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이상 선생과 향토색 짙은 음악
윤이상 선생이 국내에서 교편을 잡고 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옛날이야기이지요.
선생께는 어린 수제자가 하나 있었고, 선생께서는 업무가 끝난 저녁시간이면 늘 제자의 손을 잡고 날마다 가시는 곳이 있었는데, 그곳은 바로 서커스단이었답니다. 어린 제자는 이걸 몹시 지겨워하면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본 걸 또 보고 또 보고, 같은 서커스를 왜 매일 보는지 매우 의아하게 생각 했답니다.
옛날에는 서커스단이 더러 있었던 모양인데, 공연 프로그램에는 서커스 묘기 이외에도 국악 판소리, 창도 많이 포함되어 있고, 아주 옛날 트로트 곡도 많이 섞여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소위 뽕짝(?) 음악의 원조 쯤 되겠지요.
제자는 그 당시에는 이유를 몰랐지만, 선생이 향토색 짙은 우리 음악을 연구할 곳이 서커스단밖에는 없었다는 것을, 세월이 한참 흐른 후에 깨달았답니다. 선생은 서커스단 공연을 매일 보시면서 국악을 연구하고 가요를 연구한 것이지요.
선생이 국내에 계실 때 작곡했던 가곡들도 어김없이 향토색이 물씬 풍깁니다. 선생은 독일로 가신 후에도 서커스단 연구를 밑천으로 한국적인 교향곡을 작곡하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독일에서 우리 옛 음악 자료를 대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선생은 판소리뿐만 아니라 대중가요에서도 향토색을 찾아내서는 서양음계라는 옷을 빌려서 조선의 혼을 노래하였고, 결국은 이를 한 차원 더 승화시킨 것입니다. 선생의 교향곡에는 국악기도 사용되지 않고 국악 음계도 사용되지 않았지만, 누가 들어도 한국 냄새가 진동하는 음악입니다.
나는 바리오스를 번역하면서도 똑 같은 것을 느끼고 알았습니다. 바리오스도 원주민의 무곡에서 토속 리듬과 향토적 향기를 찾으러 무진 애를 썼다는 것을… 또 연주마저도 원래는 남미의 가요를 연주할 때와 같은 냄새가 나도록 배려했다는 것도…
위 이야기는 1960년대에 제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여러 번 들은 이야기입니다. 선생의 제자는 제 음악 선생님이셨고, 그분은 종종 윤이상 선생 이야기를 하곤 했었습니다. 그땐 윤이상 선생이 유명하지도 않았고, 저도 그분이 누군지를 몰랐습니다. 윤 선생은 그 뒤 1970년대의 동백림 사건으로 유명해 졌고, 저 또한 그때 그 분이 누군지 알았습니다.
gml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