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설쳤다. 한잠도 자지 못하고 겸사겸사 새벽에 광화문에 있는 교회에 나가시는 어머님의 기사를 자청했다. 교회엔 들어가지 않고 뒷문쪽 오래전 우리가 살던 골목앞에 우연하게도 차를 댔다. 이제 겨우 어슴푸레 햇빛이 나오기 시작한 시간이었다.
광화문에는 내수동이라는 동네가 있다....아니 있었다고 해야겠다.
세종문화회관이 첨 생겼을 무렵. 뒷쪽 동네는 대성학원 등의 학원가 사이에
작은 골목이 하나 있었다. 골목어귀에는 조그만 약국이 하나 왼쪽에는 채소등을
파는 가게가 하나. 골목을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들이 줄줄이 늘어선,
그러나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집들이 이어지는 평범한 골목 오른쪽에는
"광주아줌마"라고 불리시던 어머님 친구분이 사시는 한옥이 있었고
한참을 올라가면 좁아지던 골목길에 내가 좋아하던 누나가 사는 작은
단칸방이 있었고 상당히 긴 골목 중간쯤에 그 골목에 유일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가게 주인이었고
이아저씨가 나중에 낸 쌀가게도 그 골목안에 몇 개 안되는 상점중 하나였다.
가게 건너편 작은 골목으로는 이영하(영화배우 또는 탤런트..아무려나..)와
그의 홀어머니가 사는 주홍색 나무대문이 달린 작은 집이 있었고
골목은 기역자로 꺾어 오른쪽으로 아주 귀엽게 생긴 성가대 후배가 살던
집을 지나면 동생친구던 효진이네 집, 다시한번 꺾이면 우리는 그냥
"범표신발 사장네 집"이라 알던 높다란 담을 지나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던 인정많은(또 울집과 싸우기도 많이한..) 분들이 사시던 회색 나무대문을 지나
동생보다도 한살 적지만 거의 맞먹고 살았던 정애네 집옆이 우리집.
오래전 절이었던 빨간 커다란 나무대문의 집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니은자로 꺾인 아랫채와 라일락이 두그루 심겨진
작은 화단, 결코 물이 차지않았던 작은 연못이 있는 마당, 축대위로 네계단을
올라가 있는 윗채. 축대밑, 윗채 마루 밑에 있던 작은 창고. 윗채에 붙어있던
부엌위 작은 다락. 분명 불상을 놓았었을 자리의 네발달린 TV, 엄마의
화장대.
윗채와 아랫채 사이 조그만 통로를 따라 가면 뒷뜰이라고 불렸던 작은 텃밭들이
나오고 거기서 기르던 닭들이랑 저녁때 몇개씩 나오던 달걀.
뒷뜰 위쪽의 앵두나무. 그리고 돌담. 그 담이 경희궁의 담이라는건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돌담뒤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었다. 상당히 높이 올라가 있는 우리집
지붕보다도 더 높이 솟아있는 담만으로 모자라 그위에 더 높이 철조망까지
붙어있는 그 담뒤엔 정말 멋진 고궁이라도 있겠지 싶을 뿐이었다.
우연히 차를 댄 곳. 바로 그 골목의 허리가 잘린, 그래서 그 골목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한 곳이었다. 그런데...그 담이 보였다. 보일리가 없는
그 담의 밑부분까지 일직선으로...문득 생각해 보니...그 어느 곳에도
내 기억속의 동네는 이제 없었다. 그냥 고층아파트를 일요일에도 열심히 짓고있는
현장만 있을 뿐.
경희궁 담밑에는 포크레인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구멍가게 자리에는 현장사무소
가건물이 있고 우리집, 내방이 있던 자리엔 변압기가 하나.
"범표사장네집"도 담이 없어진 채 임시로 얼기설기 짠 판대기들이 대어져 있어
처음으로 그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장사무소 건물은 거의 자기네가 짓는 아파트만큼이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높은 곳에 3층이나 되어 그 옥상에 올라가면 그 경희궁의 담 너머에 뭐가
있을지 보일 듯 했다.......결국 올라가지 못했다.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무언가 풀리지 않는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뜨자, 참 환한 햇살이라고 내뱉던 라디오처럼.."경희궁의 아침"이라 크게 적힌 회색빛 공사장의 간이벽만 눈에 차고...
