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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계 인물 小史 표지.hwp 기타계 인물 소사-20190129 수정 (1).hwp


기타계 인물 小史 (강우식 초고 / 최동수 가필. 2019년 1월29일)

 

아래 내용은 대략 2000년까지 기타계에서 활동하던 분들 중에 이미 잊혀젔거나 잊혀질만한 분들의 기록이므로, 현재 기타계에 잘 알려진 분은 거의 제외하였습니다.

어언 80세가 되어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그동안 듣고 보았던 얘기들을 간추렸으나, 오류나 누락된 사례도 있을 터이니, 추후 다른 원로들과 현역 여러분의 검증을 거처 수정 내지 보완할 것을 제안합니다.

 

[차례]

1. 여명기黎明期 ( ∼ 1945 ∼ 1959 )

가) 최초의 기타연주회

나) 기타 연주회의 태동胎動

2. 초창기初創期(1959년 ∼ 1974년)

가). 매스 미디어

나). 이어지는 기타 연주회

다). 기타 콩쿠르 대회

다). 음악협회에 가입되다

라). 연주가 및 제작가들

3. 개화기開化期 (1975년 ∼ 2000년)

가). 산업화와 대량생산

나). 외국 연주가들의 내한

다). 국내 기타인

라). 해외 기타인

4. 발전기發展期(2000년 이후)

가). 미래에 대성이 촉망되는 여류연주자

 

1. 여명기黎明期 (...1945 ∼ 1959 )

가). 최초의 기타 연주회

우리나라 최초의 기타 연주회는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7년에 서울 부민관(현 세종로 덕수궁 옆 서울시의원 회관)에서였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타연주자 정세원씨의 독주회였다.


정세원鄭世源 (1926? 재 북한, 작고)
그는 재령갑부의 자제로 일본 유학시절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첼로를 닮은 미야모도 긴빠찌宮本金八 작 비욜론 모델이 나왔을 때 아무도 그 기타의 뚝심을 당해내지 못했다.
이는 일반 기타 형태가 아니고 바이올린처럼 스프루스 앞판과 메이플 뒤판이 곡형이고,
안쪽에 고이는 기둥(魂柱)이 있었다.

기타수리로 세고비아의 찬사까지 받은 제작가 미야모도는 그러나 허탈해 있었다.
이때 정세원씨가 나타나 그 기타로 타레가의 호타, 아리랑 변주곡, 등을 연주하자 방중이 모두 놀랐다.
미야모도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기타를 증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세원이 오히려 높은 가격(1,100엔)을 지불하자 감격한 미야모도는 후에 [평화平和]호라

이름 지은 명품을 그에게 기증하였다.
이 악기에는 “정세원씨를 위해 이 기타를 제작하였다”고 쓰여 있다.
평화호는 정세원씨가 소장하고 다른 한 대는 김인걸씨를 거처서 이성룡씨에게 넘겨졌다.
그는 서울 부민관에서 2회나 독주회를 하면서 자신의 자작곡인 ‘아리랑 환상곡’도 연주하였다고 한다.
또한 비제의 가곡 ‘진주잡이’도 트레몰로 곡으로 편곡하였다는데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다.
일본의 [Asian Evening]의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출연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간 그는 명망 있는 연주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연세대 고 황병기 교수와 경희대 고 김동진 교수가 모두 동기생들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남포 연주 후 1963년경 병석에 누워 사후에 소장했던 기타를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그 후 자세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조석근, 임창년, 박종문, 황병갑 등이 그의 제자였다.


이종석李鍾碩 (1917 - 2014)

5년전까지도 기타협회의 고문을 역임한 기타계 최고령(97세)이셨다. 도쿄의 미조부찌 고고로溝淵浩五郞에게 수학하였다(미조부찌의 기타 교본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채택 사용되었으며 타레가 연주법과 그의 편곡은 매우 아름답다). 그가 소장했던 일화 100엔의 기타는 엄청난 큰 액수였다. 당시 일본인들도 100엔짜리 지폐는 반져보기 힘든 거액이었다. 퇴계로에 살다가 전쟁피난에서 돌아와 보니 그의 기타는 분실되고 없었다. 후에 광주로 옮겨 미공사 美工社를 경영하다 불의의 사고로 손가락을 잃어 연주는 못하게 되었다. 이응주씨와 합작하여 기타협회 엠블렘을 공동 디자인하여 휘장을 만들었다. 유명한 연주가 안춘열을 배출하여 쏘르의 앙카르주망 2중주를 최초로 공연했다. 후에는 전남대학교 기타반을 지도하여 여려 차례 전국 합주 콩쿠르 우승을 시킨 지도자이다. 김태수, 양영근, 변보경 등의 우수한 제자들을 낳게 했다.

 

김인걸金仁杰(1921? -1978?)

우리나라 최초로 기타를 배웠고 초대 한국기타협회장을 맡았으며 한국배우전문학원장으로 우리나라 연극영화 배우를 양성 배출시킨 분이다. 그는 평양이 고향이고 일본 도쿄에 유학하여 오구라 슌(小倉俊)을 사사했다. 사진(001)은 외국인들이 끼여 있어 내놓지 못하고 있다가 1973년경에 공개했다. 당시는 냉전시대여서 이북에 있는 사람의 사진 공개를 꺼려했었다. 그는 비제의 진주잡이 같은 서정적인 곡을 좋아했고 그날은 기타 2중주도 선뵈었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 명동에 기타학원을 열고 후진양성에 힘썼으나 해방 후의 혼란기,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상태에서 경영이 어려워서 한국배우전문학원을 충무로 영화가에 차렸다. 유현목 감독을 강사로 좋아했고 신성일 엄앵란 등의 스타들을 배출하였다.

기타인과의 교류를 즐겼고 항상 친절한 격려를 아끼지 아니했다.

김인걸씨는 당시 기타인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엄상옥 공방도 자주 찾아가 후배들의 연주하는 것을 듣고 즐겼다. 그는 평생 손톱을 길러서 자신이 기타리스트임을 잊지 않았다. 연주회 때는 무대 뒤에까지 와서 조언을 했고 때로는 관객석의 의자 정리까지도 서슴없이 하면서 후배들을 격려하는 겸손함이 몸에 배인 분이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제2악장을 암보하여 연주할 수 있다면서 즐거워하였다. ‘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이다’ 라고 말한 베토벤의 말을 잘 인용했으며, 언론잡지사 기자들과 늘 가까이 했으며 예술인, 문인들과도 친했다.

호방한 성격의 정세원씨와는 달리 김인걸씨는 매우 예의바르고 섬세한 성격이었다. 그의 소장 악기인 스페인제 ‘발렌시아’를 친구가 2개월 기한으로 빌려간 후에, 제3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도 차마 자기 것이라고 반환을 요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주말 등산을 즐겼는데 환갑을 지나서는 길에 자란 풀도 함부로 밟지 않고 벌레도 생명이 있으므로 잡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1970년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가 양성한 배우들도 눈치 채지 못하게 위암으로 생을 마쳤으며 카나다로 이민간 자식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임창년林昌年 (1926? - 작고)

기교가 뛰어나고 섬세한 음색과 음악의 아름다운 표현력은 듣는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동양의 세고비아라는 칭찬을 받았으며 그의 음악은 완벽했고 미스 터치를 볼 수 없었다. 우교순, 홍종극 등 우수한 제자들을 길렀고 엄태흥 조무광 등이 그를 추종했다.

그는 아포얀도 주법으로 탄현하되, 손가락 끝이 다시 U 자로 되돌아오면서 알 아이레의 음색을 동시에 나도록 찍어 누르는 연주법은 그만의 수행으로 익혀서 누구도 따를 수 없었다.

김인걸 회장도 그의 연주를 높이 평가했고 ‘보리피리’ 작곡가 조념은 기타곡을 헌정했었다.

그의 연주기법은 비올론 기타의 소리를 효과적으로 내도록 하는 훈련에서 나온 결과로 추측되며 악보의 철저한 분석 등 그의 탐구정신은 모든 사람을 감동시켰다.

