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최형덕 교수님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흰봉투에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갑자기 막막해졌습니다.
한번도 뵌 적이 없어 그냥 기타매니아의 으니로만 저를 아셨을텐데.. 하는 생각에
떨리는 손으로 기타매니아 으니라고 적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째서 난 이제서야 첫인사를 하게 된 것이었을까.. 하고 맘이 아팠습니다.
무엇이든 좋아하는 것은 벽이라고 한다합니다.
기타를 보통 사람 이상으로 뛰어나게 잘 치는 것도, 일종의 기벽이겠지요..
또는 어떤 한가지에 미쳐 파고드는 것도, 벽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그 음악에 대한 신념과 사랑이 지나친 탓에..
그 벽이.. 다름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말그대로 "벽"이 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됩니다..
음악은 아름답고.. 그 음악에 대한 사랑도 아름답구..
그러니까 음악을 사랑하는 우리들도 다 아름다워야 하는데..
내가 나를 가두어둔 벽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을 뒤늦게 해보았습니다.
생전의 고인은 기타매니아와 기타음악에 많은 사랑을 쏟아부으셨다는 말씀을
지인들께로부터 전해들었습니다.
제가 게을러서, 오늘에서야 영정에서 뵙게된 것이 슬픔을 앞서 전 얼마나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빈소 한켠에서 간단히 말씀을 나누면서도..
오늘 만나뵌 여러분들의 이야기 주제는 여전히 기타와 음악의 이야기였음을 떠올리니
장례식은 살아있는 남은 사람들에게 주어진 자리이며,
우리가 여전히 해야할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그것이 고인의 마지막 남겨주신 뜻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빈소를 나서는데, 사모님께서 짧은 말씀을 저에게 해주셨습니다.
짧은 말씀이셨지만.. 말씀을 마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지셨습니다.
전 아무말씀도 드리지 못하고 그저 사모님의 두 손을 꽉 잡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같은 것을 없다 생각한다하더라도
우리 안에 영혼이 살아 숨쉼을 믿는다면..
제가 미처 드리지 못한 말씀.. 어디선가 고인이 들었을거라 저는 저 자신을 위로하며
빈소를 나섰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