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타첫사랑 데이빗 러셀 -2004년 10월 3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어젯밤 그는 바하, 헨델, 바가텔.. 를 연주했고, 내가 들은 것은 러셀, 러셀, 러셀.. 이었다.
러셀은 나의 "기타첫사랑"이다. 기타 음악을 듣게 된지 이제 겨우 5년이 채 안되었다. 기타음악에 대한 풍부한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러셀을 처음 들었을 때, 어쩌면 나는 기타를 좋아해서 러셀을 들은 것이 아니라, 러셀을 들어서 기타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 첫 음반은 러셀의 바리오스였다. 바리오스 또한 러셀을 통해서 처음알게 된 것이니까, 바리오스와 러셀이 나를 "기타매니아"로 만든 셈이다. 그 이후 나는 러셀의 음반이라면 무조건 구하고 다녔고, 텔락 신보는 출시되자마자 사곤 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내가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도 바뀌었다. 워낙 싫증을 잘 내는 성격인지라 새로운 것을 들으면 그것에 마음이 갔다. 그리고 러셀 말고도 뛰어난 기타리스트들이 너무나 많았는데, 나는 첫사랑에만 너무 연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조금씩 그를 멀리 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David Russell plays Bach" 음반을 출시했을 때, "앗 이것은 바하가 아니라 러셀이잖아. 바하가 뭐 이래" 이러면서 투덜댄 이후 러셀은 자연스럽게 "헤어진 첫사랑"이 되는 듯 했다.
게다가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이라니.. 또 개념없는 스피커에 시달리겠군. 그리고 이 레퍼토리를 봐. 대체 컨셉이 뭐야 완전히 백화점이네.. 바흐헨델에 바가텔, 그런데 웬 라미레스 헤이스냐구.. 나의 톨톨톨은 끝이 없었다.
하지만 어젯밤, 내가 받은 감동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을까.
그는 기타적이라기보다 음악적이다. 너무나 음악적이며, 궁극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의 손놀림을 보며 나는 "아, 저런 괴물같은 테크닉이" 하고 감탄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왼손 손가락들이 아주 느린 왈츠를 추고 있는 것을 바라보는 듯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아름다운 음악에 자연스럽게 젖어들게된다. 왼손의 자유로움, 오른손의 미묘함.. 그리고 러셀만의 특이한 박자감각..
그가 첫 곡의 첫 음들을 시작했을 때 "개념없는" 스피커를 탓하면서 톨톨톨거렸지만, 정말로 그는 대가였다. 나는 곧 음악으로 빠져들어 스피커를 욕할 겨를이 없어졌다. 한꺼번에 흝어내리더라도 그 소리는 아름다웠고, 한 음 한 음은 말할 것이 없었다.
가볍고 재빠른 몸놀림의 그는 청중들의 박수에 매우 기쁜 표정을 짓고,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일어나 기타를 가슴 앞 수평으로 들고 인사했다. 말은 많이 하지 않았는데, 알폰시나와 바다, 병사의 노래를 연주하기 전 잠깐 곡 설명을 하면서 "카르도소"의 편곡이라고 덧붙였고, 헤이스의 두 곡을 연주하기전엔 농담도 했다. "브라질에서 온 두 곡을 연주할건데, 처음 것은 슬픈 노래입니다. 여자친구를 잃은거죠. 두번째 것은 행복한 노래입니다. 여자친구가 생긴거요."
러셀의 바하가 바하가 아니라구? 애초에 지금 바하를 연주하고 있는 것은 러셀이지 바하가 아니잖아. 그의 바하는 아주 섬세했으며, 단순히 뛰어난 감수성으로만 포장된 것이 아니라 각 성부의 음률이 기타적으로 다시 살아나는 꽉 찬 바하였다. 명징한 멜로디라인과 확실하게 느껴지는 통주저음, 그리고 그러한 온갖 조잡한 바로크 음악에 대한 알고 있던 것들마저 금새 잊어버리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간혹 있던 실수조차 커다란 흐름에 묻혀버리는 듯 했다.
