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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tar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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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여성의 억압된 삶과 자유에의 의지를 그린 로르까의 대표적인 비극 예르마(Yerma).
우리나라에도 여러 차례 연극이 상연되었는데 별첨 음악은 스페인 국영 TV에서 제작한 영화 중의 마지막 부분.
결혼 5년이 되도록 아기가 없는 예르마가 남편 후안을 살해하고 "Mi nino(미 니뇨 - 내 아기)"라고 절규하는 장면이다.
스페인 음악의 깊은 정서를 보여주는 깐떼 혼도(Cante Jondo : 깊은 노래라는 뜻으로 플라멩꼬 음악의 한 영역)가 압권이다.

아래는 로르까에 대한 소개로서 은혜님의 블로그.

출처 : http://blog.naver.com/ehgraph.do?Redirect=Log&logNo=100004198927


Federico Garcia Lorca와 그의 3대 비극


Federico Garcia Lorca(1898-1936)는 스페인어권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으며, 현대극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중의 한 명으로 인정받는다. 그는 모든 스페인적인 것의 옹호자였으며, flamenco로 알려진 그의 고향 안달루시아의 불같고 정열적이며 달콤씁슬한 음악의 대변자였다. 그는 외형적인 모습과 내적인 고뇌의 싸움에서 퍼져 나오는 관념들을 문학의 힘을 빌어 우리에게 보여주고 떠났다. 올해,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고국인 스페인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재평가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많은 작가들과 작품들이 명멸해 간 현대에서 이런 정도의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은 그의 위대함을 입증하는 것이며, 또한 한 번 알아볼 필요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의 짧지만 결코 짧지 않았던 삶과 그의 사상의 토대가 되었던 그의 고향 안달루시아와 그에 관련된 많은 상징들, 그리고 그의 대표적 3대 비극인 『피의 혼례 Bodas de sangre』,『예르마 Yerma』,『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La casa de Bernarda Alba』을 살펴봄으로써 그와 그의 사상, 작품세계에 대해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로르까의 삶


Federico Garcia Lorca는 1898년 6월 6일, Granada 근처의 Fuente Vaqueros에서 지주인 아버지와 학교 선생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 창조적인 아이였으며 항상 즐겁게 보냈다. 그는 그 어린 시절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는 그 작은 마을의 소년 소녀들과 주변을 뛰어다니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자연과 그 신비함은 어린 로르까에게는 지속적인 매혹이었으며, 그는 오랜 시간동안 그것의 다양함과 신기함을 관찰하곤 하였다. 그는 또한 모든 물건에 생명을 부여하였고 꼭 그것이 살아 있는 생물인 것처럼 말을 걸고 듣곤 하였다. 그는 후에 그의 위트와 음악적 능력으로 유명했는데 이는 어린 시절에 어머니가 그의 첫 피아노 교사가 되었을 정도로 자상하고 재능있어서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었다. 또한 하녀로 있었던 돌로레스에게서 농부와 집시의 민요 및 전통적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스페인 로망스를 듣고 자랐으며, 또한 그녀와 함께 나무와 합판으로 된 인형을 가지고 어린이들과 하녀로 구성된 관객을 매혹시키는 방법을 습득하며 연극적 재능을 익혀 나갔다.

1909년 그의 가족은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표적 도시인 그라나다로 이사를 한다. 그 곳에서 그는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국립음악학교에서 스승 돈 안또니오 세구라의 지도로 훌륭한 피아니스트로 성장한다. 그리고 스페인 전통음악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그라나다 대학에 진학하여 원하지 않았던 법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러나 곧 문학과 음악과 그림을 공부하기 위해서 법 공부를 제쳐두고 그 시대의 지성들과 만남을 가지게 된다. '작은 구석'의 뜻을 가진 '엘 린꼰시요'라는 이 그룹에서 그는 문인으로서의 기반을 닦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배경 삼아 1918년, 자신의 스페인 여행에서 영감을 얻어 첫 시집 『인상과 풍경 Impresiones y paisajes』을 발간한다. 비록 이 작품의 작품성은 조금 떨어지지만 그의 작품 세계에 앞으로 면면히 흐를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한 성찰이 엿보인다.

1918년 그는 그라나다를 떠났고, 1919년에는 마드리드 대학의 '학생 기숙사 residencia de estudiantes'에 머물게 된다. 이곳은 프랑스의 작가 로저 마르틴 드 가가 "스페인 인문주의의 보고"라고 부를 정도로 스페인 지성의 요람인 곳이었다. 그는 이 곳에서 같은 나이 또래의 많은 미술가와 작가들을 만나는데 초현실주의 미술가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í, 시인 라파엘 알베르띠 Rafael Alberti, 영화가 루이스 부뉴엘 Luis Buñuel 같은 나이 또래의 많은 미술가와 작가들로부터 시인 후안 라몬 히메네스 Juan Ramón Jimenéz같은 한 세대 위의 유명한 예술가들도 만나게 된다. 그는 그의 기숙사 생활 첫 2년 동안 자신의 시를 낭송 등의 방법으로 대중들에게 알려 출간 전에 이미 그의 시들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그리고 1921년, 주로 히메네스와 마차도 Antonio Machado y Ruiz의 영향을 받아 그의 첫 시집인 『시서 Libro de poemas』가 발간되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다.

