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의 모든 “딴따라”에게 !!

by 딴따라 posted May 07,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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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딴딴라”라는 말의 어원, 유래 같은 게 틀림없이 있을텐데 과문한 탓에 들어본 바가 없어서 유감이지만 너무 재밌는 용어이고 연예계와 연예인을 정말 절묘하게 연상시키는 딱 들어맞는 단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의성어 같기도 하고 의태어 같기도한 순수한 우리말로 흥미만점의 용어인데 아주 오래된 고어는 아닐것이고 아마 근세의 어느 싯점에서 민중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생기고 굳어졌을 것이다.「딴따라[명사] ‘연예인’을 얕잡아 이르는 말」, 「연예(演藝)[명사]  대중적인 연극·노래·춤·희극·만담·마술 따위의 예능, 또는 관중 앞에서그런 예능을 공연하는 일」이라는 것이 국어 사전에 나와있는 뜻 풀이인데 두 뜻을 종합하면 `대중 예술과 대중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을 낮추어 부르는 말` 쯤으로 용어 정리가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벌써 반세기 이전의 고전적 의미로 퇴화한 뜻으로 여겨지며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런 사전적 의미도 이제는 바꿔져야 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 세상에 누가 감히 대중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낮추어 볼 수가 있을까? 그래서  요즘 이 말(“딴따라”)은 거의 들을 수가 없고, 대신 `스타`라는 말로 이들을 표현하는데 비록 외래어지만 대중 연예인을 가장 적절하게 드러내는 용어가 아닌 듯 싶다. 오늘날의 대중 연예인 그들은 대중적 영웅,  곧 `스타`인 것이다. 닿을 수도 없는 저 높은 하늘에서 빛나는 `별`인 것이다. 그들은 우리사회에서 이미 또 하나의 가장 매력적인 상류 사회, 현대적 nobility로 등장했던 것이다. 그들은 문화적 권력은 물론 특히 한국사회에서 지난 번 대선에서도 볼 수 있듯이 최고 권력을 만드는 데도 일정 부분의 지분을 행사하는 등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상당한 현실적, 실제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한 나라 문화를 총괄하는 문화부의 수장인 장관직에 순수 예술인이 등용 된적이 그 언제였나? 요즈음은 후보로 거명조차 되지 않은지 이미 한세월이 지났고 줄줄이 “딴따라”들의 차지가 아닌가? 이제 누가 이들을  감히 “딴따라”라고 낮추어 부를 수 있는가?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딴따라”들이 있다. 소위 야간 업소로 통칭되는 `밤무대` 종사자들이 그들인데, 이 경우의 “딴따라”는 아직도 전통적 의미, 즉 사전적 의미대로 비하하는 뜻의 “딴따라”인 것이다.

  그런데 대중 예술의 본분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 물음으로 돌아가 본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진정한 대중 예술인이 누구인가를 생각케 한다. `대중 예술`, `대중을 위한 예술`, 대중의 범위를 좀 엄격하게 한정시킨다면 서민 대중을 의미하는 것으로 집약된다고 볼 수 있는데 누가 과연 진정한 의미의 `서민 대중을 위한 예술가`인가?

  일 이십년전 쯤 전, 우리(서민 대중)는 호주머니를 터는 약간의 출혈만으로도 작고하신 이주일님 등 유명 연예인을 쉽게 만날 수 있었던 시절이 있었고 그런 일이 즐거움과, 추억과, 작은 자랑꺼리로 충분한 삶의 가치가 되었던 것이다. 상당한 무게로 다가오는 삶의 고단함과 우울, 스트레스 쯤은 이렇게 풀어 버리는 아주 좋은 방법을 우리(서민 대중)는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서민 대중)가 이런 정도의 특급 연예인을 무슨 수로 서로의 살같을 맞댈만한 지근 거리에서 만날 수 있겠는가? 그들은 손 닿을 수 없는, 그래서 우리가 고개를 쳐들고 바라만 봐야 하는 저 높은 하늘의 `스타`일 뿐, 사실상 우리의 일상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그져 단순한 `별`일 뿐이다. 그져 그들이 들려주는 나와는 별 상관 없는 얘기들을 화면을 통해 간접화법으로 들을 뿐이다. 이들은 이미  우리(서민 대중)의 곁을 떠나 진정한 의미의 `서민 대중을 위한 예술가`의 위치가 아닌 저 높은 곳으로 옮겨가버린 것이다. 기껏 가까이라고 해봤자 `초원의 집`등 우리(서민 대중)들의 안락한 휴식 공간이 아닌 콘사트라는 낯선 이름의 휘황찬란한 무대에서 그들의 춤과 노래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이다. 과연 이들에게서 우리(서민 대중)는 과연 무슨 진정한 위로를 기대할 수 있는가? 그러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대중을 향한 교태를 멈추지 않는데 그것이 과연 서민 대중에 대한 위로의 몸짓인가? 천민 자본 주의에서의 경제적 수탈을 위함인가? 그런데도 대중은 끊임없이 그들의 교묘한 꾐에  현혹되고 있 는 것이다.

