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은 클래식 기타를 잡은 지 1주일이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그 다음엔 눈부신 트레몰로로 수놓인 타레가의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다.
국내 음악계에'클래식 기타의 르네상스'가 도래했다. 학원이나 서클에서 어깨 너머로 배우던 아마추어들이 활동하던 시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유럽 등 본고장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연주자들의 활동이 눈부시다.
서울대 음대에서 기타 전공이 신설된 것은 지난 1986년. 그후 평택대.한국예술종합학교.경원대.수원대.서울예고 등에서 차세대 기타리스트들을 배출해오면서 활동무대도 넓어졌다.
대학 서클에서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로망스'를 배웠던 아마추어 출신들이 자녀들에게 피아노.바이올린 대신 클래식 기타를 쥐어주기 시작하면서 어릴 때부터 기타를 배우려는 열기도 뜨겁다. 음악회에서 기타 협주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도 제법 늘었다.
공연과 음반 활동으로 클래식 기타의 열풍을 이끌고 있는 이성우(47.대구대 겸임교수).장승호(39.한국예술종합학교 강사).이병우(37.뮤직도르프 음악감독)씨가 함께 만났다.
이병우씨가 먼저 말문을 텄다. "남들이 대단한 악기라고 생각해 주지 않아 오히려 다행이예요. 소박하고 다정다감한 음색이 기타의 매력이죠."
그러면서 그는 "오랜 친구처럼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어 좋아요. 무릎 위로 올려 놓고 껴안아야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아닙니까. 바이올린과는 달리 연주자의 얼굴은 하나도 가리지 않아요. 가슴에 느껴지는 현의 떨림은 기타만의 매력입니다" 고 말을 이었다.
이병우씨는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하다 뒤늦게 클래식 기타를 전공했다. 뉴에이지.재즈.클래식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애니메이션 '마리 이야기'의 음악으로 호평을 받았으며 내달 중'흡수'라는 타이틀의 5집 앨범을 낸다.
기타 독주곡으로는 첫 앨범이다. 12월말 LG아트센터 제야 음악회에서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연주하며 내년 3월 LG아트센터 독주회에도 초청을 받았다. 기회가 닿는대로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싶단다.
서울예고에서 작곡을 전공하다 기타의 음색에 매료됐던 장승호씨. 그는 "기타처럼 노골적이고 본능적인 악기도 없습니다. 굳이 속내를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죠. 왼손 손가락이 움직이는 모습도 소리에 그대로 남습니다. 플루트나 성악.바이올린과의 듀오도 무척 아름답죠"라며 기타 예찬론을 편다.
바이올리니스트 양성식.이경선과의 듀오 앨범으로 좋은 반응을 얻었고 오는 29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의 크로스오버 콘서트에 출연할 예정이다.
"기타리스트 치고 말끔한 사람 못 봤습니다.'기타 하나 동전 한닢'들고 떠돌아 다니는 음유시인의 낭만적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일까요. 언제 어디든 쉽게 달려갈 수 있어 기동성이 뛰어나죠."
이렇게 말하는 이성우씨는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다 89년 늦깎이로 독일 유학을 떠났다. 최근 선보인 독집 앨범'프라이빗 포엠'(IDC)에는 프랑시 클레이냥의 '로망스 제1번''인형의 꿈''녹턴''사랑의 왈츠', 카를로 도메니코니의 '12개의 전주곡', 망고레의'인형의 꿈' 등 기타리스트 출신의 근.현대 작곡가들이 쓴 서정적인 작품들이다. 좀 낯선 작품들이지만 처음 들어도 금방 친숙하게 다가온다.
다음달 23일엔 경기도 남양주시 두물워크샵에서 열리는 '빌라 로보스 축제'에 출연할 예정. 이어 12월엔 베를린 국립음대 동창생인 올리버 파르타크나이니와 듀오로 한국.일본 순회공연을 떠난다.
아마추와 프로페셔널의 경계가 불분명하다는 것은 기타 음악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한국기타협회 홈페이지(www.koreanguitar.com)에선 국내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기타 공연을 홍보해 준다.
중간 휴식시간 로비에선 전문가 못지 않게 신랄한 비평이 난무할 정도다. 외국 유명 연주자들의 클래식 기타 공연은 절대 손해보지 않는다는 게 공연기획자들 사이에 나도는 정설이다.
이들 기타리스트의 한결같은 소망은 마이크 없이도 클래식 기타의 울림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4백석 내외의 실내악 전용홀에서 관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만나는 것이다.
글=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사진=주기중 기자<lull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