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성균관대 연주회...

by 한량의꿈 posted Mar 24,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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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성균관대에서 이성준님의 줄리아니 협주곡 협연을 보았습니다.

그저 기타 치는 것을 가까이서 보려는 욕심에 앞줄에 앉았는데, 결국은 오히려 기타소릴 제대로 못 듣는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균관대 오케스트라는 전공생들이 아닌 순수 아마추어여서, 역시 우리가 음반에서나 듣는 수준의 멋진 화음을 생각하자면 좀 그랬고... 그래도 현악기나 관악기를 나름대로 어릴 적부터 배운, 음악의 혜택(?)을 좀 받으면서 자란 학생들이니 만큼 아마추어로서는 상당한 실력들인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제2바이올린 같은 경우는 영 불안하기도 했지요.

이성준님은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를 했습니다. 1악장에서는 좀 긴장했는지 자잘하게 소리가 안들리는 터치가 좀 있었는데, 3악장으로 갈수록 넘쳐나는 테크닉과 안정된 음악성으로 청중을 압도했습니다. 굳이 꼬투리를 잡자면 몇몇 잔 실수가 보이긴 했으나, 이것은 순전히 프로 기타연주자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사이에 존재하는 확연한 호흡의 부조화 때문에 연주자가 심리적으로 불안한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오케스트라의 템포도 빨랐다 느렸다 불안했는데 그래도 휘말려 이성을 잃는 일 없이 연주를 해 내는 것을 보고 객석에 앉은 제가 오히려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이날 성균관대에 오케스트라를 보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 단원의 친지, 친구, 가족들일 것으로 보이는데, 역시 어제 저녁 이성준님의 연주는 일반 음악애호인들에게 또하나의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합니다. 연주가 끝나고 들어간 뒤에도 열광적인 박수가 계속되어 몇번이나 다시 나와 인사를 해야했을 정도였으니까요. 성준님은 너무나 정중하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답례를 하였고, 앞에서 보고 있는 저는 저러다 들고 있는 악기가 바닥에 부딪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까지 할 정도였지요.

한가지 아쉬웠던 건 역시 기타의 음량문제였습니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수준인데도 꼰뜨레라스조차 다른 소리에 파묻히기 일쑤였습니다. 기타소리만 나는 파트는 역시 단단하게 뻗는 꼰뜨레라스의 위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총주부분에서는 터치가 강한 성준님의 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객석 뒤쪽에서는 오히려 스피커에서 나오는 기타소리가 무척 컸던 모양이던데 상대적으로 앞쪽으로 앉은 사람들에게는 그런 소리를 감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음향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언제나 기타협연 무대에서 느끼는 일이지만, 기타리스트는 훌륭한 매니저 뿐 아니라 탁월한 음향 엔지니어까지 한 조를 이뤄 공연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다가왔습니다. 연주자야 무대에서 연주하는데 골몰해야 하니까, 실제 객석에서 어떻게 조화롭게 소리가 들리는 지를 전문적으로 관리하고 조정하는 "귀 밝은" 사람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내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기타가 바이올린 만큼이나 음량에서 달리지 않는다면 이런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도 있겠지요. 누군가가 정말 마음먹고 마이크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히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수 있는 음량을 가진 악기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면 우리라도 노벨상 같은거 하나 만들어서 줘야겠다는 황당(?)한 생각까지 했습니다.

얘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어제 밤의 연주는 세계적인 연주가로 도약하고 있는 이성준님의 기량이 이런저런 주변 여건의 부족으로 객석에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연주가의 뛰어난 실력을 요구하기만 했지 제대로 그들의 역량이 발휘되도록 북돋우는 일에는 우리가 너무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을 촉구하는 계기였습니다.

우리나라 기타계 여건이 어려운 것은 알지만 적어도 성준님 같이 노력하는 우리의 학생들이 더욱 경험을 쌓고 성숙한 연주를 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갈채와 성원을 보내야 하겠습니다. 과연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가는 모두가 함께 고민할 문제로 남겨두겠습니다.

보잘 것 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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