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메아리 소리 해맑은
오솔길을 따라
산새들 노래
즐거운 옹달샘녁에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포근한 사랑 엮어갈
그런 집을 지어요
http://www.etoday.co.kr/news/section/newsview.php?idxno=979416
황손이 국민가요 '비둘기집' 을 부른 가수였다는 것은,
그 시대를 같이 산 사람들이나 관심있는 사람들을 알 것이나,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군사정권 시대 미국에서 생활할 때 고생하며 겪었던 이야기는,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방자 (영친왕의 반려자, 비운의 황태자비로 불리는) 여사의 별세로 국내로 귀국하여,
전주대학교(사학과 객원교수)로 활동하였으며, 역사 해설가로 활동중이다.
의친왕의 아들인 우리나라 마지막 황손 이석의 험난한 삶에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석은 지난해 9월 KBS2 '여유만만'에 출연해 "지금은 없어진 창경초등학교 출신이다.
등굣길에 상궁 2명이 따라다녔는데 점심 때는 상궁들이 도시락을 교자상에 차려 들고 왔다.
내가 먹고 상을 물리면 그걸로 교장실에서 파티가 벌어졌다"라며 어린시절 삶을 공개했다.
이석은 그러나 "1960년대 궁에서 쫓겨나면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며 "어머니는
짜장면 가게, 국수가게, 막걸리 장사까지 했다. 그러던 중 월남 전쟁에 참전해 부상을
입은 채 돌아왔는데 충격으로 어머니가 신경성 위암을 선고 받았다. 결국 돌아가셨다"라고 전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26살 때부터 무려 9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다고 고백한 이석은 "동생 4명을
데리고 죽으려고 했다. 약을 사서 술에 타 마시기도 했다. 도봉산 바위에 올라가서 떨어졌는데
눈을 떠보니 나뭇가지에 걸려있더라. 죽을 때가 아니었던 거 같다"라고 고백을 하기도 했다.
이석은 생활고로 가수 생활을 시작해 1970년대 '비둘기집'이라는 노래로 유명세를 탔다.
그는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잔디 깎기, 수영장ㆍ빌딩 청소 등을 하는 등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네티즌들은 "마지막 황손 이석,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얼굴이 이 분 얼굴이라네요",
"마지막 황손 이석, 살면서 참 고독했을 듯", "마지막 황손 이석, 비둘기 집으로 유명하죠",
"마지막 황손 이석,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얼굴이 이석? 와 처음 안 사실이네요",
"마지막 황손 이석. 궁에서 쫓녀나고 고생 많이 하셨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이석의 아버지는 기골이 장대했던 의친왕으로 의친왕은 왕실의 대를 잇기 위해 슬하에 많은
자녀를 뒀다. 의친왕은 62세에 이석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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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지난 일요일에 지인의 자녀 결혼식에서
이 곡을 축하연주로 했네요~
이 석 황손이 항상 이 곡을 결혼축하곡으로 부르셨다고 해서,
저도 그리 해봅니다.
가사내용이나 의미가 좋아서요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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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연주와 뒷예기 정말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