  이 글은  ' 음악의 3요소는'이란 글을 보고 쓴 글이다. 이 글에서 "딴따라"에 대한 폄하의 정도가 너무 심할 뿐 아니라 편견과 오만이 너무 크다고  여겨져 이를 지적하는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 음악인들은 누구나 `딴따라... , 딴따라... 소리내며 살아 갈 수 밖에 없는 "딴따라" 인생이다. 클래식과 대중 음악의 거리가 얼마일까? 아마 오십보, 백보도 채 않되는 지척일 것이다. 더구나 요즈음 크로스 오버니 퓨전이니 등 전에 없던 음악 장르도 활발하게 만들어지는 세상에 이를 애써 구별하고 차별하는 것이 좀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의 3요소는'이란 글에서 `나는 밤무대 딴따라가 좋더람... `라는 귀절이 있는 것을 보면 이 글을 쓴 이가 말하는 "딴따라"의 범위와 규정이 확실한 듯 하므로 나는 이제부터 이 글에서 보이는  "딴따라"에 관한 부당한 편견이 시정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또한 이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하려 한다.
  
  나는 감히 말한다. 그래도 이 시대에 아직까지 우리(서민 대중)곁에 남아 우리의 애환을 조금이라도 달래줄 고전적 의미의  `서민 대중을 위한 대중 예술가`는 단연 “딴딴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들이야 말로 이시대 서민 대중의 진솔한 벗이라고. 그 옛날 처럼  호주머니를 터는 야간의 출혈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즐거워 질 수 있는 이 시대 마지막 남은 낭만이라고. 미사리 등지에서 소위 “딴딴라”라고 일컬어지는 그들의 노래와 연주를 들으면서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고, 그들 곁에서 우리는 충분한 위로를 받는다. 요즘은 사라져 이제 그 흔적 조차 희미해져버린 삐에로, 우리를 진정 웃기고 울렸던 삐에로, 우리들의 사랑스런 삐에로가 바로 그들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  “딴따라”들은 우리(서민 대중)의 아낌과 애정을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 왜, 무슨 까닭에 이들이 천대받고 조롱거리가 되어야 하나? 누가 무슨 권리로 이들을 드러내놓고 멸시 할 수 있나? 마지막 남은 우리들의 삐에로를 누가 학대하므로 우리에게서 떼어 놓으려는 간교한 계책을 부리는가?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난 후의 텅빈 거리, 삶의 삭막함은 생각하기 조차도 싫다.그들의 대중을 위한 치열한 삶과 대중을 향한 예술 혼을 본다면 누가 감히 그들을 향해

  `나는 밤무대 딴따라가 좋더람... 맥주병이 날아 올지라도 들어 주면 그저 고마와서 땀 흘리는... ` 이라든가
  `조선의 어린 학생 키우는 선생 딴따라님들......세상을 다 가지셔요...예수도 다 갖지 못한 세상을.... ` 이라든가
  `내가 지금까지 씹다 뱉은 딴따라가 수천명은 될텐데 나는 지금까지 아무 죄책감도 느껴 본 적 없고 잘 살고 있다. 솔직히 씹는 재미도 음악감상 이유중에 하나라고나 할까???` 라고  대놓고 비하 할 수 있는가?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딴따라”,  그들의 음악이 클래식 보다 예술성이 좀 떨어진다해도 그것은 그들의 목적이 순수 음악과 좀 다른데서 오는 차이에 다름이 아니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자신들의 삶 전부를 거는 치열함에는 웬만한 클래식 음악가들을 앞선다고 할 수있을 것이다.
  더구나 음악적 개념 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아 `음악의 3요소는 창작, 연주, 감상이다.`라는 등 음악적 용어까지 잘못 인식하고 있는 아마츄어 음악인, 음악을 씹는 재미로 감상하는 정도의 아마 음악인에게 이런 정도로 “딴딴라”를 멸시할 권리가 있는 것일까? 비록 얕잡아 봄의 의미가 있다고 할지라도 “딴따라” 그들이야 말로 진짜의 프로들인데 음악이 취미 정도에 불과한 아마 음악인, 그에게 음악은 생활의 작은 한 부분일 뿐이데 자신이 클래식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음악이 사실상 그들의 전부일 수 밖에 없는 “딴따라”에게 취할 바른 태도일까? 그들 “딴따라”에게서 음악을 부정한다는 것은 곧 그들의 전부를 부정하는 것인데, 이 모두가 한 아마츄어 음악인이 주장대로 `신성불가침의 구역`인 그의 `음악감상의 세상`을 수호하기 위한 제물이 되어야만 한다면 그건 분명한 비극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저는 여러분들이 브라질의 어느 천재 음악인을 모른다고 해서 비웃을 생각 없습니다.` 이 아마 음악인이 말하는 `천재 음악인`이 누구일까? 그러나 빌라로보스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비웃음의 대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딴따라”에 대한 무시가 이쯤되면 정도를 넘은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음악감상의 세상은 신성불가침의 구역이다.` 누가 거기 쳐들어 가기라도 했나?
  
  인간의 최고 덕목인 예술 작품을 재활용품 정도로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미숙한 아마츄어가 `말러와 스트라빈스키를 씹고 또 씹고 끝내는 뱉어서 버리고 말았`다는데 지하에서 말러와 스트라빈스키가 이것을 안다면 울까? 아니면 웃을까? 과연 이 예술가(?)가 후기 낭만의 마지막 대가인 말러와 20세기 최대의 천재음악가인 스트라빈스키를 제대로 이해하고 그런 고약한 짓을 한 것으로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고 그져 자신에게 이해가 되지 않음이 그 이유의 전부였을 텐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돼지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케 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예술 작품을 소고기 정도로 취급하는 정도의 잘못되도 한참 잘못된 인식을 가진 미숙한 아마인의 교만이 이 정도면 하늘에 닿았는데 감히 이를 누가 말리나? 그냥 내버려 둘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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