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좋은 글이군요. 8년 가까이 전의 글이란 게 안타깝네요.
때론 안너 빌스마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위해서 태어난 연주자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해석의 최대의 특징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선율을 감응시키는 음악감각입니다.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빌스마는
이 무반주에서 가공할 만한 템포 루바토로 곡을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이 루바토란 것도 대가의 높은 음악성이 뒤받침되어있기에
이토록 견고하게 들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반주의 속성상 곡에 도사리는
불편한 점을 가리면서도 좋은 점은 철저히 부각시키는 해석이 필요한데, 빌스마에 이르면
이런 게 극한에 다다라 있습니다.
두번째는 다성적인 맛이 들리도록하는 음악자체에 대한 고려입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선율적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시각이지요. 이 점은 방향은 좀 다르지만,
로스트포비치가 잘 이야기하더군요. 물론 로스트로포치와 궁극적으로 다르다면
빌스마는 앞의 특징을 추가적으로 반추한다는 것이죠. 곡에 담긴 미몽같은 맛을 일깨움과 동시에
바흐의 두터운 다성적인 분위기를 충족시킨다고 할까요... 빌스마 무반주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제 블로그에 이곡에 대해 자세하게 감상기를 적어 놓은 게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음반은 카잘스, 푸르니에와 더불어 빌스마의 92년 음반이 빅쓰리라 생각합니다.
때론 안너 빌스마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위해서 태어난 연주자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해석의 최대의 특징 두가지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선율을 감응시키는 음악감각입니다. 이게 장난이 아닙니다. 빌스마는
이 무반주에서 가공할 만한 템포 루바토로 곡을 뒤집어 놓고
있습니다. 이 루바토란 것도 대가의 높은 음악성이 뒤받침되어있기에
이토록 견고하게 들리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반주의 속성상 곡에 도사리는
불편한 점을 가리면서도 좋은 점은 철저히 부각시키는 해석이 필요한데, 빌스마에 이르면
이런 게 극한에 다다라 있습니다.
두번째는 다성적인 맛이 들리도록하는 음악자체에 대한 고려입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선율적으로 접근하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시각이지요. 이 점은 방향은 좀 다르지만,
로스트포비치가 잘 이야기하더군요. 물론 로스트로포치와 궁극적으로 다르다면
빌스마는 앞의 특징을 추가적으로 반추한다는 것이죠. 곡에 담긴 미몽같은 맛을 일깨움과 동시에
바흐의 두터운 다성적인 분위기를 충족시킨다고 할까요... 빌스마 무반주의 위대성은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제 블로그에 이곡에 대해 자세하게 감상기를 적어 놓은 게 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무반주 첼로
모음곡음반은 카잘스, 푸르니에와 더불어 빌스마의 92년 음반이 빅쓰리라 생각합니다.
http://blog.naver.com/kdh6390/40049215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