 

나). 기타 연주회의 태동胎動

1959년 11월 29일 프란시스코 타레가 탄신 107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 우측 당시 수도육군병원 강당에서 최초로 합동 기타연주회가 열렸다, 차가운 날씨였으나 처음으로 기타 연주회에 참석한 청중들의 환호는 대단하였다. 원형계단식으로 된 관객석은 높은 곳에서 듣게 되었으므로 소리가 잘 울렸다. 청중들 중에는 언론기자, 제작가, 악기점 관계자들도 많이 참석하여 관심을 보였다. 출연자는 김인걸, 황병갑, 하희영, 박종문, 한세남, 강우식 등이었으며 독주곡 이중주곡 외에 4중주로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춤 등이 연주되었다. 이렇게 훌륭한 음악회를 대형극장에서 하지 않았느냐고 의아해 한 사람들도 많았다. (그 후 을지로 입구 원각사에서 공연계획이 있었으나 화재로 인해 무산되었다).

   

이성용李晟用 (1928 - 작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7년 부민관에서의 연주회 후에 정세원씨가 문하생을 모집하므로
서대문 인근 정세원씨댁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 2층에서 정세원씨와 조교 김인걸씨를 사사하였다.
그는 ‘1937년작 미야모도 긴빠찌宮本金八’ 기타를 최후까지 소장하였다.
그는 많은 기타 악보를 소장하여 기타인들에게 제공했으며, 성균관대 기타반을 지도하는 한편
이응주, 하희영과 합주운동을 일으켰다.
미국 국제원조처, 애견협회이사, 임창년의 후견인, 음악인과의 교류, 법원 출입 등 다방면에 달인이었다.
이희진, 한광석, 박석환 및 성균관 대학의 성음회원 등이 그의 제자이다.



 

이응주李応宙 (1926? - 작고)

제3,4,5대와 제11,12,13대 기타협회장을 장기간 역임한 분이다. 해방 후에는 인천에서 기타학원을 운영하다 서울에서는 독립문 근처와 신촌에서 후배를 양성하였다. 이성용, 하희영과 중주 활동 및 후에 서울대 화현회, 이화여의대 기타반을 지도했다. 그는 타고난 예술가요 한량이었다. 그의 ‘토레스를 찾아서‘라는 전국 방랑기는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였다. 서예書藝에 조예가 깊고 문필文筆도 뛰어나서 금수현(지휘자 금난새의 부친)이 운영하던 월간음악지의 편집을 돕기도 했었다.

 

박승천朴勝泉 (1927? 작고)

불광동에 악기점과 기타학원을 차리고 제자양성에 힘썼고, 한때는 서울 역전에 맥주홀을 열어 기타 스테이지도 시도했다. 그의 딸 박혜순 양은 파리에 유학하여 사다노프스키 밑에서 수학하고 일본 오사카, 서울 연주회도 가졌었다. 1963년경 파리국영방송(ORTF) 콩쿨에 작곡부문으로 입상한 박두별(Dubeli Park, Nebulus 星雲)과도 가까워 초청하였다

 

하희영河喜榮 (1927? 작고)

김인걸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고 서울 시청 공보계장으로 재직하면서 공무와 기타협회 행정을 도맡아 했었다. 스페인 세레나데와 알함브라의 회상이 일품이었고 73년 합동연주회 때는 현악사중주들과 비발디협주곡을 최초로 연주했다. 평소 온화한 성격으로 대인관계가 좋아 엄태흥 등 많은 제자들을 길렀고 이응주, 이성용 등과 합주팀을 구성하고 재야在野의 임창년, 제작의 엄상옥, 이완근씨 등과도 교류하였다.

 

배영식裵永植 (1927 - 작고)

부산을 거점으로 많은 음악활동의 공로로 부산시 문화상을 탔다. 일본의 국제기타행사에 참여하였고 베렌트와도 최초로 사귀었다. 그가 1962년 국립극장에서 연주할 때 사용한 음향반사판(Horizondo)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사용한 유일한 시도였다. 많은 기타교본과, 걸출한 제자(김금헌, 조재경) 등을 배출하였고 아들 배학수도 뛰어난 연주가이고 제작가이다.

 

이표李杓 (1927 -작고?)

일본 도쿄 유학 시 사사끼에게 수학하고 함경도를 거쳐 다시 서울로, 홍익대와 신촌을 거점으로 제자 양성과 기타제작도 하였다. 그는 후에 독립운동 경력을 인정받아 유공자로 추대되어 성남유공자 아파트로 이주하였다.

 

박종문朴鍾文 (1927 - ?)

마도로스 출신으로 정세원씨를 따라 다니면서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등을 즐겼고 이득춘 등 제자를 두고 앙상블에도 자주 참여했다.

 

황병갑黃炳甲 (1928?, 미국 뉴욕 이민, 작고)

그는 기타뿐 아니라 콘트라베이스의 선구자였다.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여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보낸 분이다. 벤조 마림바 등 만능 연주자였고 한강이 얼면 의례히 스케이트를 즐기면서 대동강에서 스케이트 타던 이야기를 하곤 하였다. 무학성 카바레라는 밤무대에 정기 출연했고 그가 합류하면 앙상블이 저절로 흥이 나는 정평이 있었다. KBS 교향악단과 최초로 김희갑 편곡의 타레가의 카프리치오 아라베 협주를 하였으며 시노폴리의 스페인 세레나데도 연주했다. 당시 인기 있는 라디오 프로인 수요일 밤의 향연에 계속 출연했고 유일했던 용산에 있는 미군의 AFKN TV 방송프로의 핵심 연주멤버였다. 미국 뉴욕에 이주하여 카프테리아에서 연주생활을 하였다고 들린다.

 


    

한세남韓世男 (1929 - 작고)

함흥에서 교사를 하다 형제가 월남했는데 러시아어에 능통했고 기타음악에 관한 이론서적을 가장 많이 수집하여 연구를 쌓았다. 박자 관념이 철저하고 합주, 합창지도에 능했다. 매사에 적극적으로 활동을 하였고 동양 FM 방송, 국립공보관 문화센터 기독교 방송국 후원으로 기타반을 수백명의 제자들을 양성했으며 후에는 묵호 고등학교에서 기타 전문반을 양성하다가 과로로 뇌출혈을 일으켰다. 병석에서도 해외교류 등 열의가 대단했다.

 

안춘열安春烈(1930-1975?)

이종석씨 제자로서 가장 뛰어난 연주자로 전쟁피난 8백리 길을 기타를 자전거에 매달고, 때로는 끌고 생명을 걸고 기타를 놓지 않았다. 홍난파의 조카 홍지유씨와도 교류하며 많은 연주활동과 방송활동을 하였다. 그는 단파방송을 청취하며 외국의 연주 방송을 참고하여 밤을 새워가며 연구하였다. 그가 기독교방송에서 연주한 작품이 만돌린 합주를 포함해서 2시간이 넘는 자료가 남아있다.

    


강우식姜佑植(1932 - 현 기타협회 고문)
제6,7,8대 기타협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신경내과 박사로 군의관 재직 시 수도육군병원에
음악실을 개설하여 합주단 활동을 지원하였다.

국내에서 안춘렬씨에게 입문하였고,  미국에서는 소포클래스 파파스를 사사하였다.
일본 음악가 고구네 고지러小船行次浪의 기타 화성학을 김명표씨와 공동번역 하였다.
지그프리트 베렌트의 내한 공연시 열과 성을 다해 영접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경희대 음대의 한성석 교수가 작곡한 야상곡을 초연한 적도 있다.

그는 세계적인 신품 명기의 수집가로 한때 30여대의 소장악기를 본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 중에는 이그나시오 플레타 1세가 있다.
그는 오디오 수집가로 일본의 오디오 연감에도 소장품이 소개된 적이 있다.
한편 그는 詩,書,畫에 뛰어난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3∼1791)의 9대손으로 백여 점에 달하는
표암의 유작 중 거의 절반을 소장하고 있다.


