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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등록 2002.05.02(목) 제407호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맥아더가 은인이라고?

남의 나라 장군 동상이 서 있는 나라에서 맥아더와 이여송을 생각함


사진/ 인천 자유공원의 맥아더 동상. 그의 생전 건립된동상은 청산돼야 할 주권국가의 흉물이다. (Economy21 이주노 기자)


인천에 가면 자유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1888년 러시아 토목기사 사마틴이 측량하여 만든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다. 이 공원의 명칭이 변화한 과정에는 우리 현대사의 굴곡이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 말 외세가 조선을 침략해오는 관문이었던 인천의 사정을 반영하여 만국공원으로 문을 연 이 공원은 일제강점기에는 서공원(西公園)으로, 그리고 한국전쟁 뒤에는 자유공원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1957년 9월15일에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이 공원의 정상에 건립되어 46년째 우뚝 서 있다.

인천상륙작전과 평양성의 왜군 대파

올해는 2002년 임오년, 근대에 들어와 우리나라에 외국군대가 주둔하기 시작한 것이 1882년이니까 꼭 120주년이 되는 해다. 그때로부터 단 하루도 이 땅에서 외국군대가 없던 날이 없었다. 이 땅을 거쳐간 외국군대만 하더라도 청나라·일본·러시아·미국·소련·중국·미군 이외의 유엔 깃발 아래의 15개국 군이니 중립국 감시군을 빼더라도 헤아리기에 손가락·발가락이 모자란다. 19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이르기까지 남의 나라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나라도 우리말고는 없겠지만, 더 기막힌 일은 외국군대의 주둔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일이다.

맥아더 장군, 어려서부터 우리는 그를 우리 민족의 은인으로 배워왔고 동상까지 세우며 기려왔다. 그러나 과연 그가 민족의 은인인지, 또는 살아생전에 동상까지 세워 기려야 할 만큼 훌륭한 인물인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맥아더가 구국의 은인이라면, 임진왜란 때 명군을 이끌고 온 이여송(李如松) 역시 구국의 은인으로 칭송되어야 마땅하다. 이여송이 평양성에서 왜군을 대파한 것이나, 맥아더가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일거에 전세를 역전시킨 것이나 위기에 빠진 국가를 구한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나 오늘날 아무도 이여송을 구국의 은인으로 기억하지 않는다. 물론 이여송이 그렇게 기억되던 때도 있었다. 조선시대의 지배층들은 그를 재조지은(再造之恩), 즉 다 망한 나라를 다시 살려낸 은혜를 베푼 인물로 추앙했다. 오죽했으면 평양성 전투 승리의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에서 이여송의 공적을 기리는 송덕비를 세우고 생사당(生祠堂), 즉 살아 있는 인물을 위한 사당을 짓기로 결정했을까? 이렇게 해서 조정에서는 평양에 무열사(武烈祠)를 세우고 이여송과 그의 동생 이여백(李如栢), 병부상서 석성(石星), 도독 양원(楊元) 등 명나라 장수 6명의 화상을 걸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또 1599년에는 총독 형개(邢 )를 모신 선무사(宣武祠)란 사당을 짓고 선조가 친필로 ‘재조지은’ 네 글자를 써서 현판으로 걸었다.

<임진왜란과 한중관계>의 저자인 한명기 교수는 재조지은을 강조하면 할수록 당시 집권자로서의 권위가 실추되었던 국왕 선조나 대신들의 어려운 입장이 다소나마 완화될 수 있었다고 그 정치적 의미를 분석했다. 즉, “위기를 극복해낸 공로의 대부분을 명군의 것으로 돌리고, 나아가 그 명군을 불러온 주체가 자신들임을 부각시킴으로써 전쟁 초반의 연이은 패배 때문에 실추된 권위를 어느 정도 만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재조지은을 강조하면 이순신이나 권율같이 정규군을 이끈 명장들이나 김덕령(金德齡)·곽재우(郭再祐) 등 의병을 이끈 진짜 구국 영웅들의 역할과 의미는 축소되고, 명군을 불러들인 조정 신료들이나 왕을 호종한 사람들의 정치적 입장이 강화된다. 실제로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공신책봉에서 전공을 세운 사람들을 공신으로 봉한 선무공신(宣武功臣)은 이순신·권율 등 18명만이 책봉되었는데 그나마 의병장은 단 한명도 끼지 못했다. 반면 선조를 따라 의주까지 도망가서 명군을 불러들인 공로로는 명나라에 파병을 청하는 사신으로 갔던 정곤수(鄭崑壽)가 일등공신으로 책록된 것을 필두로 무려 86명이 공신이 되었다.

쇠말뚝 전설의 원조, 이여송

재조지은에 대한 강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강화되었다. 선조의 뒤를 이은 광해군은 재조지은의 압박에서 벗어나 보려고 민생에 큰 부담을 줄 명의 출병 요구를 거절했으나, 인조반정이라는 쿠데타를 통해 폐위되었다. 이제 재조지은은 그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가 정권교체의 명분이 될 정도로 강력한 이념으로 등장했다. 이후 청의 침입으로 병자호란을 당해 삼전도에서 항복하는 수모를 겪은 조선의 조정은 청에 대해서는 형식적인 조공의 예를 갖추었으나, 내부적으로는 대명의리론(對明義理論), 북벌론(北伐論)을 내세우는 등 재조지은의 논리를 한층 강화하게 된다.