1922년 마누엘 데 파야 Manuel de Falla의 음악적 영향을 받아 그라나다에서 깐떼 혼도 축제 Fiesta de Cante Jondo를 그와 함께 주최한다. 이때를 기점으로 로르까는 자신의 고뇌의 해법을 스페인 전통 예술에서 찾은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로 이러한 관념들이 그의 작품으로 녹아들어 갔고 곧바로 『깐떼 혼도의 시 Poema del Cante Jondo 』(1922년 완성, 1931년 출간)의 집필에 들어간다. 『노래집 Canciones』(1927), 『첫번째 집시 가곡집 Primer romancero gitano』(1924-27년 집필, 1928년 출간)등이 이어진다. 이러한 작품 각각에서 그는 스페인 시에서 어느샌가 사라져 버렸던 음악성(혹은 리듬감), 독특한 메타포(혹자는 공고라 Gongora의 영향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신비적 감각등을 표현해 내면서 그의 천재적인 측면을 가장 잘 드러냈다. 또한 그는 시인으로서만이 아니라 극작가로서도 활동하였다. 『나비의 저주』(1920), 『돈 끄리스또발의 재단 병풍』(1923)의 극작에 이어 1927년에는 자신이 1925년에 지은 로맨틱한 시극 『마리아나 삐에다 Mariana Pineda』를 달리의 배경 그림과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공연, 극찬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해에 바르셀로나에서 로르까의 그림전이 열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작품 활동으로, 특히 『첫번째 집시 가곡집』의 대성공으로 그는 스페인에서 지식인층에서 뿐만이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가장 유명한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기가 로르까에게 행운만을 가져다 준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집시 시인"으로 알려지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비록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지라도, 완전히 그러한 것으로만 자신이 정의되는 것은 실수라고 여겼다. 몇몇의 전기 작가들은 이것이 그에게서 "집시의 시"와 분리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고 뉴욕으로 떠나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분석한다. 그러한 이유로 그는 뉴욕의 콜럼비아 대학에서 1929년부터 1930년까지 거주하였지만 생의 극적 변화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였다. 이때의 그의 생각은 그가 뉴욕에 체류하면서 쓴 그의 작품 『뉴욕에서의 시인 Poeta en Nueva York』(1940)에 잘 표현되어 있는데, 이 시들은 그의 초기 작품들과 비교할 때 매우 초현실적이며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침내 그는 방랑을 정리하고 스페인 극의 개혁을 꿈꾸면서 쿠바를 잠시 거쳐 귀국한다. 그는 일반 연기자들과 단기적으로 극을 공연하는 레퍼터리 극단에서 새로운 배우를 조련하고 관객을 불러모으도록 촉진하고, 고전을 살리고 그의 극에 활용하며, 극장에서는 극에서의 시의 필요성과 그 시의 그리스고전, 꼬메디야 델라르떼 commedia dell'Arte, 낭만주의, 그리고 스페인 전통시에서의 기원성을 강조하였다. 그러한 활동의 일환으로 그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움집 La Barraca'이라는 순회공연 극단을 창단하였다. 이 극단은 스페인 공화국의 탄생으로 그 활동이 강화되면서 19세기에 유행했던 사실주의 극으로 만연된 무대를 배척하면서 도시와 시골을 가리지 않고 찾아 다녔다. 그리고는 스페인의 전통적 문화의 정수가 가득 담긴 로뻬 데 베가 Lope de Vega나 미겔 데 세르반떼스 Miguel de Cervantes등의 극을 상연했다.

