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겨울나기
사람이 사는 곳에서 야생동물을 보기란 쉽지 않다. 비둘기, 고양이, 그리 많지 않은 종류의 벌레들만 간간히 눈에 띌 뿐이다.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죽는 길고양이들에게 추운 겨울은 특히 시련의 계절이다. 고양이는 따뜻한 온기와 먹이 없이 한겨울을 어떻게 보내는 걸까.
생존, 한 줌 온기 찾아 절박한 투쟁
겨울이면 길고양이가 먹을 만한 것은 모두 얼어붙거나 눈에 묻히고 만다. 마실 물이 없어 녀석들은 눈과 얼음을 녹여먹고 꽝꽝 언 음식물 앞에서 군침만 삼킨다. 무엇보다 길고양이를 힘들게 하는 것은 폭설과 한파다. 그렇게 견뎌서 무사히 겨울을 나는 것, 그것만이 길고양이의 절박한 바람이다.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려는 길고양이의 행동은 언제나 눈물겹다. 길고양이는 볕이 잘 드는 양지를 찾아 헤맨다. 운 좋게 볕이 드는 곳을 찾으면 ‘해바라기’를 하는 것으로 추위를 달랜다. 인간의 평균 체온이 36.5℃지만 고양이는38.9℃에 달한다. 사람보다 높은 체온을 유지해야 하는 고양이는 날이 추워지면 필사적으로 볕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을 찾는다. 누군가 내다버린 담요나 이불로 온기를 유지하거나 바닥이 넓은 스티로폼으로 찬 기운을 막는다.
이도저도 구할 수 없는 길고양이는 그저 서로의 몸과 몸을 맞대고 체온을 나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한번은 컨테이너 옆 공터에서 고양이 여섯 마리가 마치 한 덩어리처럼 얽히고설켜서 잤다. 이때 어미고양이는 새끼들을 위해 칼바람을 막고 앉아 있었다. 시골에서는 종종 불을 때고 난 뒤의 아궁이 속에 들어가 추위를 피하는 녀석들도 있다. 당연히 녀석들의 몰골은 재와 그을음으로 시커멓게 변한다. 비록 외모가 꾀죄죄해지기는 해도 길고양이에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남는 게 우선이다.
폭설, 큰 고통 속 때론 낭만도 즐겨
길고양이가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역시 폭설이다. 큰 눈이 내리고 나면 길고양이는 은신처에 틀어박혀 하늘을 원망하는 처지가 된다. 그러나 간혹 엄청난 폭설에도 눈밭 원정을 나서는 고양이가 있다. 너무 배가 고파서다. 겨울이면 길고양이는 먹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먹이로 삼는다. 버린 배추 시래기는 물론이고 얼어붙은 늙은 호박에다 맵고 짠 김치까지. 심지어 고춧가루와 양념이 범벅된 총각무를 아그작아그작 씹어 먹는 고양이도 있다.
아주 드물게 눈을 즐기는 녀석들도 있긴 하다. 지난 겨울에 만난 한 길고양이는 함박눈이 내리자 골목 한가운데로 나와 눈 구경을 하며 심지어 눈 장난까지 쳤다. 녀석은 내리는 눈을 잡아보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신나게 눈밭에서 놀았다. 나와 친분이 가장 두터웠던 ‘봉달이’라는 녀석은 특이하게도 눈밭에서 달리기를 즐기는 게 취미였다. 거의 무릎까지 쌓인 눈밭에서 녀석은 수영을 하듯 눈밭을 내달리곤 했다.
이렇게 한참 눈밭을 달리고 나면 녀석은 어김없이 ‘눈고양이’가 돼 있었다. 녀석은 고양이가 대체로 눈을 싫어한다는 속설을 가볍게 무시했다. 심지어 고양이가 물을 싫어한다는 속설조차 무시해버렸다. 녀석은 툭하면 개울가에 내려와 놀았는데, 주로 개울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너뛰는 점프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가끔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는 경우도 있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녀석이 ‘이왕 이렇게 된 거 걸어가지 뭐’ 하면서 개울을 철벅철벅 걸어오는 거였다.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영역, 먹이에 따라 결정
길고양이는 영역생활을 한다. 그 영역은 유연할 수도 굳건할 수도 있다. 영역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할 수도, 평화롭게 타협할 수도 있다. 그건 길고양이만의 세계이고, 길 위의 법칙이다. 대체로 시골 고양이가 도심 고양이에 비해 훨씬 넓은 영역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모든 시골 고양이가 그런 건 아니다. 시골에서도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나눠주는 곳이나 먹이가 풍부한 공간은 도심과 다름없이 고양이 밀도가 높고 그만큼 영역도 잘게 나뉜다.