재조지은의 논리가 계속되는 한 그 주역인 이여송은 조선왕조 지배층의 입장에서 볼 때 맥아더마냥 일방적으로 미화되는 구국의 은인이었다. 그러나 일반 백성은 이여송을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근대 이전에 문자로 된 기록은 거의 지배층이 독점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대중의 정서와 생각을 공식기록을 통해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대중 속에 전승되어온 구비설화는 대중의 정서와 의식을 읽어내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구비설화 속의 이여송은 지배층의 공식 기록에 나타난 것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구비문학 전공자나 민속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이여송 설화는 전국의 어느 곳에서나 가는 곳마다 채록된다고 한다. 임재해 교수의 분류에 의하면 이여송 설화는 첫째, 조선의 사신이 명나라에 들어가 수모를 겪으면서도 마침내 이여송을 청병해오는 전설, 둘째, 이여송이 조선에 훌륭한 인물이 많이 날 것을 시기하여 명산의 혈(穴)을 잘랐다는 전설, 셋째, 이름 없는 소년이 이여송의 행패를 저지하고 조선에서 쫓아내는 전설, 넷째, 명산의 혈을 함부로 자르다 보니 자기 할아버지 혈까지 잘라버려(공식기록에서도 확인되지만 이여송의 조상은 조선인이다) 마침내 자신도 망하게 되었다는 전설 등 크게 네 범주로 나눌 수 있다.

관변 쪽의 기록이 일방적으로 이여송을 미화하고 찬양하는 반면, 구비설화에 보이는 민중의 인식은 이여송의 못된 면만을 부각하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여송의 단혈(斷穴), 즉 명산의 혈을 잘랐다는 전설이다. 최근 몇년 사이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면서 명산에 쇠말뚝을 박아 기를 끊고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했다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었다. 실제로 북한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명산에서 뽑아낸 쇠말뚝이 수십개에 이른다. 그런데 이 쇠말뚝 전설의 원조가 바로 이여송인 것이다. 이여송이 실제로 쇠말뚝을 박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민중의 눈에 이여송은 구국의 은인이 아니라 쇠말뚝을 박는 인물로 비쳤다.

“왜군이 얼레빗이라면 명군은 참빗”


사진/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왔던 명군 장수 이여송. 평양성에서 왜군을 대파할 때 조선인 1만명이 노근리 학살을 능가하는 죽음을 당했다는 기록도 있다.


왜 민중은 이여송을 평양성 전투의 영웅으로 기억하지 않고 쇠말뚝을 박는 인물로 기억한 것일까? 그것은 명군이 조선에 주둔하면서 보인 행태 때문이다. 평양성 전투에서 이여송이 지휘하는 명군이 베었다는 왜군의 머리에서 절반은 실상 조선 백성 것이었다. 이여송이 평양을 공격할 때 조선 백성의 머리를 벤 다음 앞머리털을 빡빡 깎아서 왜군의 머리로 만들어 전공을 속였다는 것은 명나라 병사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이 사실은 명군 내부에서도 문제가 되어 산동도어사(山東都御使) 주유한(周維翰)은 이여송을 탄핵하고 조사관을 보내 망건 자국이 있는 조선인과 머리를 빡빡 민 일본인의 수급을 구별하는 작업을 벌이기까지 했다. 이여송의 평양성 공격 당시 불에 타 죽거나 물에 빠져 죽은 조선인이 1만명이나 되었다는 기록도 <선조실록>에 보인다. 노근리 학살을 능가하는 처참한 학살이 임진왜란 당시 재조지은의 주역 이여송에 의해 자행된 것이다.

명군의 폐해는 비단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연 인원 20만명의 명군을 먹여살리고 그들에게 급료를 주느라 이미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조선의 백성은 죽을 지경이었다. 더구나 명군은 민가의 재산을 약탈하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것을 일삼았기 때문에 명군이 온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다 도망가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명군의 노략질이 오죽이나 심했으면 민중 사이에 왜군이 얼레빗이라면 명군은 참빗이라는 말까지 돌았을까? 명군의 행패가 심해지자 민심의 이반은 극에 달해 “어찌하여 왜적이 오지 않아 이런 고통을 겪게 하는가?”라는 한탄이 나올 정도였다.

