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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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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46.3.42) 조회 수 3401 댓글 8
어제 헬프갓 연주회를 계기로 ... 예전에 좀 몰입했었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음악이란 무엇일까요? 사람들에 따라 음악을 정의하는 방법이 무척 다양할 수는 있겠으나 ...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리"라고 하는 개념에 충실해서 음악을 정의하려고 할 것입니다. 음악 ... 혹은 "좋은 음악"이라 생각되는 "소리" 말입니다. 하지만 음악은 과연 "소리", 혹은 "음악이라 불릴만한 소리"일까요?

철학자들이 흔히 thought experiment라 부르는 것을 좀 해 보기로 하죠. 일단 "소리"는 "파동"에 대한 심리학적 해석의 결과입니다. 즉 물리적으로 "파동"의 형태로 존재하는 "에너지"를 우리 인간이 "소리"로 해석하는 것이죠.

첫번째 thought experiment. 가령 인간만큼 지적인 외계 생물체가 지구를 찾아왔는데 ... 이 생물체의 감각 기관은 매우 특별해서 물리적인 "파동" 혹은 음파를 피부에 느껴지는 진동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생물체에게 베토벤의 소나타는 "소리"로 들리지 않고, 몸의 떨림으로 느껴집니다. 이 생물체 앞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한다면 ... 그 연주자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또 이 생물체는 "음악"을 듣고 있는 것일까요?

두번째 thought experiment. 수학자들이 말하는 "완전한 원"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듯이 ... 물리학에서 말하는 "완전한 진공"은 실험실에서도 만들 수 없다고 하지만 ... 이번에는 "완전한 진공의 실험실"을 만들어 그 안에 피아노 한 대, 피아니스트, 그리고 듣는 사람 한 명을 집어 넣어 보지요. 이제 피아니스트는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합니다. 하지만, 완전한 진공의 실험실 안에서는 이 피아니스트의 에너지가 그냥 에너지로만 존재합니다. 파동조차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당연히 실험실 안의 감상자는 아무 것도 들을 수 없습니다. 이 실험실 안에는 과연 음악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이 피아니스트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위의 두 가지 thought experiments에 대해 ... 이런 경우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면 음악을 소리로 정의하려는 일반적인 시도와 잘 맞아떨어지지만 ... (1) 어쩐지 음악에 대한 우리의 직관과 조금 맞지 않는 느낌이 들고, (2) 그렇다면 진공 공간에서 피아노를 치는 행위를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라는 새로운 문제 등이 제기될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결코 쉽지 않은 도전으로 저는 개인적으로 그리 좋은 선택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가설로 ... 위의 thought experiments의 경우에도 "여전히 음악은 존재한다"라고 말한다면 위 (1), (2) 등의 문제는 안 일어나지만 ... 반대로 음악을 소리로 정의하려는 일반적인 생각을 대폭 수정해야할 필요가 대두됩니다. 이것 역시 쉬운 문제는 아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이것이 좀 더 바람직한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두 번째 가설에 의하면 ... 그리고 제 생각으로는 ... 음악의 본질은 "그냥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를 쇼펜하우어는 "맹목적인 삶에의 의지"라 부를테고 ... 수님은 기쁨, 슬픔, 환희, 절망 등을 모두 포함하는 "감성"이라 부를 것 같고 ... 또 어떤 이들은 "상상력"이라 부를 것도 같은데 ... 어찌 되었건 그것은 에너지입니다. 이 에너지가 공기와 만나 파동을 만들어내고 ... 그 파동이 인간의 머리 속에서 소리로 해석되는 것은 ... 그런 에너지가 표현되는 한 가지 보편적인 방법일 뿐이지 ... 파동이나 소리가 음악의 본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음악의 본질은 그냥 에너지, 의지, 감성, 상상력 같은 것이죠. 청각을 완전히 상실한 음악가가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할 수 있는 것도 이런 에너지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 이 사람 염세주의 만큼이나 탁월한 미학 이론으로 유명합니다 -- "음악을 의지의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근원적인 형태"로 간주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충만한 에너지, 감성, 의지, 상상력을 갖는 것과 ... 그런 에너지를 파동과 소리의 형태로 표현하는 뛰어난 기량을 갖는 것은 ... 성공적인 음악가에게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두 개가 반드시 함께 발전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리 에너지, 상상력이 뛰어나도 ... 그 다양함을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수도 있고, 대단히 뛰어난 기량으로 풍부한 표현력을 갖는 것 같아도 막상 에너지나 상상력은 뒤질 수도 있는 것이고 ... . 어제 헬프갓의 연주에는 에너지, 감성, 상상력의 홍수를 표현하는 방법이 무척 빈약했다는 아쉬움이 좀 남습니다.

음악적 감동은 ... 파동과 소리의 "표현"에서 얻는 것이 보통이지만 ... 때로 소리로 들리지 않는 에너지, 감성, 상상력에서도 찾아옵니다.