 


   김용호金龍湖 (1933 - ?)

일본에 유학하여 작곡을 전공하고 제9,10대 기타협회장을 역임했다. 그는 기타곡 뿐만아니라 특히 불교예불찬가 등 많은 작품을 남겼었다.

 

그 외에 일본 유학생으로 해방 후에 소식이 끊겼으나 나리다 도시오라는 일본명으로 방송계에서 활약한 성리진成利鎭,  이채진, 박옥규와 프랑스 유학시절에 기타를 익힌 박성종 신부 등이 있다.

 

 

2. 초창기初創期(1959년 ∼ 1974년)

기타협회가 결성되자 지금까지 개인 활동으로 합주, 제자 양성 등의 분산되었던 힘이 합쳐져서 기타계는 활발해지기 시작했고 사회적인 호응이 빨리 왔다. 전후 복구와 산업사회로의 전환기를 맞아 직장에서의 복지사업으로 기타 동아리가 생겨났다. 학원가의 한일수교 반대 데모 등의 억제책에 대한 반응으로 대학가에도 기타 동아리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가). 매스 미디어

KBS 방송은 당시 수요일 밤의 향연 같은 무게 있는 프로그램에 기타 합주를 자주 등장시켰다. 김희조 편곡 황병갑 독주와 KBS 교향악단의 협주로 타레가의 아라비아 카프리치오 시노폴리의 세레나데가 연주되었다. 문화방송은 기타합주 프로를 매주 가졌으며 뉴스나 토크 등의 사이에도 간혹 선을 보였다. 당시 유일한 TV 방송이었던 미군방송 AFKN에도 등장했다. 이어서 동양 FM의 기타강좌와 CBS의 수십명 규모의 강좌가 있었다. 한국일보 홀에서의 연주나 콩쿠르 행사는 홍보효과도 컸다. 조선일보의 사회. 문화 기사나 경향신문의 베렌트 초청 등은 클래식 음악으로는 매우 드문 행사였다. 음악세계의 기사에도 취재되었고 70년에 나온 월간음악에는 매월 기타강좌와 부록으로 기타 악보의 발행도 있었다.

 

나). 이어지는 기타 연주회

1973년 서울 명동에 있는 국립극장에서 기타협회 합동발표회를 열었을 때, 하희영씨의 서울 현악 4중주와 Vivaldi Dm Guitar Concert는 백미였다. 한편 이로부터 제2세대들이 대두되어 눈부신 발전을 예고하였다.

 

다). 기타 콩쿠르 대회

기타음악의 저변 확대와 신인 발굴에 필요한 콩쿠르 계획은 당초에는 난제가 많았다.

제1회 기타 콩쿠르 때는 응모자가 드물어서 경연자를 찾아 참여시킬 때까지 임원들의 노력은 땀으로 얼룩졌다.

 

제 1회 기타 콩쿠르 (1972년)

- 1등 : 조재경(여 22세)

유달리 명랑한 톤과 트레몰로가 아름다웠다. 후에 후진양성과 외국연주가들의 스폰서 사업, 국낸 최초의 부부2중주(오세춘-조재경 )로 전국 연주, 지금은 미국 LA에 거주하고 있다.

- 2등 : 변성용(남 11세)

초등학교 5년의 어린나이에 모차르트-소르의 마술피리를 연주하여 청중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소년부가 있었다면 단연 그가 1등감이었다. 그는 재능을 발휘하여 깁슨의 파이어 핑거보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미8군의 쇼무대에 진출해서 클래식을 떠나 아쉬움을 샀다.

- 3등 : 허병훈

스페인 유학을 마치고 귀국 후 서울대 강사 등을 거쳐 후진양성에 정진하고 있다. 한편 화가로도 등단하여 인사동 화랑에서 작품전시회를 격년으로 열고 있다

 

제2회 기타 콩쿠르(1973년)

<독주부>

- 1등 : 김윤선(남 23세)

- 2등 : 박병학(남 18세)

- 3등 : 없음

<중주부>

- 1등 : 이영옥(여 20세), 문옥희(여 20세)

- 2등 : 유민선(여 19세), 조용화(남 19세)

 

그 후 매년 콩쿠르 대회를 통하여 많은 인재들이 배출되었으니, 제정민, 김홍천, 신응철, 오승국, 이순식, 배성학, 김윤중, 이명근, 송형익, 신인근, 이성우, 윤종태, 김성진, 장승호, 신춘승, 김해경, 김주영, 노성민, 노유식, 안승범, 나영수, 김규태, 최해건, 신현수, 안형수, 김남중, 최현규, 이미나, 방효용, 강태경, 양승만, 윤원준, 배장흠 등이다

콩쿠르 우승을 계기로 외국 유학 등 기타연주에 생애를 거는 연주가도 많이 생기고 있다.

 

라). 음악협회에 가입되다

음악평론가협회 회장 김형주 기타협회 고문이 발의하고, 바이올린계의 대부 계정식 박사, 음악협회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한 조상현 교수 등이 유학시절 ‘성악은 낮의 음악이고 기타는 밤의 음악’이라고 배웠다며 클래식 기타협회를 음악협회 분과위원회로 가입시키는데 크게 도움을 주었다.

 

 김형주金亨柱 (1925 - 현, 한국기타협회 고문)

우리나라 아니 세계적으로도 그만큼 음악회에 많이 다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는 대표적인 음악평론가로 한국기타협회 고문직을 수락한 후에 음악평론의 본업 외에 성음레코드에서 최초로 합동 취입한 음반을 발행했다. 서울음대의 강석희, 백병동 교수, 이화여대의 황병기 교수, 중앙대의 이유선 교수 등이 기타곡 작품도 발표하고 연주회에도 초청하였다. 황병기 교수는 가야금 연주와 작곡뿐 아니라 이화여대에 기타과 설립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수많은 기타 연주평을 기고하기도 하였다. 그의 부단한 열성은 지금까지 8권 째의 음악평론 전집을 출간하였고, 최근 기타협회 총회에도 참석하여 지도와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각 대학에 출강하는 한편 한국음악협회 부이사장, 한국작곡가회 회장,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장, 한국국민음악회 회장, 한국음악평론가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많은 작품과 저서가 있다

 

 

마). 연주가 및 제작가

김영철金永哲 (1940 - 현재 )

바리톤 성악가인 그의 경쾌한 그라나도스 무곡 연주는 청중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는 후에 이탈리아 유학을 마치고 안동대 음대학장으로 재직하였다. 현재 Bella Voce 오페라단을 조직하였고 얼마 전에는 대한국인 안중근 오페라를 리드했다.

 

김금헌金琴憲

배영식씨의 제자로 연주에도 뛰어나고 앙상블이나 지도력이 대단하여 연주가협회를 새로 조직하여 젊은이들을 규합 발전시켰다. 많은 기타교본이나 곡집을 발간하고 외국연주가들의 초청도 활발하였다.

 

이낙경李洛京

그의 형(이정남 작고)과 포르테아 dance fortea의 sonata 2중주를 필두로 울산 현대 상선에서 근무 증 영국인들과 사귀면서 Guitar도 새로 구입하고 문화 활동을 하다가 카나다로 이민갔다. 그의 누이 이원경 아나운서는 방송국에서 활동하며, 춘천 원주지역에 많은 후계자를 양성했다.