조선의 조정은 명군의 행패를 뻔히 알면서도 명군이 철수하면 나라가 장차 어찌 될지 모른다면서 명군의 계속 주둔을 희망했다. 그러나 구비설화 속에서 이여송은 이름모를 소년이나 초립동(草笠童), 노인, 산신령 등에 의해 혼이 나서 조선에서 쫓겨간다. 권율이나 곽재우, 김덕령 등 민중의 사랑을 받은 장수들을 구타하고, 이순신 장군의 전과를 가로챘을 뿐 아니라, 민중을 쥐어짠 명군을 민중은 설화를 통해서나마 스스로 쫓아낸 것이다. 이여송의 죽음에 대해서도 애도 일색이었던 조정의 분위기와는 달리 설화에서는 “이여송이가 제 발등을 제가 찍고서 돌아가 그 후손까지 결딴났다”고 고소해했다. 임재해 교수는 당시 민중은 대국과 소국 간의 종속관계란 혈연의 친연성이나 혈맹관계 등에 의해 선린관계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고 평가했다. 명군의 횡포를 직접 겪어야 하는 수난의 당사자였던 민중은 이렇게 냉철하고 치열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맥아더를 무속신으로 삼은 코미디

한국전쟁 이후 반공의 광풍 때문일까, 민중의 맥아더에 대한 인식은 조선시대 민중의 인식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 1998년 인하대 서규환 교수가 인천지역 청소년 1170명을 대상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역사인물을 조사했는데 여기서 맥아더는 20.3%를 얻어 비류백제의 시조인 비류(沸流)의 4.3%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차지해 충격을 주었다. 이 조사에 대해 서 교수는 “청소년들이 맥아더 장군을 인천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은 것은 청소년들의 그릇된 인식이라기보다는 기성세대가 인천의 역사와 정체성을 바로 세우지 못했다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한편 양담배를 단속하던 1970년대에는 맥아더을 무속신으로 모신 무당이 맥아더에게 양담배를 공양하다가 단속반에 걸렸다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언젠가 필자는 한 유명한 재야인사가 4월학생봉기 당시 이승만이 하야하자 시위대 속에서 누군가가 “맥아더 장군에게 가자!”라고 외쳐 인천까지 와 맥아더 동상에 헌화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같이 인천 자유공원에 가서 꽃을 바친 그 재야인사는 뒤에 맥아더가 어떤 인물인지를 알고는 분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고 했다. 필자가 미국에 있을 때 이 이야기를 일본 현대사를 전공하는 한 미국인 교수에게 했는데 그는 박장대소하더니 자기도 그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맥아더가 트루먼 대통령에 의해 해임되고 미국에 돌아와 의회에서 연설할 때 자신이 초등학생이었는데, 학교에서는 수업을 중단하고 라디오로 중계되는 연설을 들었다고 한다. 그때 그 교수는 다른 급우들과 함께 맥아더의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유명한 연설에 감동하여 엉엉 울었는데, 나중에 일본현대사를 공부하면서 맥아더의 사람됨을 알고는 너무 억울했다는 것이다.

맥아더가 트루먼에 의해 해임된 사건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매우 애석해하는 분위기가 압도적이다. 맥아더를 무속신으로 모신 것도 그를 최영 장군, 남이 장군 또는 관우 장군처럼 큰 한을 품은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1951년에 트루먼이 맥아더의 주장대로 만주를 폭격했더라면 통일은 그때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1964년 맥아더가 사망했을 때 <조선일보>는 추도 사설에서 한국통일의 절호의 찬스가 맥아더의 해임으로 유실되었다면서, 그의 주장이 수포로 돌아간 것을 다시 애달프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 1996년에는 당시 대통령 김영삼이 전방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여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만주폭격의 주장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었다. 원자폭탄의 사용을 전제로 한 맥아더의 만주폭격 구상이 실현되었다면 이는 한반도의 통일이 아니라 즉각 제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질 일이었다. 더구나 맥아더는 당시 합동참모본부에 원자폭탄을 투하해야 할 목표지점으로 한두곳이 아니라 무려 26곳을 선정하여 보고하면서 즉각적인 원자폭탄 투하를 승인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도 1차로! 이런 위험한 발상을 한 맥아더를 해임한 것은 한반도를 위해서나 세계평화를 위해서나 천만다행인 조치였다. 맥아더가 이렇게 강력한 주장을 한 것은 전쟁 수행과정에서의 자신의 판단착오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는 끊임없는 정보보고에도 불구하고 이북군의 공격 가능성을 무시했으며, 중국군의 개입 가능성을 묵살하고 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을 단행했다. 더구나 그의 호언장담과는 달리 중국군이 개입하자 미군은 미군 역사상 최대의 치욕으로 기억되는 장진호 패배를 당하는 등 중국군에 크게 밀린 상황이었다. 맥아더는 1960년 자신이 원자폭탄의 사용을 주장했다는 트루먼의 주장은 완전한 허위라고 말했지만, 뒤에 간행된 회고록에서는 30∼50발의 원자탄을 투하할 것을 계획했다고 기록했다.

맥아더 해임은 실로 천만다행


사진/ 한국전쟁 당시 인천에 상륙하는맥아더. 그의 만주폭격 주장은 참으로 위험한 것이었다.


