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승복을 입고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곤 한다.
"스님은 어떤 명상을 하세요?"
"하루 중 몇 시간이나 수행을 하시나요?"
미국인들에게 승려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명상하는 수행자'라는 점을 알수 있다.
즉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에 따라 그 사람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가를 결정하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올때면 다른 물음들이 나를 기다리곤 한다.
한국 사람들이 나를 보고 묻는 첫번째 질문은 대부분 같다.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스님의 문중이 어디이고, 원래 어느 절 소속이고, 지금은 어느절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듯 했다.
이런 물음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데 그 사람의 '소속과 지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그 사람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는, 지금 그 사람이 어떤 그룹에 소속되어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올때마다 느끼는건 왜 한국인은 학벌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미국이나 다른 서양에서도 좋은 대학을 나오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우대 해 주고 인정해 준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들이 무슨일을 어떻게 하는가가 훨씬 더 중요해지고, 무슨 대학을 나왔는가는 점점 무의미해진다.
실제 예를 들면 애플의 스피브 잡스같은 경우, 미국 오리건 주 리드대학에 입학하여 한 학기를 공부하다 학교를 그만두었다. 미국 교육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라면 리드 대학이 얼마나 좋은 대학인지 잘 인지하고 있을것이다.
만약 스티브잡스가 미국인이 아니고 한국인이었다면, 학벌이 받쳐주지 않아 그의 계획은 분명히 난항을 겪었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사람의 가치를 그 사람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에 두기보다는, 그가 어떤 그룹에 소속된 사람인지를 두고 가늠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배경과 그 사람이 소속된 그룹에서 그 사람의 정제성을 찾다 보면, 그 사람의 '과거'만을 보고 '현재'를 보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좋은 배경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 들어간 사람, 과거 경력이 좋은 사람만이 성공의 기회를 잡는 악순환만이 지속되고, 수많은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이 좋은 배경, 좋은 과거를 지니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실패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혜민 (책.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