 

한광석韓光錫 (1931 -2008)

음악실 PD를 하면서 음악적 소양을 기르고 이희진 등을 지도했다. 그의 동생 한성석은 중앙대 작곡과 교수로 기타곡 야상곡 (Nocturn)을 현대 화성법으로 작곡했다. 춘천에서 후진 양성에 힘쓴 분이다

 

김명표(제14,15대 회장), 김종만(제16대 회장, 작고), 성영삼(제17대 회장), 김정윤(제18,19대 회장), 송형익(제20대 회장), 에 관해서는 [부록]으로 대신 한다. (추후 보충 설명 요함)

 

엄상옥嚴相玉(작고)

우리나라 기타제작의 원조이다. 요즘말로 국가지정 무형문화재에 해당하는 소목장 기능인으로 일본사람들도 놀랄 정도로 기타수리와 제작을 하였으며 여러 형태의 기타를 창안 제작하였다. 홍익동 그의 자택공방에는 기타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고(초창기의 기타인들은 모두 그의 사랑방 손님이었다), 베렌트, 파파스 등에게 헌정한 기타는 그들의 컬렉션 리스트에 들어있다. 엄태흥, 엄태창 두 형제는 가업을 이은 제작가로서 국내외 전시회에 출품하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완근씨는 엄상옥씨를 도와 나일론 줄 개발에도 도움이 되었다

 

신경철申景徹

신경철씨는 일본 나고야 현악제작과를 수업했으며 우리 국악기의 제작에 많은 공훈을 세웠으며 그의 12프렛에서의 접철식 기타는 싸일런트 기타와 대비되는 독특한 아이디어였다.

 

김진영金進榮

그는 세고비아 기타라는 상호로 한국의 기타산업을 주도하여 기업인으로 성공한 사람이다. 중국에서도 세계적 규모의 수출 공장을 일으켰으며 국내에서 생산된 세고비아는 지금도 브랜드 가치가 높다.

 

문위윤文胃尹

서울 음대를 나와서 기타 제작에 손을 댄 문위윤씨는 유일한 음악 학사 제작가로서 오봉기타로 자부심이 대단했다.

 

오혁환吳爀換

가야기타는 독특한 음색으로 그의 독특한 손재주에서 나온(이주호 바이올린 제작가)의 기술이 접목된 결과이다. 이밖에 대구의 콜롬비아 기타 ,광주의 가야금 제작가 이전우가 오동나무를 앞판으로 만든 기타는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최동수崔東秀 (1939 - 현 기타협회 고문)

그는 건축기술사로서의 본업이 있는 관계로 시종일관 백의종군하는 자세로 기타계를 후원하였다.

지그프리트 베렌트가 매3년마다 독일 문화사절로 내한할 때 1971년부터 기타연주 지망생들의 워크샵을 지도하여 수준향상을 도왔다. 워크샵에는 여러 지망생들이 참여했는데 호세리가 기억에 남는다. 어려웠던 시절에 지그프리드 베렌트가 동반한 민요가수 벨리나, 전위가수 배우 클라우디아 및 타악기 전문가 지그프리트 핑크 일행을 체류기간 내내 아침부터 하루 종일 사비(私費)로 영접하여 기타협회의 명예를 선양한 일화가 남아있다. 이에 대한 답례로 베렌트 소장한 기타를 선물 받았다. 이는 ‘야마하 기타’의 감독 이자끼씨가 4대를 제작하여 나루시소 예뻬스, 줄리안 브림, 존 윌리암스와 베렌트에게 각각 헌정된 기타 중의 한대이다.

그는 해외 근무하는 동안(18년) 기타제작에 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였다. 조기 은퇴 후에는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힐즈버그에 있는 아메리칸 기타스쿨과 스페인 꼬르도바의 기타페스티벌에서 명장 호세 로마니요스의 4주간에 걸친 마스터 클래스를 수료하였다. 그 후 전업으로 기타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년간 2∼3대씩 소량 제작에만 몰두하고 파는데는 관심이 없어 상당수를 증정하였다. 말하자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제작가였다 자서전 ‘포플러나무 너머에’와 기타제작에 관한 ‘기타 그 모든 것’을 저술하였다.

그는 2017년에  은퇴하기까지 총 54대의 화려한 장식의 악기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국내 초유의 줄감개가 몸통에 있는 여행용 기타, 지팡이 기타, 총기타,  자개상감 기타 3대,  

한지 기타(Papier Mache) 2대,  리라 기타 4대와 비웰라 기타 2대가 있다


 

 

3. 개화기開化期 (1975년 ∼ 2000년)

문풍인의 스페인 유학을 시작으로 허병훈, 유민선, 배철휘, 송형익, 이성우 등이 해외유학을 다녀왔고 198?년 피어선 신학대학(현 평택대학의 전신)의 기타과 설립을 필두로 우리나라의 기타계는 아마추어의 경계를 넘어서 프로의 세계로 발돋음 하게 된다. 유학생들이 귀국독주회는 물론이고 매년 정기 연주회, 발표회와 연구보고 등 값진 실적들이 날로 쌓여갔다.

한국기타협회의 활동범위도 점점 커갔다. 각 지방에 지부가 설치되고 매년 열리는 전국 콩쿠르에는 새얼굴들이 등장했다. 대학입시를 위한 학원교육도 생겨났고 외국 콩쿠르에도 많이 참가하였다. 나르시소 예페스는 3천석의 세종문화관에서 마이크 없이 기타연주회를 이끌었으니 상상도 하지 못할 충격이었다. 쿨트 마주어가 트란스 잡음이 난다하여 지휘를 멈추고 있던 반대의 정경이 펼쳐졌다. 전문음악당도 없던 1960년대를 돌아볼 때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호암 아트홀에서 줄리안 브림의 연주가 있을 때 높은 수준의 청중 덕에 최상의 컨디션을 찾았다고 좋아했다.

 

가). 산업화와 대량생산 및 수제기타의 등장

가문비나무과에 속하는 스프루스 (Spruce)는 피아노 향판에 쓰인다. 수도 피아노사는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여 부산물로 나오는 스프루스 재료를 기타의 양산에 사용했다. 이어서 영창, 삼익, 스즈키 피아노사도 같은 방식으로 다량생산을 하여 한때 붐을 이루었으나 오래 계속되지는 못하였다. 그런 영향으로 기타의 가격이 절하되기 시작하여 대중악기로 보급되었다. 김진영의 세고비아 기타는 다량생산을 하는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고 지금도 생산을 계속하고 있다.

1960년경에 독일제 기타 칼 회프너(Karl Höfner)가 수입되어 수제기타 뿐만 아니라 공장제 기타도 성능 좋은 악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황병갑의 KBS 협연에도 회프너가 연주되었다. 기타 줄도 어거스틴(AUGUSTINE)을 선두로 종전의 가트(Gut)에서 튼튼한 나일론 줄로 바뀌기 시작했다. 부산 자갈치 시장까지 찾아가서 낚시 줄을 골라 기타에 쓰던 시절은 지났고 피라스트로 등 양산 기타에 쓰이는 나일론 줄이 널리 보급되었다. 거금을 들여야 구입이 가능했던 악기가 대량생산 덕택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보급되었다. 직장이나 학교 등 단체구입에 사용되는 반수제나 OEM으로 생산된 기타 중에도 간혹 잘만 고르면 꽤 우수한 기타를 고를 수 있었다. 기타의 본고장인 스페인에서도 명문 라미레스(Ramirez)가 콘서트 모델 외에 보급형(Estudio)이 나왔다. 일본의 야마하나 한국의 세고비아에서는 공장 일각에 클래식 생산 파트를 분리 운영하는 곳도 생겼다. 앞판은 스프루스나 씨더 및 옆, 뒷판 재로는 로즈(Rose wood)외에 하카란다. 메이플도 수입되기 시작하였다. 목재 전문가로 유선묵, 수출입종합상사의 김상철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지금까지 국내에 자생하는 소나무재를 사용하던 엄상옥, 신경철, 대구의 콜럼비아 등이 선진국 수준의 재료와 제작방식을 따르기 시작했다. 당시 알려진 기타제작가는 엄상옥(다이아몬드 기타), 김진영(세고비아 기타), 문위윤(오봉 기타), 임석용(뉴-스스기 기타), 은재표(스스키 그랜드 기타) 이재형(킹스턴 기타), 오혁환(가야 기타), 박중규(수도 피아노), 이완근(제노아 기타), 강두원(원음 기타) 등이 있었다. 1990년 전후해서 여러 대학에 기타전공학과가 개설됨에 따라 수제기타를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개인 공방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제작한 기타로 국제기타 콩쿠르에서 입선되는 연주가도 다수 생겼다.