미국 역사상 맥아더만큼 상반된 평가를 받는 군인도 없다. 미국 역사상 최초로 문민우위의 원칙에 도전했다가 해임된 맥아더는 한편에서는 미국의 시저, 또는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심지어 신으로까지 추앙받지만, 최근에는 그에 대한 비판적인 연구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애리조나 대학의 마이클 샬러 교수는 <더글러스 맥아더: 극동의 장군>에서 흔히 높이 평가되는 맥아더의 군사적 업적도 객관적으로 평범하거나 수준 이하인 경우가 많았으며, 인간적으로 볼 때 맥아더는 독선적이며, 이기적 기회주의자이자 자아도취적 소아병 환자였다고 주장했다. 선글라스에 옥수수 파이프, 팽팽한 모자에 잘 다린 바지로 상징되는 튀는 옷차림에 대해 트루먼은 70대의 5성 장군이 19살 소위같이 하고 다닌다고 못마땅해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의 와인츠로브 교수도 <맥아더 장군의 전쟁>에서 맥아더가 “한국전 당시 대통령도 무시할 정도의 제왕주의적인 태도와 국제정세에 대한 빈약한 판단력 때문에 결국 강제 전역됐다”고 평가했다.

맥아더는 이승만 정권 시절 살아생전에 동상이 건립되었을 뿐 아니라 생일이면 신문에 기사가 실릴 정도로 정권에 의해서 찬양받았다. 재야나 학생들의 주장 이외에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문제제기는 최근에야 <한겨레21>이 용미(用美)와 철미(撤美)의 대화라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제기할 정도로 이 땅에서는 엄청난 금기사항이었다. 일반 대중의 미군에 대한 인식 역시 임진왜란 당시 일반 백성의 명군에 대한 인식에 비하면 대단히 호의적이다. 그러나 대학생들에 의해 반미 구호가 나오기 훨씬 이전에 채록된 구비설화에 일본군이 아닌 미군이 우리 산천의 혈을 자른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생산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맥아더나 주한미군에 대한 일방적인 찬양과 옹호와는 다른 기류가 아주 낙후된 형태로나마 만만치 않게 흐르고 있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김남주 시인의 시에 인용된 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남의 나라 군대 끌어다 제 나라 형제 쳤는데 / 뭣이 신난다고 외국 장수 이름을 절에까지 붙이겠소 (蘇定方의 이름을 딴 부여의 定方寺, 來蘇寺를 지칭) / 하기야 인천 가니까 맥아더 동상이 서 있더라만 / 남의 나라 장수 동상이 서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더만.”

노근리 학살을 거론하고, 맥아더의 동상에 대해 시비를 거는 게 배은망덕이라고? 입장을 바꾸어 이북이 만일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덕회(彭德懷)의 동상을 세웠다면 얼마나 꼴불견일까?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라지만, 죽어서도 사라지지 않는 노병의 동상을 보며 나는 자꾸 숨이 막힌다.

한홍구 ㅣ 성공회대 교수·한국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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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2'
  • 1000식 2005.09.12 22:19 (*.228.153.164)
    맥아더 장군이 우리나라에서 두고두고 추앙받아야 할 정도로 위대한 인물인가요?
    최소한 우리 국민이 서로 싸우면서까지 무너뜨려야할 만큼 대단한 대상은 아닌것 같아요.
    오마이뉴스에도 맥아더 장군에 대한 기사가 났네요.
    http://pla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79936
  • 에혀2 2005.09.12 23:09 (*.117.182.155)
    뭐..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국민적 합의가 우선되어야 철거를 하던지 말던지 할것인데.. 가면 갈수록 합의는 커녕 꼬이기만하니.. 하긴 모든 생각이 같다면 파시즘국가겠지만..;;
    지금은 좀 성급하고 10여년후라면 가불가 어느쪽이든 결론이 나겠죠
  • 글쎄요 2005.09.12 23:14 (*.69.185.68)
    맥아더의 개인적 자질이 뛰어나든 말든, 인품이 위대하든 개차반이든 관계없이, 대체로 남한에 사는 사람들은 몇가지 삶의 속성에서 그의 덕을 입었다고 볼 수 있겠지요. 지금 북한에서 사람 사는 꼴과 비교하면 말이죠.
    지금 북한이 우리보다 훨씬 나은 체제와 삶을 살고 있다면, 당연히 맥아더는 대접을 못 받겠지요.

