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고려대학교에 유명한 사람이 있었다. 이름 하여 ‘원만이’ 아저씨. 아마도 90학번대에서 00학번대 정도 학생이면 이 원만이 아저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아저씨가 노숙자 옷차림으로 매일같이 정문 앞 지하도에 출근하듯 나와서 한쪽 다리를 삐딱하게 내밀고는 가끔가다 지나가는 학생에게 ‘백 뭔만’을 요구해서이다.
처음에 이 아저씨의 정체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학생들을 감시하는 경찰 프락치다에서부터 시작해서 S대 다니던 사람으로 고시 공부를 하다가 정신이 이상해진 천재다까지 별의별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 사람이 학생들에게 해코지를 하거나 피해를 입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상관하지 않았다. 매일 수없이 많은 학생들이 지나다녔지만 그들은 제 공부만 잘하고 제 할 일만 잘했고 또 고대 관계자도 그 누구하나 이 사람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람이 ‘백 원만’을 요구한 사람은 모두 고시에 패스를 했다며 이 사람이 백 원을 요구하기를 은근히 원하는 고시생도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학생들이 이 원만이 아저씨를 도와주려고 돈을 걷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원만이 아저씨는 이를 거부하고 얼마간 나타나지 않았다.
고대 정문 앞에 이 지하도는 몇 년 전에 메꿔져 횡단보도로 대신해졌고 원만이 아저씨는 다리가 많이 불편해져서 지하도가 없어지기 얼마 전부터 출근(?)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와는 상관없이 학생들은 제 공부 열심히 하고 제 할 일만 잘했다.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 아래층에 한 사람이 이사를 왔다. 이름 하여 ‘존만이’. 이 이름은 내가 지어준 것인데 그 이유는 이 사람이 밤 12시에 위층인 우리 집 벨을 눌러 시끄럽다며 항의를 한 뒤부터이다. 이사 온 지 딱 열흘 만에, 이사 오면서 집수리한다고 근 한 달간을 시끄럽게 공사를 하고 조용해진 지 딱 열흘 만에 생긴 일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애들도 다 커서 숨소리도 제대로 안 나는데, 그것도 밤 12시인데 쿵쿵거리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나중에 사연을 분석해 본즉 그 소리는 사람이 걸을 때 나는 발자국소리였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파트에 몇 십 년을 살았지만 이런 사람은 처음이었다. 이 외에 물 내리는 소리, 텔레비전 소리, 문 닫는 소리, 그 모든 소리가 다 들린다는 것이다. 또 한 번은 아파트에서 무슨 냄새가 난다며 밤 12시에 내가 아는 동대표 집 벨을 눌러 불러내다가는 하수도 뚜껑을 열고 코를 킁킁 대며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이다. 밤 12시에. 그 외에 날이면 날마다 관리사무소에 찾아가 무슨 소리가 난다, 냄새가 난다 하며 항의를 하는지라 알 만한 사람은 다 그와 대면하기를 꺼리고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은행에를 다녔다고 하는데 확인된 바 없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나이가 50밖에 안 된 자가 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하루 종일 집구석에서 틀어박혀 있다가 담배 피울 때만 복도로 나온다. 왜 좋은 방 놔두고 복도에 나와서 담배를 피우는지도 알 수 없지만 이 자 때문에 나는 그동안의 평화로운 가정 분위기가 다 깨지고 말았다. 존만이가 이사를 온 뒤부터 걸음을 걸을 때도 조심해야 했고 변기 물을 내리는 것도 조심해야 했다. 식탁이며 의자며 움직이는 가구는 모두 다리에 소음방지 고무를 끼운 것은 물론이다.
예전에 애들 키울 때 정말 시끄러웠다. 소파를 빼내 굴리고 뒤집어 올라타고, 장롱의 이불 두는 널빤지를 빼내 소파에 걸쳐 미끄럼틀을 만들어 타고, 담요에 애들을 올려놓고 썰매를 끌며 이 방 저 방 휘젓고 다니며 정말 얼마나 시끄럽게 놀았는지 모른다.(^^생각해보니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에 다섯손가락에 드는 순간이었던 거 같다. 애들이 까르르 웃는 소리가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래도 그 전 아랫집 사람은 단 한 번도 인상 찌푸리는 일 없이 서로 인사만 잘하고 살았다. 생각해보니 그분이 얼마나 고마운 분인지 알 만하다.
세상에는 원만이도 있고 존만이도 있는 거 같다. 이해가 안 되지만 그래도 그들의 입장에서 곰곰이 되짚어 보면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거 같고 그 또한 우리 삶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원만이도 존만이도 모두 보고 싶지 않다. 그리고 둘 중에 누가 더 싫으냐고 굳이 물으면 존만이다. 존만이가 더 보기 싫다.
둘 다 음악을 좋아한다. 원만이도 혼자서 뭘 흥얼거리고 존만이도 집에 진공관 엠프로 된 기천만 원대 전축이 있다. 어느날 무슨 음악을 주로 듣냐고 존만이한테 물었다. 존만이가 대답했다, 주로 락을 듣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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