기타제작가 유이치 이마이, 가즈오 사또, 마사노부 마츠무라 등의 왕래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토마스 험프리, 로버트 럭을 위시해서 안드레 마르비, 앙겔라 발트너, 스테판 뢰슬러와 헤르만 하우저 3세와 4세 등의

기타제작 마스터클래스도 개최되어 수제 기타제작계도 수준향상이 되고 있다.


 

 


나). 외국 연주가들의 내한
1957년 스페인 알레그리아스 민속무용단에 두 사람의 플라멩코 기타리스트가 따라 왔었다.
1965년 서독의 지그프리트 베렌트(Siegfried Behrend)는 민요가수 벨리나를 동반한 클래식기타 연주회가
명동 국립극장에서 처음 열렸다.
독일문화원 (Goethe Institut)의 문화대사로 매3년마다 한국을 방문하는 그는 연주와 워크샵 뿐 아니라
전위음악을 클라우디아와 함께 공연했다.
지그프리트 핑크(Fink)의 타악기 전문가와 크루거, 트뢰스터 등의 연주가도 함께 공연했다.


미국에서는 마누엘 바루에코, 크리스토퍼 파크닝, 페페 로메로, 찰리버드, 로버트 루스 등이
미국문화원의 후원으로 왔다. 그 후 버지니어 루케는 개인자격으로 내한하여 공연하였다.
이후의 연주자들은 공연기획사를 통하여 내한 하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장 피에르 쥬메와 사다노프스키 등이 왔고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매주 첫날을
기타협회 모임을 위하여 지하 영화관을 개방해주었다.

영국에서는 줄리안 비잔틴, 존 윌리암스 등이 왔으며 줄리안 브림의 호암 아트홀 연주는 큰 감동이었다.

브림은 김포공항에서 한강변을 따라 신라호텔에 이르기까지 손가락을 비비면서 습도가 50-60하고
세면서 공해정도까지 느끼보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1950년에 군에 입대했을 때 처음에는 한국근무를 지원하려다가 한국의 기후가 여름 겨울의
건습 온냉의 차이가 심하다고 하여 기타연주에 지장이 있을까봐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호암 아트홀에서의 그의 연주는 젊은 시절 그의 화려한 기교가 다시 살아났었다.
청중들의 환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악은 청중과 연주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라고

스페인의 나르시소 예페스는 세종문화회관의 큰 홀을 마이크를 쓰지 않고 생연주를 하였다.

그밖에 오스카 코스타(우루과이), 알리스 아츠트(영,) 로리 랜돌프(독),
외에 다수의 일본 연주가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다). 국내 기타인

문풍인

2010년 아까운 나이에 작고했지만 그의 공로는 피어슨대학(현 평택대학)에 기타과를 설립하여 피어선파로 일컬을 정도로 많은 제자 후배들을 양성한 공로가 컸다.

 




 

호세리

플라멩코 기타리스트 호세리는 무용가인 부인 주리와 스페인에서 플라멩코 교습소를 20여년간 운영하다가 귀국했다. 호세리는 불모지인 국내에 플라멩코 보급의 기회를 열고 평택대학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오해권

그는 최초의 카네기홀에서의 기타연주를 가졌으며 제28대 한국기타협회 윤원준회장의 스승중 한분이다.




 최병택  (1957 - )
치과교졍전문의인 그는 83년 2월 정재동 지휘 시향의 <범세대 연주회>의 공개 오디션을 통하여
줄리아니 협주곡 전악장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국내 최초로 협연하였다.
이로써 국내 연주사에 큰 획을 그었다.
93년 일본 교토 초청 음악회에서 연주한 비발디 협주곡과 줄리아니 협주곡 등을
수록한 CD를 SK에서 출반하였다.
현재 클래식과 플라멩코 연주를 병행하고 있다

 

라). 해외 기타인

특히 LA에는 많은 한국인들이 모여 살며 한국인 기타 합주단도 운영되고 있다.

여류 연주가 김인자님이 LA한인 기타협회 회장을 맏았다.

 

유경(Yoo Kyung)

한국인 최초로 보스턴의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기타전공으로 입학하였다.

1984년에 졸업연주는 마우로 쥴리아니의 그랜드 소나타와 바흐의 BWV 996 등이었다.

또 NEC Honor's New England Chamber music competition에서 백병동 교수의 기타, 첼로, 플루트 삼중주 “소리”로 입상하여 NEC Jordan Hall에서 다시 연주하였다.

졸업 후에는 취미를 살려 Tufts 대학에서 경제와 수학을 전공하고 Software Engineer 일을 하는 대신 수시로 연주회에 참가하고 있다. 김정미와 박윤관을 사사하였다.

 

박윤관

뉴욕에서 연주활동을 하고 있으며, 악기교류, 악보 수집과 편곡에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고급 기타재료도 가끔 보급하였다. 찬송가 CD 2매를 출판하였다.

 

송무정

그는 88올림픽 때 해외봉사단으로 통역을 하며 기타재료나 악기 구입에 힘을 써주었다.

 

조국건

그는 특히 영어,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 등에 능통하여 역사자료와 악기 수집 그리고 2009년에는 김인자씨와 2중주를 조직하여 기타음악 300년사의 주제로 국내 각지에서 고악기 전시와 강연을 가졌다.

 

4. 발전기發展期(2000년 ∼ 현재까지)

가). 지도자 육성

창립 40여년의 역사와 전국 50여개의 지회, 지부를 가진 기타인의 단체로 나날이 늘어가는 기타인구와 학교 방과 후, 복지관, 문화센터, 각종 동아리, 평생교육원등에서 책임 있게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육성하고자 2002년경에 발족되었다.

지도자 교육은 기타의 전공자 외에 전국 지회, 지부에서 기타를 배우는 연구생뿐만 아니라 장차 지도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애호가들을 대상으로 가까운 지회, 지부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전국적인 교육망을 구축하여, 실력 있는 교수진의 실기와 이론 교육, 엄격한 자격 검정 및 관리를 할 수 있는 긴밀한 체계를 구성하여 실시되 있다.

 

나). 미래에 대성이 촉망되는 여류연주자

변보경

1994년생으로 5세때 기타수업을 시작 천재적인 재능을 보이더니 빠른 성장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 건너가 Chen Zhi를 사사, 2010년에 도미 USC 교수 William Canengiser를 사사, 2011년 줄리어드 음대 입학 Scott Tennant와 Sharon Isbin을 사사. 22세 되는 2016년 줄리어드 음대에서 석사로 졸업했다. 현재 Southern California 대학(USC)에서 박사과정에 있다. 국내에서는 김태수와 김규태님을 사사하였다.

그녀의 화려한 콩쿨 수상경력을 헤아려보면 :

- 2004(10세) 한국기타협회 기타 콩쿠르 초등부 1위.

- 2007(13세) 미국 GFA 국제기타 콩쿠르 청소년부 1위.

- 2012(18세) 미국 GFA 뉴욕심포지엄 선발경연, 대학부 3중주 및 일반 개인부 1위.

- 2014(20세) 미국 GFA Regional 뉴욕심포지엄 선발경연 일반부 1위.

- 2016(22세) 미국 필라델피아 국제기타 콩쿠르 1위.

- 2016(22세) 미국 Tuesday Morning Music Club Young Artists 콩쿠르 1위.

- 2016(22세)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기타 콩쿠르 1위.

- 2017(23세) 미국 The Ladies Musical Club of Seattle's Frances Walton 콩쿠르 1위.

- 2018(24세) 미국 기타 재단(GFA) 국제 콘서트 아티스트 콩쿠르 2위.

- 2018(24세) 미국 조안 팔레타 콘체르토 국제기타협주 콩쿠르 (WBFO) 여성최초 1위.

 


(그 외의 학력 및 수상경력 자료는 현 기타계에서 수집 가능하므로 생략함).

