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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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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
(*.101.33.156) 조회 수 7079 댓글 4

게으름 때문에 연주회 후기 같은 것 안 쓰는 편인데 ... 어쩐지 오늘 헬프갓 연주회 후기는 비록 기타 연주회는 아니었지만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네, 오늘 영화 <샤인>의 실제 주인공인 David Helfgott의 연주회를 다녀왔습니다. 삼성동 코엑스 오디토리엄에서 열렸고, 아주 큰 연주회장은 아니었지만 ... 전석이 가득 찼습니다.

헬프갓은 ... 연주 기량이나 곡의 해석만 놓고 본다면 분명 대가나 거장은 아니었습니다. 영화 <샤인>을 통해 국제적인 유명세를 얻는데는 성공했겠지만 ... 가령 호로비츠, 루빈슈타인, 굴드, 아쉬케나지, 부닌, 폴리니, 켐프, 포코렐리치 등등등의 소위 정통파 거장들과 견줄만한 연주는 절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거장이라도 "실수"는 있게 마련이지만 ... 헬프갓의 실수는 어쩐지 기량의 부족에서 오는 실수처럼 느껴졌습니다. (혹은 오랜 병고로 절정의 기량을 오래 전에 잃었을 가능성이 더 크겠지요.) 빠른 패시지에서의 음의 뭉게짐이나 중요한 음표를 너무 자주 생략하는 문제 등은 귀에 많이 거슬렸습니다.

곡의 해석에 있어서도 ... 프레이즈를 만들어 나가기는 하는데 ... 프레이즈와 프레이즈의 연결 등이 자꾸 끊어져서 곡 전체가 균형있는 음악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편이었고. 또 리듬이나 박자가 일관성을 상실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원래 대가는 음색으로 말하는 법인데 ... 헬프갓의 터치는 무수히 많은 음색으로 듣는이를 즐겁게 하는 부닌과 같은 섬세함이 없었습니다.

영화 <샤인>을 통해 어쩐지 헬프갓의 연주가 무척 강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갔지만 ... 그의 연주는 강하기 보다는 무척 소극적이고 조용했습니다.

음악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 우리나라 대학교 피아노과 졸업 연주회장의 연주보다 완성도가 더 떨어질 수도 있는 그런 음악회였습니다. 헬프갓 ... 오늘 연주회장에서 제가 바라본 헬프갓은 결코 대가나 거장 혹은 테크니션이 아니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제가 헬프갓의 연주회에 크게 실망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는데 ... 실은 그 반대였답니다. 오늘 헬프갓의 연주회는 ... 적어도 저에게는 커다란 감동의 연속이었고, "음악"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거든요.

오늘 헬프갓의 연주는 아름다왔습니다. 서커스단 광대들이나 입을 법한 번쩍번쩍 빛나는 파란 셔츠에 촌스러운 타이 차림으로 히쭉히쭉 웃으며 껑충껑충 뛰면서 무대에 등장한 헬프갓은 엉덩이와 허리 팔꿈치 무릎을 모두 비대칭적으로 흔들면서 ... 여전히 히쭉히쭉 웃으며 무대를 향해 인사를 합니다. 박수 소리가 끝나기도 전에 피아노 의자에 껑충 뛰어 올라 연주를 하고 ... 연주 중에도 연신 관객들을 쳐다보며 히쭉 거립니다. 연주 중에는 연주회장 어디서나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흥얼거리고 ... .

2 부 순서까지 끝난 뒤에는 엉덩이를 무대 쪽으로 삐쭉 내민 상태로 머리만 출입구 쪽으로 집어 넣어 (아마도 그의 아내/매니저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도"를 받습니다. 그의 매니저가 앵콜 곡을 치라 그러면 다시 껑충껑충 뛰어 나와 신이 나서 앵콜 곡을 치고 -- 쇼팽의 폴로네이즈를 포함해서 3 곡 쳤음 -- 나중에는 손으로 입맞춤을 보내라는 지시를 받았는지 또 히쭉히쭉 웃으며 손으로 입맞춤을 보내고 ... .

데이비드 헬프갓 ... 그의 행동은 "어린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아름다왔습니다. 그는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것 같았고, 음악이 있기 때문에 살고 있는 것 같았고, 피아노를 치는 것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고, 자신의 음악을 들으러 수많은 관객들이 모여 박수를 쳐 주는 것에 너무너무 가슴 벅차하며 고마와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연주는 광기가 서린 힘의 연주가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그는 피아노를 통해 "노래"를 부르고 싶어했습니다. 아주 부드럽고,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노래를. 폭풍이 치는 바다에서 격정에 사로잡힌 그런 연주가 아니라 ... 어린 아이들이 꽃밭에서 세상 걱정 모르고 뛰노는 그런 느낌으로 연주를 하는 듯 했습니다.

어떤 정상급 연주자들은 연주를 직업으로 접근하지만 ... 헬프갓은 연주를 즐길만한 유희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정상급 연주자들은 자신의 기량과 탁월한 곡의 해석을 과시하려 하지만, 헬프갓은 그냥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 치는 것을 재미있어 할 뿐이었습니다. 어떤 정상급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를 들으러 모인 수많은 관중들을 당연시 여기겠지만 ... 헬프갓은 수많은 관중들이 모인 것에 너무나 감사하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오늘 ... 음악이 있기에 생명을 이어가는 ... 그래서 음악이 곧 생명인 ... 그래서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는 ... 그런 음악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는 57 세의 "어린아이"였습니다.

사실 ... 정상급 연주자들의 완성도 높은 연주야 흔히 접할 수 있는 것이지만 ... 비록 완성도는 조금 떨어질지라도 이렇게 사랑과 순수함이 넘치는 생명력 있는 연주는 헬프갓이 아니면 쉽게 보여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좋은 연주회였다고 생각합니다.

내일도 공연이 또 있는데 ... 좋은 공연이 되기를 바랍니다.

- JS

PS> 어떤 분들은 헬프갓의 연주가 음악의 완성도 면에서도 정상급이었다고 말하실지 모르겠으나 ... 저는 그저 제 생각을 적은 것이니 딴지 걸지 마시길~.

  
Comment '4'
  • 2004.10.24 05:57 (*.227.72.241)
    에고..궁금증유발...
    파파라치오님만 있었어도 맛뵈기를 할수있었을텐데..........ㅃ쩝...
  • 오모씨 2004.10.24 15:57 (*.117.210.165)
    샹인이라는 영화 매우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몇번 내한 연주 기회를 놓쳤네요~
    후기를 넘 잘 올려주셔서 이제 갈 필요가 없겠어요. 흥!
  • ENIGMA 2004.10.25 01:17 (*.232.107.27)
    영화속 주인공 역할을 한 배우가 명연기를 한 것이군요. 실제 광경이 어떠했는지 올려주신 상세한 후기를 보며 다시 한번 영화를 떠 올립니다.
  • lamires 2023.05.14 23:08 (*.236.130.31)
    동감입니다.피아노를 사랑하는,완성되지 못한 천재라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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