    저 위에 무슨 농부 시에서 남의 나라 군대 끌어다 제 형제 친 것을 못내 애통(?)해 하는 듯한 글귀가 있는데,
    그보다 먼저 제 형제를 총칼로 치고 나선 폭력배 형제가 있다는 것을 먼저 거론해야 하지 않을런지...
    그리고 그 폭력배 형제가 이겼다면, 수천만 민족이 자유를 박탈 당하고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을런지...
    인간의 삶의 가치가 더 중요한가, 삶이 폭력으로 유린되는 단순히 껍데기만 합친 게 더 중요한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 삐약이 2005.09.13 00:09 (*.42.83.235)
    맥아더 장군님 만세~!!
    우리가 이렇게 지금 편하게 살고있는 것은 다 맥아더 장군님 덕택이삼.
  • 콩쥐 2005.09.13 06:40 (*.227.72.240)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무지와 관련된 "사견"과
    역사적인가치로 이해되는 "주장"은 구별되야죠.
  • 음. 2005.09.13 11:39 (*.155.59.60)
    인천상륙작전이라는 결과물만 가지고 감정적으로 추앙하는 일은 鷄頭에게나 어울리는 일이죠.
    히로시마의 원폭 투하가 결과적으로 해방을 가져왔다고는하나 수십만명의 민간인을 대학살하는 인간을 영웅으로 떠 받드는 일은 21세기가 지양해야 합니다...더군다나 투루먼 대통령의 반대가 없었던들 만주에도 핵을 투하했을 것이 뻔한, 맥아더 같은 휴머니즘이 결여된 사람에 대한 우상화는 후진적 발상이죠.
    역사적인 가치가 한 인물에 대한 우상화로 이어질 수는 없습니다...그건 진짜 조류적 발상이죠.
  • 흔히들 2005.09.13 13:01 (*.85.58.117)
    6.25가 동족 상잔의 비극이니 형제에게 총뿌리를 겨누었다니 하는 말이 있는데
    솔직히 내전한번 없었던 나라도 드물지 않을까요?
    현대사만으로 범위를 좁히지만 않으면 말이죠
    단지 6.25가 불과50년전에 일어났기때문에 상처가 깊어서 그렇지
    미국도 남북전쟁을 치렀고 일본도 중국도...

    6.25가 일어나기 전에 이미 나라는 망했고 강대국들에 의해 각자 독립된 정부가 세워지고
    남한 북한 둘다 선택하지 못한 그야말로 우리민족 모두를 형제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따로 모아 왕따까지 시켰는데 서로 다른 정부끼리 전쟁이 난데다가 형제애를 들먹일 수 있을까요.
    백제랑 신라가 싸운걸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고 누가 그러던가요.
    조선때 한 번 통일했다고 이 한반도가 영원히 한나라인가요?
    조선은 이미 망했었습니다. 자기능력으로 유일정부하나 수립하지 못할만큼.
    그럴 능력이 있었을지 모르나 타이밍이 좀 늦었는지 결국 역사적으로 증명하진 못했죠.
    김 구가 죽은 이후 조선왕조의 정통성은 이미 끝났다고 봅니다. 각자 친한 강대국의 위상을
    등에 업은 ROK와 PRK가 있을뿐이죠. 이 둘 사이의 전쟁을 "동족 상잔의 비극"이라고 하는건
    아주 틀린말은 아니겠지만 결국은 왜곡입니다. 시선을 엉뚱한데 두게 한 거지요.
    무엇을 위해 왜곡했을까요.

    그리고 맥아더는 우리 잘먹고 잘살라고 싸운게 아닙니다. 군인은 조국을 위해서만 싸우죠.
    얼마전까진 이념을 위해서도 싸우는 듯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결국은 다 조국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는 겁니다.
    이념도 한때 명분이죠.
    우리를 위해서 싸울수 있는 건 아쉽게도 우리 자신뿐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지금 편하게 살고 있는건 정말 우리를 위해 싸워준 사람들 덕분이죠.
    우리가 같이 나눠야 했던 고통을 대신 짊어지고 간(자의든 타의든)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래도 아직도 우리 "모두가" 다 잘 살고 있지는 않습니다. 삐약이님이나 저는 소일거리로
    기타도 잡을수 있을정도로 여유가 될 진 모르지만 말입니다.

    6.25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아직도 우리(남한 사람들 끼리)를 "피를 나눈 형제"로 생각하고 있는지요.
    저는 다소 "편하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저와 제 가족을 위해서만 산다고 생각합니다.
    거의 모두가 그렇겠죠.
    다만 서로 총뿌리만 안 겨눌뿐이죠
    50년 전엔 오죽했을까요.
    50년 전에 38선 이남엔 다 착한 사람만 살고 있었고 이북엔 부모형제도 못알아보는
    패륜아들만 살고 있었을까요(지금 누가 남한사람이 남한사람 죽였다고 패륜이라고 하나요)
    북한도 통일을 하려고 했었던 겁니다.
    북한이 안했으면 우리가 먼저 했을걸요. 그게 우리맘인가요 미국맘대로지.
    과연 그러고 나서도 "동족상잔의 비극"이란 말을 우리가 썼을까요.

    사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민족을 쳤다고 맥아더를 비난할 수도 없겠죠.저도 그건 근거가 안된다고 봅니다.
    다만 동상까지 세워줄 인물인지는 제고를 해야겠지요.
  • 동상 2005.09.13 13:40 (*.69.185.68)
    하나 가지고 우상화니 감정적으로 추앙하니 식으로 해석하는 것도 鷄頭스러운 일이죠.
    거기에 동상 하나 있으면 있는 거고 없으면 없는 거지 뭔 대수일까요.
    단지 의미를 부여한다면, 인천상륙작전이라는 큰 사건에 대한 하나의 대표적
    상징 기념물 정도이지, 전국에 육이오 전적비들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맥아더 동상 하나
    있다고 기분 나빠 하는 집단은 아마도 패전한 북한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경우겠죠.
    그리고 북한의 기분 나쁜 감정에 동조하는 일부 남한 사람들하고...
    분단을 고착화(?)시킨 맥아더 운운하는 일부 자칭 민족주의자들은, 진실로 민족주의를
    선양하고 싶다면, 먼저 김일성 동상부터 깨 부수러 가자고 설쳐야 정상이죠...

