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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지양의 연주회 후기가 안 올라오네요. 기다리고 있었는데...
저의 이 글은 후기가 아니라 이원지양의 연주회를 보고 제가 당부하고 싶은 말을 공개적으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연주가 좋았다, 아니면 그렇지 않았다는 평가가 궁금하겠지만 이원지양은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한창 공부하는 과정에 있고 날로 기량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현재의 평가가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원지양의 연주가 좋지 않았다는 걸 빙빙 돌려서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이원지양의 연주는 무척 좋았습니다. 안정된 테크닉과 약간 절제된듯한 쿨한 느낌이 좋았고, 나이보다 대범함이 돋보였고, 수줍은 듯하면서도 자신감이 있어보여서 신뢰감이 들고 든든했거든요.
칭찬이 용기를 북돋워주고 자신감을 줄 때도 있지만 때론 독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한 한마디의 충고는 약이 되지만 그걸 받아들인다는 게 인격을 갖춘 어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에 대한 평가는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비평의 칼을 뽑았다가도 도로 집어 넣거나 아니면 칼날을 무디게 뭉개서 완곡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칭찬 일변도나 인사치례로 대충 마무리하지요.
더구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발전이 있겠어요?
그 날 연주했던 Danza Mora(무어인의 춤)를 예로들어 볼께요.
기량이나 테크닉면에서 그다지 부족함이 없는 연주였지만 제겐 약간 아쉬운 듯한 연주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곡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음악외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압니다.
음악에는 아무리 악보를 놓고 씨름하고 열심히 연습을 해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답니다.
즉, 이 곡은 바로 스페인의 역사 속에서의 무어인의 존재를 이해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이해하고 못하고에 따라 음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타레가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 무어인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었느냐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어인들이 나오는 영화도 볼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무어인들은 무척 용감한 사람으로 알려져서 전쟁에서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식인종 - 이건 완전히 무어인들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모함에 가까운 거예요 - 으로 묘사되기도 했지요.
그럼, 무어인들이 힘만 세고 용감한 단순 무식한 미개인이었을까요?
아니예요.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이 바로 무어인이었습니다.
수준높은 미적 감각의 소유자가 바로 무어인들이었고 이들의 문화수준은 대단히 높았답니다.
이런 무어인들이 15세기 말 기독교 세력에 의해 북아프리카로 추방을 당했는데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은 이교도이자 미개한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알베니스와 같은 작곡가가 "내 몸 속에는 무어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들과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악보를 훑어보면 귀엽고 깜찍한 부분이 나오기도 하고, 첫 도입부분은 악간 황당무계한 느낌도 듭니다.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소지도 많지만 저는 스페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무어인들의 희화된 모습이라고 봅니다.
무서운 칼은 들고 휘두르고 있지만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귀엽기조차한 그런 모습말이예요.
어때요? 만약 이 곡을 제가 바라본 시각대로 해석했을 때의 연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답니다.
음악 자체의 논리나 미적인 표현이란 게 있어요.
음악은 미술이나 역사나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연주라는 행위를 통해서 표현해야 하거든요.
여기에서 연주법과 해석에 대한 여러 문제가 대두되지요.
각설하고,
먼저 폭넓은 미적 체험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 고3이라서 입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미술관에도 가고,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인접 예술에 대한 폭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려면 적어도 연애라는 걸 해봐야 하지 않나요?
음악 감상을 하더라도 기타음악에 국한해서 하지 마시고 다양한 장르를 두루 체험해보시기 바래요.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미술사를 꼭 공부하세요.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느끼는데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주는 '나'라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깊이와 넓이와 영혼까지도요.
저의 이 글은 후기가 아니라 이원지양의 연주회를 보고 제가 당부하고 싶은 말을 공개적으로 몇 자 적어봤습니다.
연주가 좋았다, 아니면 그렇지 않았다는 평가가 궁금하겠지만 이원지양은 지금 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으로서 한창 공부하는 과정에 있고 날로 기량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현재의 평가가 그리 중요한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원지양의 연주가 좋지 않았다는 걸 빙빙 돌려서 어렵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이원지양의 연주는 무척 좋았습니다. 안정된 테크닉과 약간 절제된듯한 쿨한 느낌이 좋았고, 나이보다 대범함이 돋보였고, 수줍은 듯하면서도 자신감이 있어보여서 신뢰감이 들고 든든했거든요.
