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중국보다 기타문화가 많이 앞서있다. 비교하는데 여러가지 지표가 있을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내한하는 외국 연주자의 수와 클래식 기타 콘서트의 빈도만 봐도 한국이 중국보다 많이 앞서있다. 매번 귀국할때마다 한달 평균 두세개씩의 연주회에 가게 되다보니, 필자도 지금껏 꽤 많은 연주회에 가게 된 샘이다.
무라지 카오리의 음반에 대한 인상은 이랬다. 상당한 수준의 테크니션이며, 최소한 낙소스 라우라테시리즈에서 찍어내는 천편일률적인 연주자들 보다는 자기만의 색깔이 있다는것. 로드리고와 바로크 레퍼토리를 즐기지만, 사실은 탱고에 더 잘 어울리는 감성을 가지고 있다는것. 게다가 얼굴까지 예쁜... 그녀가 꾸미는 무대는 과연 어떨까?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의 넓은 무대를, 어떤 카리스마로 메꾸어 줄까? 정말 사진에서 처럼 예쁠까? 이런저런 기대와 궁금증을 품고, 이번 연주회에 가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중국 연주자들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여자 기타리스트를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 양쉐페이를 꼽았었다. 그 압도적인 파워와 카리스마, 그리고 청중에게 음악적 절정감을 맛보여주는 음악성, 예술성.. 아직 본격적으로 음반활동을 시작하지 않아서이지, 양쉐페이는 이미 대가의 반열에 들어서도 손색이 없는 연주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와 자연스레 라이벌관계로 대비되는 동갑내기의 카오리는, 그동안 필자가 볼땐 양쉐페이보다 두세등급정도 아래의..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던건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 연주회 후, 필자는 랭킹 조절을 다시 할수밖에 없었다. 양쉐페이와 카오리, 필자는 이제 우열을 가릴수 없게 되었다.
객석에서 빈자리를 찾을수 없었다. 전에 내한했을때 멋진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리라. 오늘 새삼 느낀거지만, 클래식 기타의 저변이 점점 넓어진다는 느낌, 비단 필자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었을 것이다. 객석에는 여성관객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좀 의외라고 느낀건 카오리양에대한 무례일까?
드디어 카오리상 등장. 샤콘느가 레퍼토리에 있음을 의식한듯, 쥐색 정장차림으로 등장. 남자들 환호.
첫곡은 다니엘 배첼러의 므슈알망 이라는 곡이었다. 처음듣는곡이었지만 낯설지만은 않은느낌. 마침 신동훈님의 도움으로 호르디 사발(jordi saval)의 고음악 레퍼토리에 심취해 있었고, 지하철타고 오면서도 르네상스 음악을 들어서인지,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실수도 없었고, 정갈한 고음악의 분위기를 잘 살리는 연주였는데, 특히 음색의 대비로 대위법적 선율을 표현해 내는게 인상적이었다.
음악도 음악이었지만, 또 그녀의 애기 호세 로마닐료스의 소리 또한 이야기 하지 않을수 없다. 악기 자체의 소리는 호주나 미국산 악기처럼 크진 않았지만, 또렷한 음이 무대 전체를 꽉 채워서 울리는듯한, 마치 음반에서 하울링 효과를 줘서 녹음한듯한 그런 신기한 소리를 들려줬다. 명기는 역시 명기! 로마닐료스는 예쁜 외모(디자인)와 음색으로 안티고니 고니를 비롯한 여성 연주가들의 사랑을 받는 악기이다. 카오리는 그 악기를 어떻게 소리내야 할지 잘 알고 있는듯 했다.
두번째곡은 샤콘느. 대망의 샤콘느. 초인 럿셀도 샤콘느 앞에서 무너지지 않았던가! 청중은 카오리의 샤콘느에 완전히 흡수당한듯 미동도 없이, 기침소리도 없이, 부스럭소리도 없이 집중했다. 필자는 눈을 감았다. 시각적 아름다움에 현혹되지 않기위해.
카오리의 샤콘느에선 일본냄새가 났다. 역시. 강박에선 칼로 "얍~ 얍~"하고 베는듯한 날카로움이 느껴졌고, 깔끔하고 빠른 스케일은 날아갈듯 시원했으며, 아르페지오에선 청중을 만족스럽게 클라이막스로 리드했다. 세네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음악을 방해하진 않았다. 물론, 필자는 그녀의 연주에 바루에코같은 완성도와 갈브레히스같은 깊이를 기대하지 않았기에, 참 만족스럽게 감상했던것 같다. 샤콘느만큼은 직접 들었던 럿셀보다 좋았던것 같다.
윌리엄 왈턴의 다섯개의 바가텔, 현대곡이었지만 생소하지 않아서 집중해서 들을수 있었다. 그 곡과 카오리양의 산뜻한 느낌과는 아주 잘 어울려서, 많은 박수를 쳐 줬던것 같다.
인터미션 후 2부에선 예쁜 분홍색 드레스로 갈아입고, 예쁜 선율의 드뷔시로 문을 열었다. 평범한 연주였지만, 이곳저곳에서 연구하고 공부한 흔적이 많이 보였다. 특히 자유롭게 움직이는 오른팔과 그에따른 음색표정의 변화.. 인상적이었다.
로드리고의 판당고와 자파테아도.앵콜곡을 제외한 전 레퍼토리를 통틀어 가장 폭발적인 박수를 받은 곡이었다. 특히 자파테아도에서 막힘없이 유려한 테크닉은 정말 볼만했다. 그러나... 이건 어쩔수 없다. 필자의 귀는 이미 바루에코의 연주에 너무 익숙해 져서, 박자를 너무 흘리는듯한 느낌... 춤곡답지 않은, 일부러 빠르게 치려고만 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뒤에 이어진 토루 다케미츠와 레오 브라워의 현대곡. 솔직히, 못알아 듣겟더라. 딴생각했다. ㅡ.ㅡ;
앵콜곡은 탱고엔스카이와 카바티나 였는데 아주 잘 쳤다. 재밌는것은, 카오리도 이제 무대매너에서 경륜이 묻어 나오는것 같았다. 약올리는듯 살짝살짝 들어갔다 나오는.. 커튼콜을 이끌어내는 그런 기교.. 1급 연주자들에겐 필요한 무대매너이기도 하지만, 여튼 재미 있었다. 들어갈때마다 터지는 아쉬운 박수, 생긋 웃으며 나올때마다 점점 커지는 우리 남성동지들의 늑대울음소리.... ^^
결론적으로 카오리 콘서트는, 청중들이 부담없이 음악에 몰입하게 해주는, 아주 성공적인 연주회 였다. 안오신분들 마구 후회 하셔도 좋다.
마치고 향이(기타)에 사인을 받았는데, 이제 그녀의 뒷판에는 페페로메로, 데이빗럿셀, 카오리, 장대건의 사인이 모였다. 이제 10월달엔 존윌리엄스의 사인까지 받아야쥐....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