    분단의 고착이란 융화가 안될 정도로 분리된 것을 의미하는데, 왜 융화가 안되게 되었을까요?
    김일성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평화공존 방식으로 지냈으면, 두 집단 사이의 앙금이
    그렇게 깊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이미 통일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 일인데,
    전쟁의 참상을 일으키는 통에 웬수지간이 되니 분단이 고착되어 버린 것이죠.
    친하던 친척이나 형제간에도 서로 재산을 빼앗거나 생명을 잃을 정도의 싸움나면
    웬수지간이 되는 거나 마찬가지죠.
  • 사실관계 2005.09.13 14:12 (*.43.227.18)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 8.15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수립 1948. 9.9
  • 음. 2005.09.13 14:25 (*.155.59.60)
    거기에 동상 하나만 있는거고 없으면 그만이지...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동상 철거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겁니까? 동상철거하는 사람들을 빨갱이로 몰아 세우면서 까지 말이죠.
    인천상륙작전이라는 큰 사건에 대한 하나의 대표적 상징 기념물 정도...라고 축소해서 해석할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리 해석이 안되니 말이 많은 것 아니겠습니까?
    동상은 이미 우익세력에게 추앙과 우상화의 상징입니다. 제가 그리 해석하는 게 아니구요,
    鷄頭스럽다는 건 그런 의미입니다...아시겠습니까?

    자기 민족에게 이득이면 영웅..이라는 논리는 민족주의의 씁쓸한 이면입니다. 그런 논리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를 돌아본다면.
  • 동상 2005.09.13 15:54 (*.69.185.68)
    철거에 기를 쓰고 반대하는 가냐고요? 동상을 세운 사람들이 뭔가 그 시대의 의미가 있으니까
    세웠을 것이라는 인식을 존중하는 게 우선이라고 봅니다.
    동상 철거하자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뉴스에서 얼핏 보았는데, 무슨 "우리 민족끼리"...
    "민족주의"가 어떻고..."분단의 고착화를 초래한 맥아더" 이런 식의 주장이던데,
    "우리 민족끼리"나 "민족주의"라는 주장을 한꺼풀만 벗겨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모순 투성이라는 걸 알 겁니다.

    민족주의를 얘기하려면, 같은 민족을 침략하여 수백만의 민족을 살상한 김일성이 가장
    반민족주의적인 인물이고, 또한 같은 민족 수십만을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수백만을 굶겨죽인
    김정일(돈이 없었던 게 아니죠?)이 역시 가장 반민족주의적인 인물인데,
    먼저 그 자들을 손 보자고, 김일성 동상 철거하자고 나와야 상식에 맞는 일입니다.
    거기에 비하면, 맥아더는 나머지 절반의 민족에게라도 자유와 인권을 지켜주는데 공을 세운
    점이 있는데, 어따 대고 민족주의 잣대를 들이대느냐 이거죠.

    맥아더 동상은 같은 민족을 무력으로 침략한 자들을 퇴치한 사건에 있어서의 상징적 인물로서
    그 동상이 없었다면 굳이 세울 필요가 있겠냐만, 이미 있다면 그걸 가소로운 핑계를 들이대고
    철거하자는 자들의 명분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죠.
    철거론자들의 명분이 북한의 육이오를 정당화하고 북한이 진 것을 애석해 하는 식이니,
    빨갱이라는 욕을 먹어도 할 말 없다고 봅니다.
  • 가장 2005.09.13 16:06 (*.69.185.68)
    반민족주의적인 행태를 보여 온 북한 권력자들과 "민족주의"를 해 보자며,
    그들의 요구대로 남한의 기존의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가치관을 파괴하는데
    앞장서는 자들이야말로 鷄頭스러운 자들입니다.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민족이라는 말을 입발린 소리로 값싸게 팔고 다니지 않으며,
    민족의 자유와 번영의 삶을 위해 묵묵히 헌신하는 사람들입니다.
  • 음. 2005.09.13 16:07 (*.155.59.60)
    웃기기 짝이 없네요.
    김일성 동상이 남한에 있습니까?
    여기서 동상 철거하라고 백날 시위해봤자 강건너 불 아닌지요.
    철거론자의 명분은 아마도 좃선이나 중앙같은 찌라시들의 작품이죠.
    철거론자들이 모두 빨갱이입니까?
    맥아더 전기나 한번 더 보시지요.
    그가 그렇게 민주주의의 화신인지.
    정작 미국 본토에서 비판 받는 인물을 국내에서 '받들어 총' 하는게 우습다는 생각입니다만.