 

 

다). 2000년 이후 :

내에 잘 알려진 인물들은 거의 생략한바 추후 현역 기타인들의 후속작업을 기대함.

 

 

 

 

 

 

 

 

[부록] 한국기타협회 역대 회장단(2019년 1월 20일 현재)

년도

차례

회장

부 회 장

비 고

1959

초대

김인걸

배영식, 임창년

한국 기타 연주인 협회 창립

1969

1대

김인걸

이종석, 이응주

한국 클래식기타 음악인 협회

1970

2대

김인걸

박승천, 강우식

1년 임직

1971

3대

이응주

강우식, 엄태흥

 

1972

4대

이응주

김금헌

 

1973

5대

이응주

김복환

한국 기타아 협회

1974

6대

강우식

이표

2년 임직

1976

7대

강우식

김정윤

 

1978

8대

강우식

김영철, 김용호

중도사퇴

1979

9대

김용호

허병훈, 김홍천

1년 임직

1980

10대

김용호

이표, 김홍천

 

1981

11대

이응주

김종만, 김명표

 

1982

12대

이응주

오용훈, 이순식

 

1983

13대

이응주

송영성, 김용대

3년 임직

1986

14대

김명표

최원식, 강은덕

2년 임직

1988

15대

김명표

강은덕

 

1990

16대

김종만

강은덕, 임현화

중도사퇴

1991

17대

성영삼

조광섭, 송형익, 오승국, 김창주

 

1993

18대

김정윤

조광섭, 노돌호, 송형익, 유재선

 

1996

19대

김정윤

송형익, 노돌호, 오용훈, 이용수, 유재선

 

1998

20대

송형익

이용수, 박종화

중도사퇴

2001

21대

김금현

최원식, 허병훈, 문풍인, 김용대, 전상진, 강은덕

중도사퇴

2002

22대

최원식

김용대, 노돌호, 박종대, 김해경, 신경숙

 

2004

23대

최원식

조광섭, 박종대, 김해경, 신경숙, 박재만, 방효용

3년 임직

2007

24대

리여석

조광섭, 박종대, 김해경, 신경숙, 박재만, 방효용

 

2010

25대

조광섭

김윤배, 신경숙

 

2013

26대

조광섭

김윤배, 신경숙, 김금석, 임장순, 배장흠

 

2016

27대

김윤배

이봉주, 윤원준

 

2019

28대

윤원준

2019. 1. 20일 당선되어 부회장은 인선 중임

 

 

< 후기 >

재차 강조하지만, 여기 기록된 ‘기타계 인물 소사小史’ 중에는 현재 활동 중인 회장단뿐만 아니라 국내외에서 저명한 연주가도 상당수가 제외 되어있습니다.

이는 이미 기타계 여러분의 기억에서 사라졌거나 사라질 분들의 기록입니다.

필자의 바람은 극히 짧은 이 기록을 마중물 삼아서 기타계의 원로들과 현역들께서 합심하여 ‘기타계 인물사’를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Comment '31'
  • 최동수 기타 2019.01.30 11:38 (*.127.12.121)
    기타매니아 여러분께,
    기타계 인물 소사를 주인장에게 부탁하여 여기 올린 이유가 있습니다
    사료를 남기기는 해야겠는데 소생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기타매니아께서는 위의 원본을 살펴보시고 수정이나 보충할 내용이 발견되면
    기탄 없이 댓글로 올려주시기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주인장께서는 바쁘신 중에도 원문을 수정 해주시기로 양해가 되었습니다
    차제에 기타매니아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소사를 완성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1.30 12:10 (*.127.12.121)
    앞으로 계속해서 수정되는 내용을 찾기 힘들면 위의 원본을 다운 받으시면 됩니다
  • 한기협 2019.01.31 17:51 (*.33.153.85)
    자칫 잊혀질 수 있던 소중한 자료를 만들어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날 긴가민가했던 기억들을 다시 정립시켜주셨네요. 한국기타계를 위한 큰수고를 다시한번더 감사드립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4 14:07 (*.127.12.121)
    [기타계 인물 소사]는 한국기타협회 홈페이지에 올림는게 마땅하지만
    수정 및 보완작업을 위해서는 여기에 먼저 올리는게 효과적일 듯 해서 결례를 했습니다
    앞으로 수정작업이 완료되는대로 기타협회 홈페이지에 올리겠으니 양해바랍니다
  • 2019.01.31 20:53 (*.165.64.141)
    이렇게 정리하는건 엄청 시간이 많이 걸리는일인데
    감사합니다....
  • john 2019.01.31 22:20 (*.194.133.103)
    고 이성용 선생님에 대한 내용 중 "그는 많은 자금을 쏟아 부으며 악기 수집을 하였고"와 이희진씨가 제자라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마 미야모도 긴빠찌 악기가 그당시 집 한채값이었다고 말씀하신게 잘못 전해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가 선생님한테 배우던 4년동안 - 1976년도까지 이희진씨를 한두번 학원에서 뵌적이 있는게 전부이고 또한 '70~73년에는 신XX 라는 선배가 유일한 제자이셨습니다. 제자라고 하는게 뭐 문제되는 건 아니지만 사실이 아니기에 다시 한번 확인해 주셨으면 합니다.
  • 2019.01.31 23:03 (*.165.64.141)
    내용 감사합니다.
    덕분에 조금 더 정확해 질수있겠네요....
    이런일은 혼자서는 정리할수없는 일이죠...
  • 최동수 기타 2019.02.05 17:00 (*.127.12.121)
    john님께
    아래 글은 [기타저널 2002년 6월, 제4호 23p - "만나고 싶었습니다"]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궁금하면 관련 사본을 카톡이나 이메일로 보내드릴 수 있습니다.
    --------- 아 래 ---------
    기억에 남는 제자는?
    지금 여기 와있는 이희진 교수, 한광석씨, 박석환씨 및 성균관대학의 성음회 등이죠.
  • 최동수 기타 2019.02.01 16:05 (*.127.12.121)

    john님,
    저는 ‘기타계의 인물 小史’의 필자입니다
    John님의 글을 잘 읽었습니다. 매우 중요하고 흥미 있는 글이네요
    고 이성룡 선생님께 4년여나 배우셨다는 건 기록될만한 사실입니다 .

    다만 위의 초고는 매니아 주인장께서 올렸으므로 저는 수정권한은 없고 댓글만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인장 자신이 여러 댓글을 검토, 확인 검증하여 수정하기는 좀 어려우리라 짐작됩니다.
    그래서 제가 필자의 입장에서 수정 및 보완작업을 도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고 이성룡 선생, 강우식 박사님과 이희진님을 고루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희진님이 고 이성룡 선생님의 제자가 아니다” 라는 말씀은 얼른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옛말에 ‘제자의 넓은 의미는 스승의 집 마당만 쓸어도 스승의 정신을 이어받고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으면 제자’로 여깁니다.
    실제로 몇 년이나 가르침을 받았느냐는 별개입니다.
    예를 들면 저는 호세 로마니요스님께 불과 4주밖에 지도 받지 못했지만 제 사부로 모십니다.

