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둔리 지나며
-박호민
그렇군, 모든 길은 관성이었다.
막차도 끊긴 한밤
들판길을 홀로 걸어본 사람은 알지
生은 막다른 골목에서 마침내 돌아나오는 일이었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육신의 무게를 느낄 때
우리는 문득 치욕을 알게 된다.
무엇인가, 세월은 늘 꿈속으로 흐르는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내 욕망의 씁쓸한 그늘은.
그리하여,
길 끝에는 이제 아무것도 기다리지 말아라
그래, 달빛 내리는 시냇가에 쭈구리고 앉아
쓴 담배나 한 대 피우고 갈 일이다.
끝내 무엇도 남아있지 않을 때
우리는 차라리 고요해 질 수 있는 건가
저 찔레꽃 핀 둔덕 너머엔 농가의 불빛
우리네 삶의 등불 같은 그리움도
또한 이렇게 어둠 속에 섰을 때야 비로소 빛나는 걸까
깨끗하다는 것과 더럽다는 것
혹은 아름답다는 것과 추하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우리들 언어의 교활한 속임수다.
그림자 속에는 그림자가 없고
치명적인 것들은 본래부터 이미 거기에 숨어 있었다.
그러므로 사소한 눈물과 상처는 이제 길가에 묻어두고
이 밤을 다시 돌아가자
내게 주어진 저 인간의 時間 속으로.
거기 아직 바람부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어
혓바닥을 지긋이 깨물고
이 순한 슬픔을 넘어 전율처럼 스며드는
한 방울, 믿을 수 없는 환희를 처음으로 꿈꾸면서.
-2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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