저는 며칠 전 짧은 글에서 "패러다임의 변화"를 주도하는 음악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했는데 ... 패러다임의 변화는 결국 음악을 통해 표현하려는 바가 분명하고 강렬한 ...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 자신의 상상력을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찾을 때 일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튼 ... 음악의 본질은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인 것 같습니다.

- JS

PS> 헬프갓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3 번 협주곡 파일이 있는데 ... 악장별로 15 메가 쯤 됩니다. 이 정도 싸이즈 이곳에 안 올라가겠죠?



Comment '8'
  • 잔수 2004.10.24 15:35 (*.101.245.249)
    이론으로 풀어내는건 항상 골때린다
    뭔얘긴지를 모르겄다
  • 잔수 2004.10.24 15:37 (*.101.245.249)
    난 그냥 한다. 기타치거나 노래하는건 땡전한푼 안들기 때문에
  • 2004.10.24 18:51 (*.80.15.16)
    언어............소리나 음성이 아니고 그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
    음악............소리나 악보이 아니고 그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
    미술............색이나 화보가 아니고 그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


    우리가 미술작품을 살때는 그 의미를 위해 사야 그럴듯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집을 살때도 그렇고.............

    우리앞에 놓은 무수한 모래알과 돌멩이들도 뜻하는바가있고,
    불벌레와 잠자리도 뜻하는바가 있고,
    다만 우덜이 눈치채지 못할뿐이 아닐까요?

    오늘밤은 그대와 의미의 의미에 대해 노나리라~
  • 아이모레스 2004.10.24 20:38 (*.158.96.122)
    사고의 전환!!!
    고정관념은 잠시 밀쳐두고 생각하기...
    그럼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 niceplace 2004.10.24 23:03 (*.167.8.106)
    ----------음악의 본질은 "소리"가 아니라 "그 소리를 만들어 내려는 의지"------

    이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고요......

    저는 누구에게 들려주기위해서 기타를 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몸에 기운이 어느 정도 차면 기타를 치고 싶어져요.... 피곤하고 기운 없을 때는 전혀 현을 퉁기고 싶은

    욕구가 안생기고요.

    저는 기타의 나이롱현 (스틸현 제외) 을 퉁길때 그리고 그 줄들을 제 손가락이 제대로 울릴때 (음악이전의

    하나 하나의 음들....)

    무쟈게 강한 희열을 맛보아요.
  • verve 2004.10.25 10:55 (*.218.5.74)
    와 좋은 글이네요. 홀랜드 오퍼스라는 영화를 보면 청각장애를 가진 아들에게 음악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애쓰는 장면들이 나옵니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후 피아노의 다리를 모두 자르고 최대한 바닥에 엎드려서 그 진동을 느끼면서 작곡을 했다고 하죠. 아무것도 무식한 근거없는 말이지만 감동을 느끼는데 있어서 감각기관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에 서점에서 이런 저런 책들을 보다가 제 시선을 사로잡는 제목의 책을 보았습니다.

    '음악은 왜 우리를 사로잡는가'

    로베르 주르뎅이라는 사람이 썼고 번역자는 두명인데 한분은 생물학자이고 한분은 음대교수인 부부입니다. 결혼 20주년을 기념하여 번역했다고 하더군요.(참 대단한 결혼기념이벤트아닌가요? 원래는 이런 주제로 책을 직접 집필하려고 했다는군요.) 한국음악지각학회(명칭이 확실하지 않습니다)라는 곳에서 발행한 책도 있었는데 음악미학에 관련된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소리의 파장을 분석해놨더군요.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파형이 어떻게 다른지... 등등.. 이런 분석적인 연구는 관점에 따라서 거부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고 예술의 고고성을 해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구성하는 개개의 요소를 분석한다고 해서 우리가 감동을 느끼는 이유를 알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과학자들은 세계를 이루는 입자들이 무엇인지 계속해서 쪼개고 또 쪼개고 있지만 그것들을 파악한다고 해서 자연의 섭리가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회화적인 심상을 떠올릴 수도 있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이들 예술은 서로 맞닿아있는 것 같군요. 보통 음악과 미술 문학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만 과학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자연의 섭리를 공부하면서 대칭성을 발견할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우주의 운행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법칙을 발견할 때 그것은 과학적 성과를 넘어서 아름다움으로 여겨집니다.

    인간의 정신은 참 위대하고 신비롭습니다...

    아.. 그런데 여름에 아이,로봇이라는 영화가 개봉했었죠. 거기에 감정을 가진 로봇이 자기가 꾼 꿈을 그림으로 그려주는데 잘 그리더군요. 그 그림은 예술일까요, 아닐까요? 이런 대사들도 나오죠. 너 같은 깡통이 음악을 느낄 수 있냐?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모짜르트 베토벤같은 음악을 만들 수 있어? 이에 로봇이 반문하죠. 너는 만들 수 있어?

    어쩌면 예술을 영위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두서없는 헛소리였습니다~
  • verve팬 2004.10.25 11:50 (*.105.99.156)
    자주 글좀 올려주세여.
  • 소리로 2004.10.25 11:59 (*.250.245.170)
    들을 수 없다면 아이들에게 음악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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