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로 삐에리는 확실히 대가 맞습니다. 빌라로보스의 에튀드 연주는 명불허전.
위의 연주는 삐에리가 박자 감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한 것임엔 틀림없구요.
(박자 감각이 없다면 어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반부의 고음역에서 F음이 아닌 F#음을 연주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고(스토버 버전의 망고레 악보에는 물론 F#음으로 기보되어 있지만 이는 출판 과정에서 내츄럴 기호가 누락된 것으로 보입니다) 템포 변화가 불필요할 듯 싶은 곳의 과잉 표정이 혹자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요. 감상자의 주관도 제각기 다 다르니 연주자에게 만인을 위한 표현을 하라고 주문할 수는 없겠지요.
바흐의꿈님께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자동차 안에 방향제를 둔 어느 여자가 남친에게 "냄새 좋지?"라고 묻자 남친이 "방귀 꼈냐?"고 답변합니다. 그녀의 '냄새 좋지?'라는 말에는 '너를 위해서 준비했다'는 숨은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냄새 좋지?'의 의미를 이렇게 받아 들입니다. '방귀뀌고 냄새 좋냐고 물을 정도로 뻔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거냐.'라고.
상황,태도,주관,마음가짐에 따라 의미가 제각기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우는 어떤 현상에 대한 토론을 할때 의사소통에 대개 실패하게 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의미가 쌍방에게 공유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의미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정확하고 공통적인 정의가 내려져야 혼돈이 없을 겁니다. 주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관점은 배제되는 것이 올바른 의미전달을 위해 좋습니다. 음악 자체는 詩적인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지칭하는 말에 은유,비유등이 개입되면 의사소통에 방해만 될 뿐이므로.
그러므로 박자와 리듬의 교집합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애써 박자와 리듬을 상호 배타적, 이항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위의 연주는 삐에리가 박자 감각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한 것임엔 틀림없구요.
(박자 감각이 없다면 어찌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전반부의 고음역에서 F음이 아닌 F#음을 연주한 것은 이해하기 힘들고(스토버 버전의 망고레 악보에는 물론 F#음으로 기보되어 있지만 이는 출판 과정에서 내츄럴 기호가 누락된 것으로 보입니다) 템포 변화가 불필요할 듯 싶은 곳의 과잉 표정이 혹자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할 수는 없겠지요. 감상자의 주관도 제각기 다 다르니 연주자에게 만인을 위한 표현을 하라고 주문할 수는 없겠지요.
바흐의꿈님께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말씀을 하셨는데.....
좋은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 자동차 안에 방향제를 둔 어느 여자가 남친에게 "냄새 좋지?"라고 묻자 남친이 "방귀 꼈냐?"고 답변합니다. 그녀의 '냄새 좋지?'라는 말에는 '너를 위해서 준비했다'는 숨은 의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냄새 좋지?'의 의미를 이렇게 받아 들입니다. '방귀뀌고 냄새 좋냐고 물을 정도로 뻔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거냐.'라고.
상황,태도,주관,마음가짐에 따라 의미가 제각기 달리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경우는 어떤 현상에 대한 토론을 할때 의사소통에 대개 실패하게 됩니다.
커뮤니케이션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의미가 쌍방에게 공유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의미를 지칭하는 용어에 대한 정확하고 공통적인 정의가 내려져야 혼돈이 없을 겁니다. 주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관점은 배제되는 것이 올바른 의미전달을 위해 좋습니다. 음악 자체는 詩적인 측면이 있을지 몰라도,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지칭하는 말에 은유,비유등이 개입되면 의사소통에 방해만 될 뿐이므로.
그러므로 박자와 리듬의 교집합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애써 박자와 리듬을 상호 배타적, 이항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