    민족주의요? 친일세력 가득한 수구 보수들같은 족속들이 "어따대고"민족주의를 들먹이는지모르겠군요.
    수구 보수면 다 친일이냐?고 반문하고 싶겠죠.
    그럼 동상 철거 외치는 사람은 다 빨갱이 입니까?
    그리고...
    "어따대고" 이따위의 말투는 싸우고 싶지않거든 삼가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돌려 받고 싶지않다면.
    싸가지 없는 데에는 당신을 훨 능가하니까 말이죠.
  • 음. 2005.09.13 16:09 (*.69.185.68)
    님, 어따대고 라는 말은 철거를 주장하던 시위대의 민족주의에 기반한 주장에 대한 반박입니다.
    글을 잘 읽어 보시죠. 귀하에게 하는 말이 아닙니다.
  • 음. 2005.09.13 16:11 (*.155.59.60)
    아이디가 음이라니...내가 쓴 글 같네요.ㅋㅋ...
    귀하는 박정희 같은 위대하신 사람에게만 칭하는 거구요,
    제겐 통상적인 존칭만 붙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아냥으로 들릴 수 있으니.
  • 음. 2005.09.13 16:15 (*.69.185.68)
    님, 철거론자의 명분이 아마도 좃선이나 중앙같은 찌라시들의 작품이라구요???
    제가 방송에서 한*렬이라는 시위대 대변자의 인터뷰를 들었는데 무슨 소리를 하세요?
    그들의 주장이라는게 강정구 교수의 얘기와 거의 같은 수준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 식의 주장을 하는 자들이 김일성 동상 철거를 외친다구요? 농담이겠죠...

  • 동상 2005.09.13 16:46 (*.155.59.60)
    님, 한*렬이라는자가 모든 철거론자들의 대표입니까? 그냥 다른 생각을 가진 시위대의 대변자이지.
    그럼 조갑제와 지만원이 모든 보수세력의 대표입니까?
    일반화의 오류는 좃선 같은 찌라시의 장기자랑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저도 철거를 주장하지만 소위 빨갱이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외다.
    이젠 "극히 일부 표현만을 문제 삼아 붉은 색 덧칠하는"데에 좀 식상하거든요.
    레퍼토리 좀 바꾸면 참 좋으련만.
    머리가 굳어서 창조적이지 못한건지.ㅉㅉ


  • 고착화 2005.09.13 17:03 (*.85.58.117)
    에 대한 생각은 저도 동의합니다.
    일단 사람이 죽으면 죽기 전과는 모든 문제가 차원을 달리하게 되지요.
    폭력혁명을 정당화했던 공산주의의 오류이자 김일성의 죄이고
    김일성이 저지른 것에 비하면 규모는 매우 작지만 박정희, 전두환도 비슷한 잘못을 저질렀지요.
    6.25를 직접 겪으신 분들이 김일성 욕하는 것과 7~80년대 고생하신 분들이나 희생자분들의
    유족들이 그 당시 정권들에 항의하는 것도 비슷한 현상이라 생각됩니다.
    비록 전자는 우익, 후자는 빨갱이로 불리고 있지만요.

    "국립묘지에 잠들어계신 분들은 그럼 민족통일에 대항한 반역자들입니까?" 란 말에 대한 답변입니다

    제가 위에서 북한도 통일을 하려고 전쟁을 벌였다고 썼지만 다시 읽어보니 표현이 좀 그렇군요.
    북한이 이루려했던 통일은 "민족통일"이라기 보다는 한반도전체를 차지하기 위한 단순한 영토싸움 내지는
    남한의 노동자를 해방시키기 위한 혁명(물론 명분이겠죠. 실제론 김일성개인의 권력욕망충족이 아니었을까요)
    이었겠죠. 공산주의에서 민족은 의미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고등학교 윤리시간에 유물론 어쩌구
    하면서 나왔었죠 맞습니까?) 거창하게 "민족 통일전쟁"이란말을 쓸것까진 없을것 같습니다.

    조만식 선생처럼 김 구선생도 돌아가셨습니다.
    아마 평화적통일을 원한 쪽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강대국은 분단을 원했고
    거기에 순응한 지도층만 목숨을 유지한 거겠죠.

    6.25는 남한과 북한정권 모두에게 50년동안 이념을 이용한(또는 원수에 대한 분노)손쉬운 정치를
    가능케 했다고 봅니다. 먹고 살기 바쁜 민초들만 고생했지요. 그것만 아니면 전 무리해서까지
    통일할 필요없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유럽대륙 여행하듯이 간소한 수속밟고 다닐수만 있어도 않을까요.
    문제는 전쟁의 공포입니다.

    전쟁의 공포. 그것도 전쟁을 막기 위해 기억되고 대비되는 정도가 아닌 정권의 손쉬운 통치를 위해
    과장되고 때로는 사람이 다치고 어떠한 요구가 정당한 요구인지 고려되기도 전에 묵살시킬 수 있는정도의 전쟁의 공포.
    이것에 빠져있는 동안 일본과 중국 커가는 것 보이십니까.

