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속에 엄청 막히는 길에 짜증내하며 공연장에 도착했습니다. 거의 연주자 정면의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8열) 이상케도 저의 좌우, 그리고 앞의 서너 자리기 휑하니 비어 있는 것 아닙니까. 참 이상타 생각하면서 시야가 탁트여 좋다 생각했는데, 아뿔싸... 공연을 시작해보니 안 좋은 자리더군요. 기타 바디와 헤드에 반사된 조명빛이 날아오는 자리였습니다. 눈이 어른거려 상당히 신경 쓰이더군요. 흐어... 그럼 다른 분들은 다 이 자리가 그런 자리인 줄 미리 알고 피했다는 얘기? 정말 대단한 고수님들이신 것 같습니다. ^^;;;
저도 막귀인 주제에 연주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할 말이 별로 없긴 합니다만, 그냥 제 개인적인 느낌으론 스카를랏티나 바이스 까지는 너무나도 맑고 깔끔한 바루에코 표 사운드에 오히려 별달리 감흥이 없었습니다. 인간 씨디 플레이어다, 눈만 감으면 씨디 듣는 거다, 뭐 이런 얘기들을 하잖습니까. 하지만 그라나도스는 훨씬 좋았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 두번째 비야네스카는 아주 멋졌습니다. (흠... 그냥 귀에 익은 곡이라 그런가... --;;;) 저는 바루에코가 연주한 스페니쉬 레파토리를 좋아하거든요. 특히 아스투리아스... 근데, 아... 분위기 조~~타하고 느끼고 있는 순간 세번째 곡 전에 한정없이 튜닝을 길게 하는 바람에 업되는 분위기에 약간 찬물을 끼얹는 듯한... (바루에코 = 아이스맨?)
월튼의 바가텔은 얼마전 러셀의 연주를 들은 기억이 아직도 있고 오모씨님이 올려주신 알바로 삐에리의 공격적인 연주의 강한 인상도 남아 있어 비교가 되어 상당히 흥미로왔는데, 역시 날카롭게 찌르듯 하는 공격적인 연주가 어울리는 곡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루에코의 연주는 역시 크리스탈 클리어한 연주인데 강렬하다는 인상을 받기는 좀...
칙 코리아의 곡은 과연 어떤 곡인가 매우 궁금했습니다. 그가 이끌던 퓨전 재즈 밴드 Return to Forever의 'Romantic Warrior' 와 같은 명반을 생각하면 그의 음악이 기타로 어떻게 옮겨졌을까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아... 하지만 솔직히 쬐끔 졸렸슴다. --;;;;;;
그러나, 그 모든 졸림과 불평불만은 마지막 레파토리인 삐아졸라에서 단숨에 날아갔습니다.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바루에코가 아무리 맹숭맹숭하게 연주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부인할 수 없는 놀라운 매력이 드러나는 순간은 결국 오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의 매력이 자루에 든 송곳처럼 삐어져 나오는 순간은, 터질 듯한 정열이 고도의 절제와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는 순간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삐아졸라의 두 곡은 불타오르는 얼음장, 또는 서늘하도록 투명한 정열(동그란 네모?)이라는 모순된 아름다움에 넋을 잃게 만드는 연주였다고 봅니다. 바루에코가 아니라면 도대체 누가 저렇게 연주할 수 있을지요!
제가 과문하여 앵콜곡 두곡은 뭐라하는지 알아듣지를 못했습니다. 다른 고수님들께서 가르쳐 주실 걸로 믿고요... 하여튼 특히나 마지막 곡으로 인하여 만족스런 연주회였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