곡은 울티모 칸토(맞나?)와 스페인 세레나데였습니다. 울티모 칸토의 트레몰로도 너무 아름다웠고, 스페인 세레나데의 첫 소절이 시작되자 청중들은 마치 합창이라도 부르듯 동시에 감탄사를 내질렀습니다. 화려한 앵콜 연주가 다 끝난 뒤에도 청중들은 아무도 자리를 뜨지 않았고, 그런 청중들의 환호에 러셀은 세 번이나 무대로 다시 나와 너무 성실하게 응답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세게 박수 쳐보긴 첨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정신 차리고 나서 팔 아파 죽는 줄 알았거든요.
음악도 잘 모르고 러셀도 잘 모르지만, 어제의 연주 속에 러셀의 심성과 기질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 했습니다. 의도하든 하지않든, 흔히 대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혹은 가질수밖에 없는 후까시나 허세 같은 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뻔뻔하거나 오만하지 않으면서 시종일관 너무 조심스럽게, 너무 정성스럽게 연주에 임하고 청중들을 대하는 러셀의 태도에서 그가 평소에 얼마나 꾸준히 스스로를 갈고 닦는 사람인지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상의 삶을 대하는 그런 그의 마인드가 그가 만드는 기타 소리에 반영되어 내 귀에 전달되는 듯하여 연주를 들으면서 러셀의 일상을 상상해보기도 했지요.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가 쓴 논문을 보면 글쓴이의 평소 기질과 심성이 그대로 드러난다고들 말하는데, 음악가 역시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가지 짜증났던 일도 있었습니다. 제 앞에 젊은 연인 한 쌍이 나란히 앉았었는데 각자의 좌석에 똑바로 앉으면 아무리 키가 커도 앞줄의 머리와 머리 사이에 의자가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시야를 가리지 않는 법인데 말이지요. 이 연인들이 45도 각도로 머리를 서로 기대고 연주 내내 앉아있지 않겠습니까. 거기다 대고 ‘저기요. 두 분 좀 떨어져 앉아주세요.’라고 얘기하기도 민망하고 해서 속으로만 씩씩거리다가 결국 2부 때는 비어 있는 옆자리로 이동해버렸지요. 제가 1부 연주에 몰입을 제대로 하지 못한 데는 아마 그 연인들 탓도 있었던 듯 합니다(여러분들도 혹시 애인이랑 연주회장 가시거든 절대 서로 기대고 감상하지 마시압! 특히 오모씨님께서는 각별히 유념하시압!! ㅋㅋ).
지금 생각해보니 1부를 방해한 한 가지 원인이 더 있었네요. 제가 앉은 좌석 네 줄 앞 똑같은 자리에 째즈맨님께서 앉아계셨는데 그 아름다운 뒷모습에 그만 홀딱 반해버려서~~^^
연주회 끝나고 고기집에서 들은 고충진 선생님의 칠갑산도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연주하시는 그 멋진 포즈와 표정을 카메라에 담지 못해 무지 아쉬웠다는....
러셀에 대한 배경지식도, 정보도 거의 없고, 어제 연주된 곡에 대해서도 거의 아는 바가 없어서 보다 날카로운 지적과 분석들이 담긴 후기는 다른 매냐님들께 기대하고 제 후기는 이 정도로 마칩니다. 유명한 어떤 기타리스트의 연주를 들으면 ‘놀랍다. 부럽다. 충격적이다.’ 뭐 이런 생각이 드는데, 어제 러셀의 연주를 듣고서는 ‘생을 향한 그의 태도를 닮고 싶고 배우고 싶다. 존경스럽다.’ 뭐 이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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