이러한 그의 노력의 결과는 그의 비극 3부작 중 첫 번째인 『피의 혼례 Bodas de sangre』(1933)의 대성공으로 나타난다. 극의 주제는 로르까가 어떤 신부가 그녀의 결혼식날 비밀리에 사랑하던 사람과 도주를 했다가 신랑과 그 남자가 서로를 죽였다는 실제 뉴스를 들은 후 순간적인 영감에 의해 착상되었다. 그들은 이 극에서 죽음으로 마무리 된 사회의 양보될 수 없는 명예와 원초적 본능간의 운명적 비극의 희생자로 승화되었고, 이 극은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도 큰 인기를 끌어서 그는 1933-34년에는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도 방문한다. 그리고 1934년에 『예르마 Yerma』를 발표, 20세기 시극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인기를 끈다. 그리고는 1936년 6월, 비극 3부작의 마지막 편인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La casa de Bernarda Alba』을 완성한다. 그 외에도 시집으로 『이그나시오 산체스 메히야스의 죽음을 통곡하며』(1934), 『따마릿 시집』(1936), 『어두운 사랑의 소네트』(1936)등이 있으며 극으로는 『경이로운 여구두 수선공』(1930), 『돈 끄리스또발과 로시따 처녀의 희비극』(1931), 『관중』(1930), 『돈 뻬르림플린과 벨리사와의 정원에서의 사랑』(1931), 『이렇게 5년은 흘러가려는가』(1931), 『독신녀 도냐 로시따 또는 꽃들의 언어』(1935) 등이 있다.

그러나 로르까는 애?은 운명의 장난으로 1936년 8월 어느 날 새벽, 그라나다에서 스페인 내전의 시작과 함께 국가주의자들에게 총살당하고 만다. 그가 왜 사형당해야만 했는지는 아직도 의문에 휩싸여 있다. 그 이유는 이 글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 글의 말미에 정리해 보고자 한다.

그의 동성연애가 그의 죽음의 이유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 그는 동성연애자였다. 그리고 그의 극중에서 그것이 동성애의 형태이건 이성애의 형태이건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면이 단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의 그런 면을 잘 이해하는 것이 그와 그의 예술세계를 잘 이해하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면에 괴로워하면서도 오히려 그는 스페인 사회의 보수적이고 엄격한 성격에 많은 고통을 받았고 그 해방구로 그런 방법을 택한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러한 측면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지 못하고는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사후에도 그의 정신을 잇는 활동은 계속되었다. 그의 사후 1년, 『독신녀 도냐 로시따 또는 꽃들의 언어』를 무대에 올린 후 해체되었던 극단 '움집'은 그의 조수 모데스또 이게라로 이어져 전쟁 후 독립적인 『스페인대학극단 TEU』로 발전하였다. 이것을 시작으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든 것이 검열을 거쳐야 하는 시기에 표현의 자유를 위해 투쟁하고 새로운 젊은 극작가들을 양산해냈다. 이러한 흐름이 50년대 60년대를 거쳐 유럽 아방가르드 작가들의 극과 반정부 문인이었던 우나무노와 무정부주의자 바예 잉끌란 및 라우라 올모, 알폰소 사스뜨레, 페르난도 아라발의 작품들을 상연하였다. 그리고 40년간의 독재체제가 끝난 후 『스페인국립극단』이 되어 로르까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2. 로르까와 안달루시아


앞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로르까와 그의 고향 안달루시아는 뗄래야 떼어 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그의 고향의 풍경과 어머니의 교육, 하녀 돌로레스의 기억은 기억속에 각인되어서 그의 예술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오르떼가 이 가세트은 "Yo는 yo와 환경의 결합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은 태어날 때의 자신이 그 후에 자란 자연과 풍경, 또 그곳의 사람들을 합한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작가들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자신의 내부에 잠재되어 남아있는 경험이 창작과정 중에서 무의식중에 되살아나며 그러한 측면이 독자나 관객에게는 더욱 더 영향력있게 기억속에 남는 것이다.

안달루시아는 스페인의 다른 지역과 상이하게 매우 독특한 성격을 가지는 지방이다. 오르떼가 이 가세트가 관찰한 바로는 안달루시아 지역은 지역 자체가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며, 사람들이 그 대지를 이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몸 전체로 호흡하고 산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대지와 그들의 존재를 동일시하고 그 곳을 낙원으로 알고 즐기는 안달루시아인에 대해 이야기한다. 따라서 안달루시아인에게는 그 땅을 떠난 삶은 소멸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의는 로르까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안달루시아와 그의 관계를 잘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현대에서의 비극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

비극의 기원이라 할 만한 그리스 비극은 초-중-종장의 형식과 일정한 길이를 가져야 하는 점, 다른 어떠한 요소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겨진 플롯, 진지한 인물로써 평범한 사람 이상의 신분을 가진 캐릭터 등 아리스토텔레스의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형식적 요소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그 핵심이 그러한 형식이었다기 보다는, 인간의 운명이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을 바탕으로 한 사상, 주제가 더 중요한 요소였다. 그러한 관점에서만이 급전, 반전, 파토스 등의 그리스 극의 필수적인 요소의 이해가 가능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면서 고전의 신화와 비극은 그 힘을 잃어버렸다. 바로 '이성'이라는 잣대로 이 모든 것을 판단하려는 움직임 때문이었다.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 없고 벌어질 수도 없는 인간의 운명이나 숙명은 신고전주의 이후의 형식적 측면만 수박 겉 핥듯이 따라하는 작가들은 소화해 낼 수 없는 엄중하고도 무거운 주제였다. 다시 말해, 고전 신화는 죽은 과거로 이끌고, 기독교 신화는 형이상학적이며, 막시즘 신화는 반비극적이다. 현대 작가들의 시도도 스타이너의 지적에 의하면 헛된 장난일 뿐이다.

