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선생과 동백림사건 (박정희 전대통령 분석 1)

by niceplace posted Apr 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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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 입은 용’.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작곡가 윤이상을 가리켜 한 말이다. 윤이상을 이처럼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 또 있을까.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일컬어졌던 윤이상은 의당 우리의 자랑이어야 했음에도 끝내 조국 땅을 밟지 못한 채 지난 1995년 11월3일 베를린에서 타계했다.

지난 67년 벌어진 동백림 사건은 그의 인생을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몰아넣었다. 유럽의 여러 유학생들이 연루된 이 사건에서 윤이상은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당시 독일 대통령과 카라얀, 슈톡하우젠 등 저명한 음악가들의 석방 요구로 2년 만에 풀려나 독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예술가의 영혼에 견딜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윤이상은 “동백림 사건에 대한 분노를 치유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  이상  퍼온글 ----

매니아 자유게시판에  정치이야기하는 거 싫어하는 분 계서서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이거 음악관련이야기 입니다.  상기 퍼온글의 내용과 같이 요즈음 한국이 낳은 위대한 , 세계적 작곡가라는 윤이상선생을 빨갱이 간첩질했다고  독일에 있는  선생을 잡아다가 사형선고 때렸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신문이나  언론에  나온 기사이외에도
그분에  대한 소식을 접할수 있었는데요.  그분의 생각은  "나의 조국은 남한도 북한도 아닌  조선 전체"
라는 것이었고 당시 북한은 남한 보다 경제력이 더 좋았고  북한에선  해외의  어려운 예술가나
학자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북한에서 지원금을 좀
받아쓴 적도 있었다고 들은 기억도 있는데요.  암튼  독일정부의  압력이 아니었으면 그때 사형당해서
그 이후의 윤이상의 음악은  없었겠지요.
    그 후  부터 국내에서  윤이상의 음악은  빨갱이의 음악으로 분류되 연주가 금지되었고  만약에 연주하게 되면
국가 보안법위반으로 (가장 무서운 법, 뻑하면 사형) 중앙정보부에 끌려가게 되었지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나서 한참 후   당시 우리나라 음악계의 원로  임원식선생께서 해외에서
윤이상의  교향곡을  지휘하고 온 일이 있었는데요.  이미 박통이 죽고 난 이후인데도  당시가  군사정권 때라
문제가 된적도 있었습니다.

얼마전 텔리비젼 보다가  우리가 어릴 때 가짜라고 들어온 (반공도덕시간에) 북한의  김일성이 진짜 항일투쟁을
했었던 인물이라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적이 있었는데요... 박정희가 북한에 위협을 느껴서  중앙정보부장
이후락과 짜고  교과서를 왜곡하고 국민을 속였다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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