그러나 대체로 시골에 비해 도심의 고양이 밀도가 높은 것은 사실이다. 시골에 비해 도시의 인구밀도가 높고 그만큼 사람이 버리는 음식 쓰레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새나 쥐 같은 사냥감은 시골에 많지만, 사냥의 성공 확률은 높지 않다. 특히 새를 사냥하는 고양이의 솜씨는 알려진 바와 달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고양이를 생태계 교란의 주범으로 모는 사람들은 고양이가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에 있는 새를 잡아먹는다고 말한다. 물론 고양이가 새를 잡아먹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인간에 비하면 아주 미미한 수준이다. 고양이는 대개 각자의 정해진 영역 안에서 무리지어 산다. 주변 여건과 성격에 따라 무리의 수가 다르다. 대개 2마리가 무리지어 살고 많게는 11마리까지 무리지어 사는 것을 봤다. 특이하게 무리짓는 걸 싫어해 홀로 사는 고양이도 있다.
고양이,우리도 생태계의 일부
독일의 한 생태학자 연구에 따르면 고양이가 새를 잡아먹는 비율은 100마리 가운데 4~5마리에 불과하다고 한다. 또 고양이는 새를 사냥할 때 늙고 병든 새만을 먹이로 삼는다고 한다. 새를 공격하는 것도 모자라 새둥지를 털어 새알을 훔쳐 먹는 ‘도둑 고양이’는 실상과는 전혀 다르다. 고양이가 새를 잡아먹는 비율은 쥐나 너구리가 새를 잡아먹는 비율보다 훨씬 낮다는 게 여러 학자들의 견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고양이를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몰아붙여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그동안 생태계를 파괴한 가장 큰 원흉이 인간이라는 명백한 책임을 전가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
고양이가 유해한 병균까지 옮긴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고양이는 오히려 병균을 옮기는 쥐를 사냥해 인간에게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 한 마리의 노련한 길고양이가 하루 평균 5~6마리의 쥐를 잡는다는 보고도 있다. 전문가들은 고양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쥐에게 스트레스를 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쥐의 번식을 막는다고 말한다.
길고양이가 쓰레기봉투를 찢거나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건 전 세계가 다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길고양이를 소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일본이나 스페인, 그리스처럼 고양이의 천국에서는 고양이가 사람을 봐도 좀처럼 도망치지 않는다. 사람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 생명 위협하는 가장 무서운 천적
어쩔 수 없이 길고양이는 길 위의 날들을 산다. 싫든 좋든 길고양이의 운명이고 비극이다. 생존을 위해 쓰레기통을 뒤지고, 사람을 피해 다녀야 한다. 길고양이의 수명은 길어야 3년 안팎이다. 집고양이가 평균 15년 안팎을 산다고 하니 엄청난 차이가 있는 셈이다. 길고양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생명을 위협하는 온갖 위험 요소를 안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녀석들을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적은 사람이다. 포획이나 로드킬부터 장난과 화풀이까지, 길고양이는 늘 생명을 위협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다. 길고양이는 생후 3개월 이후에도 살아 있을 확률이 30%에도 못 미친다. 고양이가 사람을 보고 도망치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사람이 무섭고 위협적이며, ‘천적’이기 때문이다.
고양이도 인간과 똑같이 지구의 생명체로 태어나 같은 연대를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는 외계생명체도 마녀의 동물도 아닌 존재로 그저 우리 곁에 살아갈 뿐이다. 잘못이 있다면 하필 전 세계에서 고양이가 가장 천대받는 한국에서 태어났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길고양이는 결코 위협적인 ‘떠돌이 전사’나 음습한 ‘악령의 동물’이 아니다. 불쌍하고 천대받고 멸시당하지만,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우리의 길거리 이웃이다. 지속적으로 손을 내민다면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심장이 뜨겁고 늘 정에 굶주린 약자다.
버려진 애기 길냥이
길가다 추위에 벌벌떠는 길고양이 발견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원문출처: http://eco.dongascience.com/board/article_photo/view/7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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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스페인, 그리스처럼 고양이의 천국에서는 고양이가 사람을 봐도 좀처럼 도망치지 않는다. 사람이 고양이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 기사 내용중 깊이 생각해볼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