그러나 로르까에게는 이러한 비극이 가능했다. 이유는 그가 태어난 안달루시아 지방의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유럽의 모든 문화중에서 안달루시아 문화가 가장 오래되었으며, 특히 로르까의 시대에는 안달루시아가 가장 늦게 발달한 지역이었으므로 옛 모습이나 관습들이 상당히 많이 남아있었다. 이 지역의 동굴로 된 집의 군락에서 그리스 시대의 도시 모습을 추측해 낼 수 있을 정도이며, 원시시대 사람들의 삶이 보이는 듯 하다. 또한 한가지 덧붙여야 할 점은 그 지역이 오랜 동안 모로인의 침략과 지배로 인해서 다른 지역과는 상이한 문화를 소유하게 되었고 그 결과 더더욱 발전이 늦어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지역적 특성에서도 비극이 탄생한 그리스지역과 비슷한 남부 지중해라는 것도 놓쳐서는 안될 점이다. 이러한 자연적 환경에서 그는 자연스럽게 비극의 느낌을 숨쉴 수 있었고 그 신비스러운 느낌을 자신의 작품속에 투영했다.

이러한 안달루시아 지방 특유의 비극적 바탕을 로르까는 '두엔데 duende'라고 표현한다. 두엔데는 사전적으로는 귀신·요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그 지방 사람들이 이것이 없이는 어떠한 예술적 감흥을 느끼지 않는다고 지적하면서, "모든 예술에 그리고 나라마다 전사니 뮤즈신과 같은 두엔데와 같은 성질의 영혼이 있을 수 있다......스페인은 언제나 두엔데가 있다. 두엔데가 새벽 나절의 레몬즙을 짜내는 수천년의 춤과 음악의 나라, 그리고 죽음의 나라가 스페인이다." 라고 말한다. 짧게 정의하면 두엔데는 "모두가 느끼나 어느 철학자도 설명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힘"이며 안달루시아 지방의 마술적인 힘이며, "죽음을 보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 이것은 신비하고도 샤머니즘적이며 운명적인 힘이다. 그는 그 대지에서 어린 시절의 영혼으로 아무도 감지하지 못하는 암시들을 느낀다고 말한다.

그의 이러한 두엔데는 그의 사상과 작품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투영된다. 그러한 것으로 '투우'가 있다. 그는 투우속의 두엔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하게 진지한 것은 투우이다. 세상의 가장 예술적인 민족의 고전적인 정수가 모두 만나는, 옛 세계의 살아 있는, 생생한 독보적인 광경이 투우이다....두엔데는 투우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죽음이 국가적 구경거리인 나라는 오직 스페인이다. 그곳에는 봄이 올 때 죽음이 긴 나팔을 불고, 그 예술은 언제나 독창성과 상이함을 주는 날카로운 두엔데가 조절한다."

그가 투우에서 이러한 두엔데를 느끼듯이 그의 작품에서 주된 상징으로 등장하는 칼도 그러한 의미를 가진다. 칼은 죽음이자 죽음의 원천이며 그 신비이고 매혹이다. 그러한 개념은 『피의 혼례』에서 극명히 드러나는데, 어머니는 "총이나 칼같은 조그마한 물건이 투우같았던 한 인간을 끝낼 수 있다는 게 말이 되는 거니?" 라고 말하며 투우로 대표되는 삶의 치열함과 칼의 차갑고 날카로운 죽음의 심상을 대비하여 나타낸다.

또 로르까의 극에서 놓쳐서는 안될 개념으로 달이 등장한다. 달은 차고 기우는 삶의 리듬이며 그러한 이유로 번식·삶·죽음의 상징이다. 그의 시 『뿌려진 피 La sangre derramada』에서 1연부터 7연까지 달이 밝게 비추며 극적 긴장감과 시인의 슬픔을 증폭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Canción de Jinete』에서도 2연의 '큰 달 luna grande', 3연의 '붉은 달 luna roja'등으로 긴장을 고조시킨다. 이러한 달은 『피의 혼례』에서는 목숨을 자르러 온 젊은 나무꾼으로 등장하여 주인공들의 운명적 죽음을 예고한다.