나는 19살을 한꺼번에...... 먹어버렸다.
광화문에는 내수동이라는 동네가 있다....아니 있었다고 해야겠다.
세종문화회관이 첨 생겼을 무렵. 뒷쪽 동네는 대성학원 등의 학원가 사이에
작은 골목이 하나 있었다. 골목어귀에는 조그만 약국이 하나 왼쪽에는 채소등을
파는 가게가 하나. 골목을 들어서면 오래된 한옥들이 줄줄이 늘어선,
그러나 그다지 고급스럽지 않은 집들이 이어지는 평범한 골목 오른쪽에는
"광주아줌마"라고 불리시던 어머님 친구분이 사시는 한옥이 있었고
한참을 올라가면 좁아지던 골목길에 내가 좋아하던 누나가 사는 작은
단칸방이 있었고 상당히 긴 골목 중간쯤에 그 골목에 유일한 구멍가게가 하나
있었다. 구멍가게 아저씨는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그가게 주인이었고
이아저씨가 나중에 낸 쌀가게도 그 골목안에 몇 개 안되는 상점중 하나였다.
가게 건너편 작은 골목으로는 이영하(영화배우 또는 탤런트..아무려나..)와
그의 홀어머니가 사는 주홍색 나무대문이 달린 작은 집이 있었고
골목은 기역자로 꺾어 오른쪽으로 아주 귀엽게 생긴 성가대 후배가 살던
집을 지나면 동생친구던 효진이네 집, 다시한번 꺾이면 우리는 그냥
"범표신발 사장네 집"이라 알던 높다란 담을 지나 그냥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부르던 인정많은(또 울집과 싸우기도 많이한..) 분들이 사시던 회색 나무대문을 지나
동생보다도 한살 적지만 거의 맞먹고 살았던 정애네 집옆이 우리집.
오래전 절이었던 빨간 커다란 나무대문의 집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니은자로 꺾인 아랫채와 라일락이 두그루 심겨진
작은 화단, 결코 물이 차지않았던 작은 연못이 있는 마당, 축대위로 네계단을
올라가 있는 윗채. 축대밑, 윗채 마루 밑에 있던 작은 창고. 윗채에 붙어있던
부엌위 작은 다락. 분명 불상을 놓았었을 자리의 네발달린 TV, 엄마의
화장대.
윗채와 아랫채 사이 조그만 통로를 따라 가면 뒷뜰이라고 불렸던 작은 텃밭들이
나오고 거기서 기르던 닭들이랑 저녁때 몇개씩 나오던 달걀.
뒷뜰 위쪽의 앵두나무. 그리고 돌담. 그 담이 경희궁의 담이라는건 내가
중학교를 들어가서야 알 수 있었다.
그 돌담뒤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었다. 상당히 높이 올라가 있는 우리집
지붕보다도 더 높이 솟아있는 담만으로 모자라 그위에 더 높이 철조망까지
붙어있는 그 담뒤엔 정말 멋진 고궁이라도 있겠지 싶을 뿐이었다.
우연히 차를 댄 곳. 바로 그 골목의 허리가 잘린, 그래서 그 골목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게 한 곳이었다. 그런데...그 담이 보였다. 보일리가 없는
그 담의 밑부분까지 일직선으로...문득 생각해 보니...그 어느 곳에도
내 기억속의 동네는 이제 없었다. 그냥 고층아파트를 일요일에도 열심히 짓고있는
현장만 있을 뿐.
경희궁 담밑에는 포크레인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구멍가게 자리에는 현장사무소
가건물이 있고 우리집, 내방이 있던 자리엔 변압기가 하나.
"범표사장네집"도 담이 없어진 채 임시로 얼기설기 짠 판대기들이 대어져 있어
처음으로 그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현장사무소 건물은 거의 자기네가 짓는 아파트만큼이나 크게 만들어져 있었다.
높은 곳에 3층이나 되어 그 옥상에 올라가면 그 경희궁의 담 너머에 뭐가
있을지 보일 듯 했다.......결국 올라가지 못했다.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무언가 풀리지 않는 신비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완전히 뜨자, 참 환한 햇살이라고 내뱉던 라디오처럼.."경희궁의 아침"이라 크게 적힌 회색빛 공사장의 간이벽만 눈에 차고...
나는 19살을 한꺼번에...... 먹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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