    이런 일은 한번 만나 뵙고 자세한 얘기를 듣는 게 중요합니다.
    john님께서는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H/P : 010-3373-3903 최동수

  • 최동수 기타 2019.02.01 17:28 (*.127.12.121)

    [수정 요청]합니다
    3. 개화기에서 다) 국내기타인의 두번쩨 최병택님의 소개를 아래와 같이 부탁합니다
    ------------------------ 아 래 -----------------------------------
    다). 최병택(1957 - )
    치과교졍전문의인 그는 83년 2월 정재동 지휘 시향의 <범세대 연주회>의 공개 오디션을 통하여
    줄리아니 협주곡 전악장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국내 최초로 협연하였다.
    이로써 국내 연주사에 큰 획을 그었다.
    93년 일본 교토 초청 음악회에서 연주한 비발디 협주곡과 줄리아니 협주곡 등을
    수록한 CD를 SK에서 출반하였다.
    현재 클래식과 플라멩코 연주를 병행하고 있다

  • 2019.02.01 19:02 (*.165.64.141)
    네 댓글보고 계속 수정할게요....
  • 최동수 기타 2019.02.01 20:39 (*.127.12.121)

    미안하고 고맙사옵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막걸이에 함유된 항암성분이 소위 함암 작용이 크다는
    와인의 100배가 넘는다네요
    그 좋은 걸로 한 조끼 합시다,하하

  • 검정콩 2019.02.01 23:01 (*.39.139.189)
    아주 오래전에 국내에 '기타화성학' 이 번역본으로 출간되어 당시 기타인들에게 배포되어진 귀중한 기타화성이론책이 있습니다.
    강우식선생님의 공동번역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우식선생님께 문의해보시면 가능할 것입니다. 귀한 자료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3 13:56 (*.127.12.121)
    네, 일단 강우식 박사님께 상의 드리겠습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5 18:15 (*.127.12.121)

    [수정 요청] 합니다.
    수님,
    수정을 요하는 사항 5건을 올려드리니 잘 부탁드립니다.


    [수정-1]
    1. 여명기. 가) 최초의 기타연주회 바로 밑 한줄을 삭제하고 아래 글을 붙여주기 바랍니다.
    ------------- 아 래 -------------
    가). 최초의 기타 연주회
    우리나라 최초의 기타 연주회는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7년에 서울 부민관(현 세종로 덕수궁 옆 서울시의원 회관)에서였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타연주자 정세원씨의 독주회였다.


    [수정-2]
    1. 여명기. 가) 최초의 기타연주회에서 3번째 정세원 및 본문을 모두 삭제하고 아래 글을
    이종석李鍾碩(1917 - 2014) 윗줄에 붙여주기 바랍니다.
    ------------ 아 래 -------------
    정세원鄭世源 (1926? 재 북한, 작고)
    그는 재령갑부의 자제로 일본 유학시절 많은 일화를 남겼다.
    첼로를 닮은 미야모도 긴빠찌宮本金八 작 비욜론 모델이 나왔을 때 아무도 그 기타의 뚝심을 당해내지 못했다.
    이는 일반 기타 형태가 아니고 바이올린처럼 스프루스 앞판과 메이플 뒤판이 곡형이고,
    안쪽에 고이는 기둥(魂柱)이 있었다.

    기타수리로 세고비아의 찬사까지 받은 제작가 미야모도는 그러나 허탈해 있었다.
    이때 정세원씨가 나타나 그 기타로 타레가의 호타, 아리랑 변주곡, 등을 연주하자 방중이 모두 놀랐다.
    미야모도는 뛸 듯이 기뻐하며 그 기타를 증정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세원이 오히려 높은 가격(1,100엔)을 지불하자 감격한 미야모도는 후에 [평화平和]호라

    이름 지은 명품을 그에게 기증하였다.
    이 악기에는 “정세원씨를 위해 이 기타를 제작하였다”고 쓰여 있다.
    평화호는 정세원씨가 소장하고 다른 한 대는 김인걸씨를 거처서 이성룡씨에게 넘겨졌다.
    그는 서울 부민관에서 2회나 독주회를 하면서 자신의 자작곡인 ‘아리랑 환상곡’도 연주하였다고 한다.
    또한 비제의 가곡 ‘진주잡이’도 트레몰로 곡으로 편곡하였다는데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다.
    일본의 [Asian Evening]의 라디오 프로에도 자주 출연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고향인 북한으로 돌아간 그는 명망 있는 연주가로 활동했다고 한다.
    연세대 고 황병기 교수와 경희대 고 김동진 교수가 모두 동기생들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진남포 연주 후 1963년경 병석에 누워 사후에 소장했던 기타를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데 그 후 자세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조석근, 임창년, 박종문, 황병갑 등이 그의 제자였다.


    [수정-3]
    1. 여명기黎明期. 나) ‘기타연주회의 태동’ 란에서 8번째 이성룡 및 본문을 모두 삭제하고
    아래 글을 위에 있는 이응주 윗줄에 붙여놓기 바랍니다
    ---------- 아 래 -----------
    이성용李晟用 (1928 - 작고)
    그는 제2차 세계대전 전인 1937년 부민관에서의 연주회 후에 정세원씨가 문하생을 모집하므로
    서대문 인근 정세원씨댁 근처에 있는 중국음식점 2층에서 정세원씨와 조교 김인걸씨를 사사하였다.
    그는 ‘1937년작 미야모도 긴빠찌宮本金八’ 기타를 최후까지 소장하였다.
    그는 많은 기타 악보를 소장하여 기타인들에게 제공했으며, 성균관대 기타반을 지도하는 한편
    이응주, 하희영과 합주운동을 일으켰다.
    미국 국제원조처, 애견협회이사 임창년의 후견인, 음악인과의 교류, 법원 출입 등 다방면에 달인이었다.
    이희진, 한광석, 박석환 및 성균관 대학의 성음회원 등이 그의 제자이다.


    [수정-4)
    1. 여명기黎明期. 나) ‘기타연주회의 태동’ 란에서
    강우식姜佑植(1932 - 현 기타협회 고문) 및 본문을 삭제하고 아래 글을 붙여주기 바랍니다
    ----------- 아 래 ------------
    강우식姜佑植(1932 - 현 기타협회 고문)
    제6,7,8대 기타협회장을 역임했던 그는 신경내과 박사로 군의관 재직 시 수도육군병원에
    음악실을 개설하여 합주단 활동을 지원하였다.

    국내에서 안춘렬씨에게 입문하였고,  미국에서는 소포클래스 파파스를 사사하였다.
    일본 음악가 고구네 고지러小船行次浪의 기타 화성악을 김명표씨와 공동번역 하였다.
    지그프리트 베렌트의 내한 공연시 열과 성을 다해 영접하는 등 국제교류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는 경희대 음대의 한성석 교수가 작곡한 야상곡을 초연한 적도 있다.

    그는 세계적인 신품 명기의 수집가로 한때 30여대의 소장악기를 본 기억이 있다.
    대표적인 소장품 중에는 이그나시오 플레타 1세가 있다.
    그는 오디오 수집가로 일본의 오디오 연감에도 소장품이 소개된 적이 있다.
    한편 그는 詩,書,畫에 뛰어난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1713∼1791)의 9대손으로 백여 점에 달하는
    표암의 유작 중 거의 절반을 소장하고 있다.


    [수정-5]
    2. 초창기初創期(1959년 ∼ 1974년), 마) 연주가 및 제작가의 하단,
    최동수崔東秀 (1939 - 현 기타협회 고문)의 본문 맨 끝에 아래와 같은 문장을 추가 해주기 바랍니다.
    --------- 아 래 ---------
    그는 2017년에  은퇴하기까지 총 54대의 화려한 장식의 악기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국내 초유의 줄감개가 몸통에 있는 여행용 기타, 지팡이 기타, 총기타,  자개상감 기타 3대,  

    한지 기타(Papier Mache) 2대,  리라 기타 4대와 비웰라 기타 2대가 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6 13:54 (*.220.243.58)

    [수정-6] 하나 더 있어요
    2. 초창기初創期, 라) 음악협회에 가입되다에서 김형주金亨柱 성명에 덧붙여서
    다음과 같이 추가해주세요
    김형주金亨柱 (1925 - 현, 한국기타협회 고문)

  • 최동수 기타 2019.02.06 14:56 (*.220.243.58)
    [수정-7]
    어이쿠 ! 또있네요
    2. 초창기初創期(1959년 ∼ 1974년), 마). 연주가 및 제작가의 맨 아래
    최동수崔東秀의 시작 줄 첫머리 ‘필자는’을 ‘그는’으로 교체 바람 니다

    자꾸 수정이 나와서 죄송합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7 13:49 (*.127.12.121)
    수님,
    수정하신 글 모두 확인했습니다.
    본문 수정작업은 나름 요령껏 편집해도 그게 헷갈려서 쉽지 않을텐데...
    너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7 17:34 (*.127.12.121)