이러한 것 외에도 그의 비극적 요소에는 깐떼혼도의 음악적 요소가 첨가된다. 그의 비극 3부작을 통해 등장인물들은 음악을 이용해 앞날을 예견하고 예고한다. 이러한 안달루시아 지역의 전통적인 집시 음악의 영향을 받은 형식적인 음악성·서정성을 통해 달, 칼등의 비극적 내용을 강조해 극의 비극성을 더욱 더 강화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이상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로르까의 극에서는 다른 현대와 근대의 비극작가들이 추구했던 것처럼 형식만의 비극이 아니라 안달루시아의 살아있는 비극적 감각, 즉 두엔데가 살아 숨쉬고 있다. 그리고 그는 극이 가져야 할 이러한 비극성을 추구하면서 전통적 요소를 살려 국민들에게로 돌아가 그 본래의 위력을 찾게될 것을 기대한다. 그는 그렇게 그 땅의 사람들이 찾고 원하던 그들의 본초적 사상을 그의 극에 담은 것이다.



3. 로르까의 3대 비극 ― (1) 피의 혼례


(1) 줄거리 : 부지런하게 살며 자신의 연인과 결혼을 하려는 신랑의 앞에 자신의 가문의 원수집안의 Leonardo가 나타난다. 그는 신부와 예전에 연인관계였던 사이였지만 지금은 신부의 사촌과 결혼해 자식까지 둔 상태이다. 신랑의 어머니는 이런 관계를 알고 주저하지만 결혼을 허락한다. 결혼식 날, 많은 사람들이 참가한 가운데 벌어지는 축제에서 계속 우울해 하던 신부는 옛 연인을 선택해 Leonardo와 도주한다. 이 사실을 안 신랑과 친척들은 그들을 추적한다. 결국 달이 훤하게 뜬 밤, 둘은 숲속에서 서로를 죽이고, 신부는 돌아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2) 분석 : 이 작품은 3막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등장인물들은 Leonardo를 제외하고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 이것은 반사실주의 성향의 형식주의의 성격과 유사하다. 19세기 중반에 발생한 형식주의에서는 등장인물이 그 개성을 상실한 채, 이름없는 '아버지', '남자', '아들', '노동자'등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그러한 인물들이 각자가 속하는 계급의 전형을 보여주는 형식주의와는 다르게 이 극에서는 어떠한 집단을 대표하는 이름이 아니며 오히려 극 전개상 각자의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어머니'가 바로 그 성격을 강하게 보여준다. 그녀는 가족의 죽음을 겪어 자식에 대한 알뜰한 사랑과 그가 이루어 낼 후손에 신경쓰고 있다. 그러나 아들의 사망이후 이런 모성과 생산의 관념을 집착으로 돌려버리고 그 숙명에 대항했던 집착을 과감하게 던져버리고 자신을 찾아온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수용한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상징성 높은 언어와 음율을 사용하여 사회적 압력과 명예, 승리에 대한 열망, 본원적인 비극, 가족과 혈연, 강한 증오와 복수, 그리고 죽음 등을 표현하고 있다. 위에 나열한 관념들은 비극의 훌륭한 내용적 구성요건이 되는데, 이것은 로르까가 작품 전편에 걸쳐 설치해 놓은 '숙명적인 사건의 암시'의 과정을 거쳐 그 의미를 확실히 갖게 된다. "말의 자장가"와 칼에 관한 어머니의 말속에서 관객은 앞으로 일어날 사건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장가에서의 '눈 속의 은빛 단검'이라던가, 말이 물을 마시기를 거부하는 것, 그리고 '피는 물보다 더 세차게 흘렀단다'로 극의 비극적 종말이 강하게 암시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3막에서 운율을 갖춘 말들로 그 긴장을 더해간다. 이미 이 과정에서 그 비극적 진행을 알아채 버린 관객이 물을 수 있는 것은 "왜?"가 아닌 "어떻게?"이다. 그의 극의 주된 소재인 달이 인격화되어 그들의 목숨을 거두러 온 '하얀 얼굴을 한 젊은 나무꾼'으로 등장하여 그 비극적 종말을 예고한다. 그리고 죽음을 예감한 레오나르도는 신부와 노래로서 그 비극성을 새롭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죽음은 3막 1장 말미의 '멈춘 달'과 '절대적 침묵'으로 형상화된다. 이 3막 1장은 극의 기원이라는 디오니소스 신에 대한 제사같은 샤머니즘적 성격까지 띤다. 그 과정에서 평범한 구문과 어휘를 쓰지 않으므로써 불가사의하고 초인간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는 이미 극 시작에서 여러차례 사건의 빌미로서 강조되었던 레오나르도와 신랑 집안의 얽히고 곪힌 은원은 결과적으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의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모든 운명을 알아버린 등장인물, 특히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머니는 운명에 거스름이 없이 그것을 순순히 인정하고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인다. 이 장면에서 이 극의 비극으로서의 성격, 즉 로르까의 몸에 체득되어 있는 숙명적인 운명이 드러나는 것이다.

