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혁명으로 청(淸, 1616~1912)이 멸망한 뒤, 중화민국(中華民國) 정부의 대총통(大總統)이 된 위안스카이[袁世凱, 1859~1916]는
1914년 청사관(清史館)을 설립해 <청사고>의 편찬을 시작했다. <청사고>는 1920년에 초고(初稿)가 완성되었으며, 재정난 등의 어려움을 겪다가
1926년에 교정 작업이 재개되었고, 1927년에 완성되어 1928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1928년 베이징[北京]을 점령한 장제스의 국민정부는 <청사고>가 신해혁명을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청조(淸朝)의 복벽운동(復辟運動)을 옹호하고 있다며
간행본을 모두 몰수하고, 출판 금지 명령을 내렸다. [출처] 청사 | 두산백과
1949년 대만으로 쫒겨간 장제스는 신해혁명 50주년인 1961년 청사고를 수정하여 청사를 발표한다
청사는 본기(本記) 25권 외 志136권, 表 53권, 列傳 315권,보편21권등 총 550권으로 되어있다.
허지만 중국에서는 청사가 정치적 의도에따라 왜곡되었다며 사료적 가치로 인정할수없다고 한다
보통 중국에서는 사마천의 사기 이후로 왕조가 바뀌면 후대왕조가 전대왕조의 역사를 쓰는 풍습이있다 [역대수사] 고도 하는데
한서,신구당서,송사,명사등 24종이있다 명사는 청나라때 1000 명 이상이 100년정도에걸쳐 만든것이다.
문제는 중국 공산당이 국민당이 만든 청사를 인정않는 다는것이다
1965년 주은래 총리는 청사편집위원회를 설립하고 , 청사연구소도 설립하였으나 문화혁명(1966-1976)으로 중단되었다 그러던것이
2003년 공산당 상무위원회가 비준하여 , 12월 청사 국가편찬위원회가 25명 의원으로 정식발족,
인민大 다이와 교수가 주임이되었고 부주임은 동북공정의 중심인 중국사회과학원 마다정학술위원 , 북경대 주청루 교수가 맡았다.
[ 160개 대학의 1600 여명의 교수와 연구진이 참여 ]
올해(2012) 1월 중국공산당 청사영도소조 의 발표에따르면 총 92권 3220만字 로 청사가 발간될 예정이다,
[참고로 사마천의 사기는 약 5천만字, ]
1990년대에 형성된 영토중심의 역사관, 현재 중국영토 내에있는 모든역사는 중국사 ,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민족을 아우를 역사관이 필요한것이다
중국관영 TV는 이들을 중화민족 대가족의 일원이라 부르며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데 열심이다, 자국을 통일적 다민족 국가라한다
손문, 양계초 ,장빙린 등의 민족주의 史관에 영향을받은 이들이
발행될 청사에 조선의 위치를 어떻케 할지도 궁금하다.
[漢 족이란말은 19세기말경 민족주의 혁명가라 할수있는 장빙린이 만주족( 말기 쇠약해진 청나라) 과 구분하기 위하여사용하였다 ]
장빙린은 한족이 회복해야 하는 영토를 다음과 같은 세 곳으로 분류했다. 그의 기준은 한나라 영토였다고 하는데...
(1) 반드시 '회복'해야 하는 '두 군郡' 즉 조선과 베트남 지역,
(2) 한나라의 영토는 아니지만 다음으
로 '회복'해야 할 '일사一司' 미얀마,
(3) 중국의 출입을 그들의 의사에 맡겨 왔던 '세 곳의 황복荒服)' 즉 티베트, 몽고, 신장 위구르
[강희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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