    십년전에 북한에 쌀보내는게 군량미로 쓰인다고 대서특필되던것 기억하시나요.
    그들이 우리쌀 먹으면서 아무리 내부적으로 감추려한들 그게 우리쌀인 줄 몰랐을까요.
    이제 그들도 우리가 "당연히 미제로부터 해방시켜야" 할 그런 단순한 존재가 아닌걸 조금씩 배워나갈겁니다.
    전쟁의 명분이 줄어드는 거지요. 전쟁의 공포가 줄어든 겁니다. 공포를 이용해 정치를 하던 누군가에겐 나쁜 뉴스겠죠.

    앞으로 십년 후엔 서로 이야기할 기회도 생길지도 모르죠.
    아마 6.25얘기도 나오겠죠. 김일성 맥아더 얘기도 나올겁니다. 어쩌죠?

    강대국들의 세력견제라는 큰 시각에서 6.25를 보지 않고 자꾸 집안싸움 수준에서 이해하면 될까요?
    그때 우리들에게 전쟁을 시킨 미국은 석유전쟁에 여념이 없고 소련은 존재하지도 않습니다.
    무슨 문제만 생기면 외국군대 불러서 문제 해결하던 바로 우리 모두의 탓입니다.
    조선 말기에 일본 러시아 청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던 생각하면 복장이 터집니다.
    대한민국이 미국 원조로 생긴 정부인게 무슨 자랑입니까? 북한도 소련.중국없었으면 마찬가집니다.
    (모 의원은 미국등돌리면 대한민국 정체성이 없어진다고 했다죠. 거봐요 조선은 망했다니까)

    중국과 일본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날조까지하는 마당에 왜 우리만 이렇게 역사에
    묶여살아야 하는지....쓰다보니 약간 흥분했습니다.

    맥아더동상 철거하자는 사람들 중에 분명히 진짜 빨갱이도 있을겁니다. 그러나 그런 빨갱이는
    미국에도 있을거고 일본에도 있을 겁니다. 분명히 공산주의는 견제되어야 할 대상이지만
    군사정권때같은 방법으론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 능력으로만 보면 자본주의가 유리한 사람입니다)

    김일성과 맥아더의 죄목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저 사회과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하지만 뭔가 서둘러야하는 때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통일을 하던 안하던, 기존의 시각을 청산하고 뭔가 새로운 틀에 관해 논의해야 할 시기인것 같습니다.
    남북한을 모두다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현대사관 말입니다.
    반세기동안 우리를 지켜주던 걸 바꾸려면 매우 아플겁니다.
    그런데 동상하나에 저렇게 싸우는 걸 보면 이게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합니다.(한숨)
    없는 시간 쪼개서 나온걸 보면 양쪽 다 애국심은 저보다 클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루종일 격무에 시달려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도 없는 사람이면 모를까.
    적어도 악기하나 연주할 수 있는 정도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이면 다양한 생각에 열려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써 봤습니다.(저도 참 할 일 없습니다--)
  • 흠; 2005.09.13 18:57 (*.74.13.82)
    만약 히로시마에 원폭을 떨어뜨리지 않고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승리 했으면 어땠을까요? 아마 몇십만도 아닌
    몇백방이 죽었겠죠;
    지금은 핵이용이 정말 위험하지만 그때 당시 핵으로인해 다른나라들이 독립을 헀다면. 전 그것이 더 정당한 것이라고 합니다.
  • 1000식 2005.09.13 23:48 (*.122.103.59)
    우리 시대의 소명은 남북으로 갈라진 이 민족을 하나로 묶는 통일입니다.
    이 통일의 과정이 없고서야 무슨 낯으로 후손들을 대할런지요.
    통일은 우리 세대에 우리의 손으로 이룩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주어진 우리의 소명입니다.
    맥아더 동상의 철거에 관한 찬.반 이야기는 사실 곁가지에 불과합니다.
    모든 논의는 통일을 전제로 모아져야 합니다.
    이념이란 건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민족적 개념은 이 것과는 차원이 다른 훨씬 상위의 개념이 아닐까요?
    우리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이념적 갈등을 겪고 있는 건 이 민족이 둘로 갈라져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온갖 억압적 상황도 분단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니까요.
    남 따로, 북 따로라면 서로가 치열하게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각자 찢어져서 잘 살면 그뿐이죠.
    순국선열들은 무엇을 위해 귀중한 목숨을 바쳐 피를 흘렸을까요?
    참으로 가슴이 미어집니다.
  • 콩쥐 2005.09.14 00:56 (*.80.15.166)
    통일이 아니고는
    경제적 , 정치적독립은 물론
    예술의 성취도 쉽지않습니다...
  • 하긴 2005.09.14 10:01 (*.228.154.19)
    일본도 당시에 원폭을 개발중이었다고 합니다.
    미국이 조금 더 빨리 개발한거라고 하더군요.
    일본이 더 빨리 개발했다면...상상만해도 끔찍하군요.
    결국 국제관계란 힘이란 얘기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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