 

3. 로르까의 3대 비극 ― (2) 예르마


(1) 줄거리 : 주인공 예르마는 누구보다도 자식을 갖고 싶어하는 여자지만, 결혼생활 5년이 지난 후에도 아이를 갖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의 존재 의미가 아이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지만, 남편 후안은 자식을 원하지 않으면서 농사일과 가축 돌보는 일에 전념한다. 이러한 환경에 비관한 예르마는 예전의 사랑이었던 빅또르에게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 그러나 그것마저 실패하고 그녀는 후안에게 절망감을 느끼고는 목을 졸라 살해하고 만다.


(2) 분석 : "Yerma" 라는 이름은 그리스 어원인 eremos(황야, 불모지)의 형용사형에서 온 것으로, 이것은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경작되지 않는', '거주자가 없는'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예르마라는 이름은 그녀가 지구, 또한 자연과 묶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극이 보여주는 가장 큰 틀은 다산할 수 있는 여성이 자신에게 운명지워진 자연적 기능을 수행하고자 하는 욕구와 그로 인한 갈등의 표출이다. 극이 시작하면서 봄날아침같이 밝고 상쾌하게 바뀌는 조명으로 그녀의 수태 가능성이 표현되며, 이것은 봄의 경작될 수 있는 비옥한 토지의 이미지로 인식된다. 그녀는 아이만 없을 뿐이지 자신이 묶여 있는 자연의 딸로서는 손색이 없는 인간이다. 그러나 그녀의 남편 후안은 그녀와 반대 성격을 가진다. 예르마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러한 생명성을 그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드며, 결국 이것은 이 극의 비극적 결말을 엿보게 한다.

또한 한가지 이 극을 덮고 있는 관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성성의 문제이다. "여성"이라는 말의 전통적 개념은 육체적 문제와 성의 차별에 있어서 두 가지로 정의될 수 있다. 첫째는 "여성에 대한 성적 관심"으로서 (남성)욕망의 객체로서의 존재와 두번째는 "여자다움"으로 정의되는 사회적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의 존재이다. 이러한 두 가지 개념이 근대이후에 문학속에서 충돌하면서 만들어내는 파장은 엄청난 것이었다. 이러한 갈등이 또한 극을 지배하고 있는데, 여자에는 단지 의무만 있고 남자에게는 권리만 있는 세상의 법으로 인한 갈등이 이 극에서도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빅또르를 만나고 돌아온 예르마는 로르까의 비극에 등장하는 젊은 여인들 중 가장 깨끗하고 죄 없는 인물이면서도 부당한 남편과 마을의 대우(사회적 관습)를 받고 있다. 그들은 여성이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움직이는 것에 대한 용납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그저 남편의 육체적·가정적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객체일 뿐이다. 그녀 자신이 그러한 환경에서 고통받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숙명적으로 인식하는,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그녀도 모르는 명예관을 가지고 있고 "나는 목이 마르지만 자유는 없다"고 외친다.

이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비극의 요소는 최후의 장면의 비극성을 증폭시킨다. 수태하고자 하는 여성 본연의 욕구는 남편의 독선적이고 모욕적인 희롱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그리고 사회속에서 구현되어야 할 여성의 참다운 욕망도 사회의 벽에 무너져 버린 것을 느낀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갈 수 있는 다른 길, 수태를 시킬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남편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희망인 수태도 포기하고 끝간데 없는 자기 부정으로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끌어안고 비극적인 극을 마친다. 이 극을 통해 로르까는 큰 소리로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삶을 헤쳐나갈 힘을 가지라고 외치는 것 같다.