    수님,
    [수정을 요하는 사항]이 7개나 또 생겼네요

    [수정-8]
    3. 개회기, 다). 국내 기타인에서
    최병택(1957 - ) 및 본문을 오해권 아래로 옮겨서 편집 해주기 바랍니다

    [수정-9]
    1.여명기, 가) [최초의 기타연주회]가 중복되었으니
    한 개는 삭제해주세요

    [수정-10]
    1.여명기, 가). 기타연주회의 태동에서 이성룡 란의 밑에서 2째줄
    애견협회이사 끝에 [ , ]를 찍어주세요

    [수정-11]
    1. 여명기, 나). 기타 연주회의 태동의 김용호 란의 아래
    [정세원]을 삭제해주세요

    [수정-12]
    2. 초창기, 마) 연주가 및 제작가에서 오혁환 란의 맨 아래줄
    대구의 콜롬비아 기타 끝에 [ , ]를 찍어주세요

    [수정-13]
    3.개화기, 나). 외국 연주가들의 내한 내용 중
    미국 연주가 말미에 [버지니아 루케]를 추가 해주시고,

    [수정-14]
    3.개화기, 가). 산업화와 대량생산 및 수제기타의 등장 글 말미에 아래글 추가
    ------------ 아 래 ----------------
    기타제작가 유이치 이마이, 가즈오 사또, 마사노부 마츠무라 등의 왕래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로버트 럭을 위시해서 안드레 마르비, 앙겔라 발트너, 스테판 뢰슬러와 헤르만 하우저 3세 등의

    기타제작 마스터클래스도 개최되어 수제 기타제작계도 수준향상이 되고 있다.

    단 기타제작 워크샵에 대해서는 제가 잘모르므로 수님께서
    추가 보완하시기 바랍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7 17:53 (*.127.12.121)
    수님,
    [수정-13]이 편집하기 불편하면 모두 삭제하고 아래 글로 바꿔주세요
    ---------- 아 래 ------------
    나). 외국 연주가들의 내한
    1957년 스페인 알레그리아스 민속무용단에 두 사람의 플라멩코 기타리스트가 따라 왔었다.
    1965년 서독의 지그프리트 베렌트(Siegfried Behrend)는 민요가수 벨리나를 동반한 클래식기타 연주회가
    명동 국립극장에서 처음 열렸다.
    독일문화원 (Goethe Institut)의 문화대사로 매3년마다 한국을 방문하는 그는 연주와 워크샵 뿐 아니라
    전위음악을 클라우디아와 함께 공연했다.
    지그프리트 핑크(Fink)의 타악기 전문가와 크루거, 트뢰스터 등의 연주가도 함께 공연했다.


    미국에서는 마누엘 바루에코, 크리스토퍼 파크닝, 페페 로메로, 찰리버드, 로버트 루스 등이
    미국문화원의 후원으로 왔다. 그 후 버지니어 루케는 개인자격으로 내한하여 공연하였다.
    이후의 연주자들은 공연기획사를 통하여 내한 하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장 피에르 쥬메와 사다노프스키 등이 왔고 프랑스 문화원에서는 매주 첫날을
    기타협회 모임을 위하여 지하 영화관을 개방해주었다.

    영국에서는 줄리안 비잔틴, 존 윌리암스 등이 왔으며 줄리안 브림의 호암 아트홀 연주는 큰 감동이었다.

    브림은 김포공항에서 한강변을 따라 신라호텔에 이르기까지 손가락을 비비면서 습도가 50-60하고
    세면서 공해정도까지 느끼보고 있었다.
    더구나 그가 1950년에 군에 입대했을 때 처음에는 한국근무를 지원하려다가 한국의 기후가 여름 겨울의
    건습 온냉의 차이가 심하다고 하여 기타연주에 지장이 있을까봐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호암 아트홀에서의 그의 연주는 젊은 시절 그의 화려한 기교가 다시 살아났었다.
    청중들의 환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음악은 청중과 연주자가 함께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라고

    스페인의 나르시소 예페스는 세종문화회관의 큰 홀을 마이크를 쓰지 않고 생연주를 하였다.

    그밖에 오스카 코스타(우루과이), 알리스 아츠트(영,) 로리 랜돌프(독),
    외에 다수의 일본 연주가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 2019.02.07 21:01 (*.165.64.141)
    네 수정했어요...
  • 최동수 기타 2019.02.07 22:11 (*.127.12.121)

    확인했습니다
    너무 수고 많이 하셨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문맥, 문단과 인물들의 서열을 고치는 문제가 남았는데

    이게 간단치가 않네요, ㅠㅠ

    관련 인사들도 만나봐야 될 뿐만아니라 오래된 자료도 더 뒤적거려야되니....
    나중에 전화로 상의 드릴께요

  • 기타화성학 2019.02.07 23:51 (*.203.120.107)
    간단한 내용입니다만 ...
    강우식선생님 이력란에 기타 화성악 / 기타 화성학 으로 수정하셔야 될 거 같습니다.
  • 금모래 2019.02.08 07:43 (*.120.107.137)
    기타계 이런저런 얘기들을 알 수 있는 주옥 같은 자료네요. 감사하게 잘 봤습니다.

    아쉬운 점은 (1)기준점이 "기타계에서 활동하던 분들 중에 이미 잊혀젔거나 잊혀질만한 분들의 기록이므로, 현재 기타계에 잘 알려진 분은 거의 제외하였습니다"라고 하셨는데, 기준점이 애매하다는 생각을 해봤고 (2) 그런 차원이라면 기타계의 인물사에 이제 <기타매니아>의 운영자인 곽웅수 님과 <기타매니아>의 평가를 넣지 않고 한국 기타계를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피력해 봅니다.
  • 2019.02.08 23:22 (*.165.64.141)
    현재 활동하는분들은 나중에
    활동을 다 마친후 한 30년후쯤
    정리하는게 어울리겠죠.....
  • 최동수 기타 2019.02.08 16:25 (*.220.243.58)
    금모래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알아들었습니다.
    그러나 [기타계 인물 소사]는 꼭 제가 작성해야될 이유도 자격도 없습니다
    우리나라 기타계는 이제 역사도 짧지 않고, 생각보다 넓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한국기타협회도 근래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원로들께서 이런 자료를 기록화 하는 분이 아직 없다는 겁니다.

    무엇보다도 현재 활동하는 분들을 개인소견으로 평가하기도 부담스럽고
    누구에게도 시비에 말려들고 싶지 않아서 입니다
    따라서 어떤 기준을 두지 않고 제 기억만을 기록 해보는 바이니 양해바랍니다.

    그나마, 만약 소생마저 귀차니즘에 빠저서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면,
    귀중한 사료가 역사의 커튼 밖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는걸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8 16:32 (*.220.243.58)
    [수정-15}
    1. 여명기, 기타연주회의 태동, 강우식 란의 4째줄에서
    '기타화성악' 을 '기타 화성학'으로 정정해주시기 바랍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8 16:39 (*.220.243.58)
    참고로,
    가칭 [기타계 인물사] 는 한국기타협회에서 김성진 교수의 주도 하에 준비하고 있으며
    위의 [소사]는 머리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겁니다.
    언젠가는 완성이 되겠죠.
  • 산적 2019.02.09 02:16 (*.140.117.61)
    정보 감사합니다
  • 오디오쟁이 2019.02.09 03:38 (*.224.146.181)
    제가 알고 있는 원로 선생님들의 소식을 오래간만에 보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어려운 환경에서 고군분투해오신 선생님들의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도 오래도록 뵐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최동수 기타 2019.02.09 22:46 (*.220.243.58)
    오디오쟁이님, 무척 오랜만입니다.
    제가 출간한 [기타, 그 모든 것]은 갖고계신지요?
    혹시 아직 못 구하셨으면 저에게 연락 좀 해주세요
    010-3373-39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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