연주회와 너무나 뛰어난 네 곡의 앙콜까지 다 듣고 나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그는 바로크 음악, 이라던가 현대음악, 혹은 민속음악 과 같은 콘서트를 한 것이 아니라, "데이비드 러셀"의 음악을 오늘 마음껏 보여준 것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러셀의 연주에서 딱딱함의 매력이랄까 혹은 섹시함을 찾아볼 수는 없다. 그는 반드시 정박으로만 연주하는 연주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끈끈하거나 감칠맛 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러셀에게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딱딱함의 매력을 느끼고 싶으면 페르난데즈나 바루에코를 그리고 감칠맛을 원한다면 디앙스의 연주를 들으면 된다) 더군다나 그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음반으로 귀에 익었던 곡조차 해석이 조금씩 바뀌었고, 예전보다 훨씬 더 연구를 많이 한 음악을 들려주었으며, 톤과 해석에 있어서는 "러셀 스타일"을 제시한 것이다. 또한 세번째 앵콜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오늘밤 저의 최선을 다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이나 그의 움직임, 표정들을 보았을 때 그는 정말로 음악을 사랑하고, 청중들의 반응에서 순수한 기쁨을 얻고, 그리고 사람마저 좋아보이는 음악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싸인을 받고자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면서 마스터클라스 표를 샀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타 전공생도 아니고, 할 줄 아는 악기도 하나 없는 나로서는 단지 러셀을 좀 더 가까이 느끼고 싶어서였고, 다음날 이어진 마스터클라스에 무리하여 간 것을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수 있었다. (오늘 마스터클라스였는데, 지척에서 마이크 전혀 쓰지 않은 그의 담만 소리를 들을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정말 멋졌습니다. 지금 눈이 감겨서 후기는 천천히 쓸래요)
나의 기타 첫사랑 러셀, 지금 내가 제일 사랑하는 기타리스트는 아니지만,
함께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그의 음악을 듣고 그의 더욱 대가다워지는 모습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한.. 그러한 소중한 사람임이 분명하다.
어제의 모든 톨톨톨을 잊고 단 하나 내가 러셀에게 남은 톨톨톨 : 부인 마리아만 옆에 없었어두.. 아니 결혼만 안했어두.. 훨씬 더 다정하게 사진 한장 꼭 찍었을텐데. 톨톨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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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나름대로 꼽는 최정상급 연주자 리스트 중에서 러셀은 그동안 속하지 않았습니다만,
저는 이번 연주회에서 러셀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한 십년전 쯤에 내한 연주회 했을 때보다 더 원숙해지고 넉넉해진 그의 음악과 모습...
으니님이 그를 그렇게 좋아하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습니다. -
오모씨님이 올려준 음악과 으니님의 후기를 통해서 맘껏 상상을 펼쳐보았습니다....
꿈에 그리던 연주회를 꿈으로 감상하네요...
특히 트레몰로연주는 정말 압권이더군요....트레몰로를 연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안들고..
그저 선율의 움직임만 느끼게할 정도로 푹 빠지게 만드 연주였습니다...녹음이 이정도니 휴~~
울티모칸토는 그렇게 현이 울고 있는 연주는 첨 들어봣어요.....
알함브라는 일본의 그 어떤 연주자(이름 갑자기 까묵었네)와 더불어 최고의 연주라고 하고싶네요...
다른 연주도 말할 것도 없구요....Manjon의 Aire Vasco는 럿셀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한 연주였다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후기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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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영어가 짧아(그 말 할 때 뒤쪽에서 누가 떠들었음 ㅡㅡ;; )못알아들었느넫 그게 그 소리였군요.
어제의 관중들은 디용때 본 그 수준 높은 관중들이었습니다.
어떤 기타리스트들이 그런 관중들 앞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겠어요^^
인터미션 때 김해경선생님이 그러시던데요, 스테인이나 유럽등엔 관중들이 나이 드신분들이 많아 아예 대놓고 기침소리 한데요. 그런데 어제는 기침소리, 떠드는소리, 핸펀소리 하나 안들렸고, 박수는 우뢰와 같았으니, 여주자가 얼마나 좋아하겠내고.....정말 최고의 매너있는 관중들이라고 칭찬하시데요.
우리 관중들이 자랑스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