3. 로르까의 3대 비극 ― (3)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1) 줄거리 : 작품이 시작되면 베르나르다 알바의 두번째 남편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그녀는 매우 권위적이고 혐오적인 인물이며, 사람들은 그녀를 좋게 보지 않는다. 조문객이 모두 물러난 뒤, 그녀는 다섯 딸들에게 앞으로 8년 동안 외부와는 어떠한 관계도 갖지 말 것을 명령한다. 딸들은 이미 장성한 나이기 때문에 독신녀로 늙을까봐 매우 불안해한다. 첫번째 남편에과의 사이에서 난 첫째 앙구스띠아스에게는 39세의 노처녀로 스물 다섯의 뻬뻬 일 로마노가 청혼하지만 이것은 그저 그녀의 재산때문이었다. 그는 오히려 그녀의 두 동생의 사랑을 받고, 결국 막내 아델라와 정열적 사랑에 빠지고 만다. 사랑을 받지 못한 아르띠리오는 어머니에게 둘의 밀회를 알리고 결국 베르나르다는 그를 향해 총을 쏜다. 그가 죽었다고 믿은 아델라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극은 이렇게 죽음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2) 분석 : 비평가들은 오래전부터 로르까가 여성성, 특히 여성의 모성본능에 대한 탐구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Rafael Martinez Nadal은 "로르까가 관심있어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여성 정신의 내심의 비밀을 꿰뚫어보는 것이다(lo que a Lorca le interesa, sobre todo, es penetrar en los intimos secretos de esas almas femeninas)"라고 지적하였다. 이러한 그의 여성성에 대한 관심은 그의 비극 3부작에 잘 녹아 들어있다. 특히 다른 두 극과 비교할 때 이 극에서 남성등장인물의 부재는 더더욱 주지해야 할 성격의 것이다. 이 작품에서 로르까는 남성에게 크게 의지하지 않고 최소한의 접촉만을 유지하며 살아온 3대에 걸친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르까는 이로서 외부의 남성으로서의 침입으로 인한 환경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극중 환경을 창조해 냈다.

그 중에서 극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존재는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이며 집을 지배하고 있는 베르나르다이다. 상황은 특수하지만 극의 주제는 매우 보편적인데 그것은 관습적이고 엄하며 권위적인 도덕과 마리아 호세파와 아델라에 의해 보여지는 인간 본능의 자유에 대한 갈망의 대립이다. 그녀는 집안에서만이 아니라 마을에서도 권위를 지니고 있는데 이것은 다름 아닌 이웃들의 치욕적인 비밀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과정에서 하녀 뽄시아는 전통적 도덕관에 매여 사람들의 평판에 자신의 명예관을 두고서 베르나르다의 분신역할을 한다.

딸들은 여성으로만 이루어 진 집에서 사랑을 찾아 떠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감히 어머니의 권위에 도전하지는 못한다. 그 성역에 도전하는 사람은 정신병자로 설정되어 있는 베르나르다의 노모 마리아 호세파이다. 그녀의 광기는 이 집의 진실을 알려주는 도구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예언자적인 역할도 수행함으로써 극의 다가올 비극적 종말을 예고한다. 이러한 갈등을 증폭시키는 인물이 뻬뻬 엘 로마노이지만 그는 극에서 등장하지 않고 그저 멋있지만 바람기 있는 남자로 묘사된다.

이러한 두개의 대립적인 갈등은 극에서 죽음으로 마무리된다. 베르나르다로 대표되는 사회의 도덕과 관습에 반항하고 거부하는 사람은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에 로르까는 수많은 상징적 이미지를 덧 씌우고 음악적 요소를 가미함으로써 또 한편의 대단한 극을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는 다름아닌 그의 인생관과 안달루시아의 대지의 감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피의 혼례』에서 죽음을 예고했던 달의 이항으로써 태양이 등장해 삶과 기쁨을 노래하기도 하고 강은 삶을, 우물은 정체하는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현들은 극이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간결한 이미지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것은 아깝게 사망하기 직전의 로르까의 원숙해진 솜씨를 느끼게 해 준다.


4. 로르까를 이해하기 위하여 ― 그의 죽음과 사상

지금까지 우리는 로르까라는 천재적 작가의 삶과 그의 사상의 뿌리가 된 환경, 그리고 그 모든것이 함축적으로 표현된 세 작품에 대해 살펴보았다. 편편이 흩어져 있는 그의 사상을 모아 그를 총체적으로 인식하기 위해서는 그의 죽음의 미스테리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가장 빠르지 않을까 한다.

그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스페인의 환경과 파시즘을 이해하여야만 한다. 당시의 스페인은 19세기 중순부터 시작된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가중되어서 20세기 초에는 기득세력인 사회주의 노선의 공화당파와 파시즘의 프랑코파가 맞붙게된다. 결국은 프랑코가 자신의 군대를 모로코로부터 이끌고 본국에 들어옴으로써 스페인 내전(1936-1939)이 시작된다. 그가 이 내전의 와중에서 파시스트의 손에 죽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의 스페인 내전은 파시스트에 의한 보수혁명의 성격을 띄는데, 이 혁명에서는 '지성'이나 '이성'을 가진 자는 제거되어야만 한다. 파시스트는 반이성주의자들이며, 그들은 실존은 어차피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이성 대신에 '힘과 용기'로 대변되는 '의지'가 가치판단을 대신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생각하는 사람은 의지에서 비롯되는 확신이 없고, 결국 행동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의지'는 사람들을 한 힘으로 움직이게 하는 역사 발전의 원동력인데, 그러한 의지를 사람들에게 가지게 하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세계를 '예지'의 능력으로 파악하는 것은 선택받은 지도자만이 할 수 있다는 귀족주의적 인식론으로 귀착된다.