칭찬이 용기를 북돋워주고 자신감을 줄 때도 있지만 때론 독약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정한 한마디의 충고는 약이 되지만 그걸 받아들인다는 게 인격을 갖춘 어른들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주에 대한 평가는 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비평의 칼을 뽑았다가도 도로 집어 넣거나 아니면 칼날을 무디게 뭉개서 완곡한 표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니면 칭찬 일변도나 인사치례로 대충 마무리하지요.
더구나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래서야 어디 발전이 있겠어요?
그 날 연주했던 Danza Mora(무어인의 춤)를 예로들어 볼께요.
기량이나 테크닉면에서 그다지 부족함이 없는 연주였지만 제겐 약간 아쉬운 듯한 연주였습니다.
왜냐하면 이 곡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음악외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압니다.
음악에는 아무리 악보를 놓고 씨름하고 열심히 연습을 해도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답니다.
즉, 이 곡은 바로 스페인의 역사 속에서의 무어인의 존재를 이해해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것을 이해하고 못하고에 따라 음악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타레가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에 무어인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었느냐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무어인들이 나오는 영화도 볼 필요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무어인들은 무척 용감한 사람으로 알려져서 전쟁에서 용병으로 활동하기도 했고,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식인종 - 이건 완전히 무어인들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모함에 가까운 거예요 - 으로 묘사되기도 했지요.
그럼, 무어인들이 힘만 세고 용감한 단순 무식한 미개인이었을까요?
아니예요. 아름다운 알함브라 궁전을 설계하고 건축한 사람들이 바로 무어인이었습니다.
수준높은 미적 감각의 소유자가 바로 무어인들이었고 이들의 문화수준은 대단히 높았답니다.
이런 무어인들이 15세기 말 기독교 세력에 의해 북아프리카로 추방을 당했는데 기독교도의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은 이교도이자 미개한 사람이었거든요.
하지만 알베니스와 같은 작곡가가 "내 몸 속에는 무어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 이들과 반드시 적대적인 관계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악보를 훑어보면 귀엽고 깜찍한 부분이 나오기도 하고, 첫 도입부분은 악간 황당무계한 느낌도 듭니다.
시각에 따라 달리 해석될 소지도 많지만 저는 스페인 사람들의 눈에 비친 무어인들의 희화된 모습이라고 봅니다.
무서운 칼은 들고 휘두르고 있지만 전혀 무섭지 않고 오히려 우스꽝스럽고 귀엽기조차한 그런 모습말이예요.
어때요? 만약 이 곡을 제가 바라본 시각대로 해석했을 때의 연주는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하지만 악기를 연주한다는 건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답니다.
음악 자체의 논리나 미적인 표현이란 게 있어요.
음악은 미술이나 역사나 문학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연주라는 행위를 통해서 표현해야 하거든요.
여기에서 연주법과 해석에 대한 여러 문제가 대두되지요.
각설하고,
먼저 폭넓은 미적 체험을 권하고 싶습니다.
이제 고3이라서 입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에 환경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대학에 들어가면 미술관에도 가고, 문학이나 연극과 같은 인접 예술에 대한 폭을 넓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표현하려면 적어도 연애라는 걸 해봐야 하지 않나요?
음악 감상을 하더라도 기타음악에 국한해서 하지 마시고 다양한 장르를 두루 체험해보시기 바래요.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면 미술사를 꼭 공부하세요.
아름다움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을 느끼는데 꼭 필요하다고 봅니다.
연주는 '나'라는 존재를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랍니다.
깊이와 넓이와 영혼까지도요.
Commen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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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말씀이십니다.
원지양 클나따. 1000식님께서 기타리스트를 넘어 예술가가 되라고 요구하시네요. ㅋㅋㅋ -
장한나도 그래서 음악 대신 철학 전공을 선택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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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오스도 항상
음악인은 문화로 목욕을 해야한다고 말씀해오셨다네여....
그것이 꿀맛에 접속하는거니까요....
원지님의 연주에서 꿀맛을 더 많이 느끼고 싶은건 저도 마찬가지죠...
같은또래의 비도비치보다는 원지님의 꿀맛이 저는 더 좋아요.,같은민족이라그런지..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