그들에게 로르까라는 스페인을 깨우려는 지식인의 존재는 눈엣가시라는 것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그의 작품에서 살펴볼 수 있듯이 귀족주의적 인식론을 가진 파시스트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가 나고 자란 안달루시아의 민중 정서가 뼈 속 깊이 박힌 사람이었다. 또한 그가 비록 어떤 정치적 모임에 관여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상과 작품 전면에는 그가 자유를 사랑하는 지식인이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와 누이 꼰차와의 대화에서도 그는 "난 가난한 사람들 편일 뿐이야." 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작품에서도 본능의 자유를 갈망하는 『베르나르다 알마의 집』의 아델라나, 개인의 자유의지를 찾아 헤매던 『예르마』의 예르마와 같은 인물에서 그의 그런 사상을 엿볼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렇지만 지식인들은 이러한 천박한 정치의 논리에는 걸림돌이 될 뿐이다. 반대로 말하면 로르까가 그것을 의식했건 하지않았건, 그만큼 그가 스페인 국민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컸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의 막대한 영향력은 그의 사후 18년동안 프랑코정권이 그에 관한 논의를 완벽하게 금지했다는 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강제의 탄압으로도 로르까의 빛나는 업적과 뜻을 가리지는 못했다. 꼭 스페인적이라고 할 수 없는 그의 사상의 전 인류적 보편성은 그의 탄생 1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우리의 곁에 이렇게 숨쉬고 있다. 그의 극에서 아직도 그가 인간에게 자신의 본성을 숨긴 가식의 가면을 벗으라고 외치는 듯 하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현대를 사는 우리가 아직 맛볼 수 없었던 진실된 비극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Comment '6'
  • 1000식 2005.05.25 07:03 (*.232.52.6)
    플라멩꼬 음악이 그저 신나고 정열적이고 격렬하다고 느끼는 건 아직 깊은 세계를 맛보지 못한 탓.
    우리나라의 한(恨)의 정서와도 통하는 플라멩꼬 음악의 깊은 맛.
  • 2005.05.25 07:55 (*.80.23.11)
    아...그렇군요...
    저는 플라멩고가 무쟈게 정열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플라멩고스케일도 얼마나 긴장감높고 힘이있는지...
    1000식님 대표적인 플라멩고명반 몇장 추천해 주세요...
    이참에 몇장사서 플라멩고 좀 집중해서 들어볼랍니다.
  • 1000식 2005.05.25 15:35 (*.232.52.227)
    플라멩꼬는 3가지 영역이 존재합니다.
    깐떼(Cante : 노래), 바일레(Baile : 춤), 또께(Toque : 기타연주).
    이 셋은 단독으로 혹은 서로 어우러져 플라멩꼬 예술을 펼치게 됩니다.

    명반이라고 달리 분류할 필요는 없겠구요, 단지 각 영역의 명인들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나는 사람들을 대충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깐떼 : 마누엘 또레(Manuel Torre), 안또니오 챠꼰(Antonio Chacon), 엘 초꼬라떼(El Chocolate), 엘 까마론(El Camaron), 니뇨 리까르도(Nino Ricardo), 니냐 데 로스 뻬이네스(Nina de los Peines),

    바일레 : 카르멘 아마야(Carmen Amaya), 비센떼 에스꾸델로(Vicente Escudelo)

    또께 : 라몬 몬또야(Ramon Montoya), 까를로스 몬또야(Carlos Montoya), 사비까스(Sabicas), 빠꼬 데 루시아(Paco de Lucia)

    위에 소개한 사람들은 대부분 옛날 사람들이라 음반 구하기가 녹녹치 않을 거예요. CD로 복각되지 않은 것들도 많구요. 언제 시간이 되면 LP를 떠서 CD로 구워 드릴께요. 시중에 플라멩꼬 음반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사람들도 간혹 눈에 띠더군요. 명반이라고 너무 가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 2005.05.25 21:55 (*.105.99.93)
    허걱 대충도 디게 많네여.... 감사합니다.
    또 돈 엄청 깨지게 생겼네여....
    강원도의힘님이랑 안동에 음악공부하러 한번 방문해야겠어요......
    안동찜닭도 자꾸 생각나고..
  • 1000식 2005.05.25 22:09 (*.232.52.227)
    안동 방문을 환영합니다.
    은미님의 파워풀한 연주도 듣고싶고 못 치는 기타지만 저도 화답해 드리지요.
  • 1000식 2005.05.25 22:16 (*.232.52.227)
    음반 수집이란 취미는 기나긴 기다림과 끈기가 없으면 힘든 취미인 것같습니다.
    바로 아래에 소개한 로르까의 SP녹음은 거의 10년에 걸친 목마름과 기다림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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